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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27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6. 2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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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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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마태오 8,18-22)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 목마름으로 따르는 이도 있었을 것이고,

기적을 보고 호기심에 따르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 이유로 추종하는 이들도,

기득권에 염증을 느낀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이를 받아 주시고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놀랍게도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신약성경 어디를 봐도 율법학자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지요?

 

율법학자라고 불려진다면

그는 종교 지도자며 당대의 지식인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완전히 동문서답처럼 들립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무슨 말씀일까요?

아마도 현실의 편안함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

하는 예수님의 반문일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망설였나 봅니다.

 

 

바오로 사도가 하신 말씀 중에

예수님의 사상을 가장 쉬운 말로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것은

아마도 아래의 말씀일 것 같습니다.

 

내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1-2).

오늘 복음 말씀은 어제에 이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현실 도피나 세상의 편안함을 위해서라면

따르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까지도 포기하라고

명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의인입니까?” 하고 물으면

많은 분들이 “선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착한 일을 하면

누구나 의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계명만을 충실히 지킨다고

저절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님은 틀림 없습니다.

반드시, 틀림없이, 사랑을 실천해야만

 비로소 의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돔 땅에도 율법에 충실했던 이들이

분명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의인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사랑이 결여된 채

계명에만 충실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우리 사회에는 매일 어두운 사건으로 얼룩집니다.

티비 뉴스를 보건, 신문 기사를 읽던

어두운 사건, 갈수록 횡포화 되는 기사가

넘치고 또 넘쳐납니다.

 

그렇지만 밝은 부분도 많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말할 것도 없이

제자에게 애정을 쏟는 스승,

부하 직원을 아끼는 상사,

아픈 이를 돌보는 이들,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이들..

 

 

이런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그만큼 밝은 것이고

 그들 때문에 주님의 은총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기에

인류는 종말을 맞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는 한 하느님의 보호하심

역시 계속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밝히는 사람들 편 한 가운데에

늘 서 있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