내 이야기 · 공지 584

오늘의 묵상(2022년06월30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30일) . 옛날, 유다 사람들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질병은 지은 죄 때문에 걸린다고 생각했답니다. 사람이 수명이 다하면 모두 이것 저곳 고장이 나고, 그래서 통증에 시달리고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유다인들의 생각대로라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 되어 죽는 것이군요. 저도, 실비아도 나이를 먹으니 이제 슬슬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혈압은 높아진지 오래 되었고 혈당도 당뇨 전단계까지 왔다고 하네요. 게다가 허리가 좋지 않습니다. 실비 마님도 다리가 아프다고 하고... 어쩌겠습니까? 나이 탓인걸.. 제가 늘 실비아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치매만 안 걸리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요양원 같은 곳에 안 보내고 내가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그러려면 내가 더 건강해야..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9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9일) . 오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축일, 매년 이날이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쿼바디스.. 어릴 때부터 많은 종교 영화를 보았지만 쿼바디스는 그 감동이 무척 깊었습니다. 기원후 64년 로마의 화재를 계기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됩니다. 집과 재산을 잃은 군중이 폭동을 일으키자 속죄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난 민중이 원형 경기장에 모인 가운데 교우들이 죽어 갔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불을 지르고, 굶주린 사자 앞에 맨몸으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박해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우가 붙잡혀 희생되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크나큰 위기에 놓였습니다. 사도들은..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8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8일) . 오늘은 성 이레네오 축일입니다. 작고하신 저희 아버지의 영명축일. 오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안식을 빌어야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공원에 나갔더니 바람이 장난이 아닙니다. 장마가 아니라 태풍이 몰아쳐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태오 8,23-27입니다. 제자들은 풍랑이 두려웠습니다.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그들인데 그들이 두려울 정도의 풍랑이라면 예사 풍랑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저 정도라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 라고 느꼈을 정도였을까요? 그들은 초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네요. 누군가.. - 바로 저 같은 사람이었겠지요 –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예수님을 흔듭니다. “주님, 구해 주십시오...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7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7일) . 오늘 복음 말씀(마태오 8,18-22)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목마름으로 따르는 이도 있었을 것이고, 기적을 보고 호기심에 따르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 이유로 추종하는 이들도, 기득권에 염증을 느낀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이를 받아 주시고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놀랍게도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신약성경 어디를 봐도 율법학자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요? 율법학자라고 불려진다면 그는 종교 지도자며 당대의 지식인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완전히 동문서답처럼 들립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6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6일) . 어제 많이 더웠지요? 산행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는데도 어제는 산에 올랐습니다. 이금행 윤호요셉의 사고가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고 그가 정성되이 섬겨왔던 주님께서 이렇게 벌을 주셨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세월이 지나고 먼 훗날이 되어 뒤를 돌아볼 수 있을 때가 되기 전까지는… ‘새옹지마’라는 단어도 나중에 보니 그렇더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날씨는 찜통 같았지만, 산 위에는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맞아줍니다. 마음이 조금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교황주일입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묵시록 3,15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저의 결단력 없음을 책망하..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5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5일) . 어제는 사제성화의 날이었습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교구장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교구 평신도협의회 임원들은 참석했어야 하는데 은계 성당 선종자의 장지수행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은계 성당이 신설본당이고 연령회 역시 조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들이 없기 때문에 도와주러 갔지요.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하는 중에 급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울뜨레아에 열심이고 구역장을 맡고있는 조금행 윤호요셉 형제가 자기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나중에 세실리아 자매를 통해 들었는데 프레스에 눌려 오른 손 손가락이 엄지와 새끼 손가락만 남고 모두 절단되는 사고라고.. 착하기만 한 부부인데 왜 이런 시련이.. 그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어..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4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4일) . 제 경험으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고통을 알게 될 때 성숙해진다는 걸.. 부모의 아픔을 보고 자란 자식은 쉽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족애’는 미움과 사랑 때문에 싹을 틔웁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옷을 입어야 어른이 되지 않겠습니까? 남을 위해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야 어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하지요. 주위를 둘러보면 저를 포함해서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어린애’인 사람들이 무척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어려움’을 피해 다녔기 때문일까요? 고뇌가 없으면 성숙도 없고 발전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 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어린이의 신앙으로 남게 될 테니..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3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3일) . 세례자 요한은 선택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이름을 받았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세레자 요한은 이스라엘 민족을 메시아에게로 인도할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요한은 매우 겸손한 분이셨기에 자신의 위치를 알고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은 이름 그대로 세례와 연관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전례에서 죄 사함의 의식은 돈이 많이 들고 절차도 무척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죄를 씻고 정결한 위치로 돌아오려면 먼저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야 했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예물이 비둘기였고, 사는 게 조금 괜찮..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2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2일) . 요즘 왜 이리 바쁜가요? 다른 분들은 제가 바쁠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물론 교회 행사라든지 선종봉사는 끊임없이 있기 마련이지만.. 요즈음 소일거리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나이가 있으니 취업은 하기 힘들지만 틈틈이 일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또 액간의 사례도 받고 하니까 용돈의 여유가 조금 더 생기기도 하니 좋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성격이 그저 대충 대충 시간 때우는 걸 제일 싫어하고 어영부영 하기를 못하는데다가 옆의 사람이 자기 일을 해결 못하면 처음에는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제 일이 되어버리는 그런 일이 지금도 계속됩니다. 이 오지랖은 언제나 없어질까요? 어제는 동창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서 평촌에 다녀왔습니다. 이 친구는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1일)

. 오늘의 묵상(2022년06월21일) . 오늘 복음은 마태오 7,6.12-14 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하시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어느 자매의 수기를 옮겨 적겠습니다. 그 자매의 글은 아래와 같이 처음에는 고통과 분노로 시작하더군요. . 그러더니 나중에는 결국, 온전히 따르는 천사의 길로 바뀌었습니다. 역시 신앙인의 수기답게 신앙이 깊은 사람은 틀리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수기의 앞 부분을 옮겨 싣습니다. 혼자 사시던 시어머님이 큰 병이 드셨습니다. 온통 마음이 혼란해집니다. 아들이 여럿 있지만 하나 둘 저마다 핑계를 대며 어머니를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굳이 막내며느리인 제가 맡아서 어머니 병 수발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마음속으로 항변합니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