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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8월12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8. 12.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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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8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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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마태오 19,3-12를 읽으며

잠시 생각해 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떤 이유가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지 묻습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어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혼인은 하느님의 계획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혼은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뜻하신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이러한 뜻을 받들어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말씀하고 계시네요.

 

 

이스라엘 백성은 혼인을 일종의 매매 계약으로 여겼습니다.

이스라엘 뿐인가요?

많은 중동 국가들, 또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

또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다 그랬지요.

 

여자는 혼인을 하면 남자의 소유물이 되었고,

재산권과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물론 여자에게는 이혼의 권리도 없었고요.

 

율법에는 여자가 부정한 일을 범하면

이혼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이러한 규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혼인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생각을 돌리게 하시며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전에 제가 결혼을 할 때면

신부님과 면담을 하고

혼인 전 당사자의 진술서’를 작성했는데

그 진술서 가운데에는 기억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혼인에 어떠한 조건이 있습니까?”

 

교회법에서는 조건부로 혼인을 맺으면

유효한 혼인이 아니라는 규정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지 반성해 볼 일입니다.

우리 신앙인들까지도 학벌이나 경제적 능력,

가문을 혼인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지요.

혼인은 흥정이나 거래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혼인에 굳이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의 사랑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해볼까요?

결혼을 하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라고 그렇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때 일본에서는 황혼이혼이 성행했었지요.

 

일본 여자들은 남편 말에 절대 순응해야 하고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고 들었습니다.

남편들에게 감히 대드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무조건 무릎 꿇고 머리 숙이는 것이

일본 여인들의 숙명이었는데..

여자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잘 못 이혼을 했다가는 생활이 어려우니

정년 퇴직을 해서 퇴직금이며 목돈이 만들어졌을 때

이혼을 해서 두둑하게 재산을 분배 받고

자유를 만끽하며 살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또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자신들의 아이를 낳아 키워 나가는 것을 봅니다.

간혹 부부싸움도 하지요.

그럴 때면 제 딸들을 나무라며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라고 이야기 하며

우리 부부의 과거를 생각해 봅니다.

 

남들은 잉꼬 부부라고 했지요.

뭐, 그렇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사람은 살아봐야 한다는 말 기억하시죠?

예, 그대로입니다.

 

 

이제 우리 부부가 이혼 이야기를 입에 담기에는

너무 세월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살아갈 수 밖에요.

그리고 사실 이제는 그런 정들 때문에

떨어져 살 수도 없겠습니다.

 

문제는 아직 젊고 팔팔한 우리 아이들이죠.

나는 이 복음의 묵상이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혼이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을

제 딸들이 갈라놓는 것으로 서둘러 결론 나지 않길 바랍니다.

 

오히려 딸들과 사위들이

'하느님이 맺어 주신 것'에 대한 더 깊은

묵상과 이해를 얻길 바랍니다.

 

하느님은 과연 남자와 여자가 영원토록

서로 묶여 있고 매여 있길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여자와 남자가 서로 맺어져

연결되어 있기를 원하셨을까요?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창세 1,27)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각자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 때

'둘이 하나됨'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완벽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여자이건 남자이건 하느님 모상으로 태어난

각각의 인격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족함을 서로 보완해주고 미숙함을 서로 돕고 견디며,

때론 아프고 때론 행복할 완성의 길을 걸으며

서로 기다려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랑과 배려가 필요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부족하고 미성숙하다고 해도 사위나 혹은 딸은

이미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며,

기다려주고 손을 내밀어준다고 해도

사위나 딸은 '더 나을 것 없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이란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는 온전한 인격체이고

나머지는 소유되거나 버려져도 되는 존재라면

이미 그 결합은 하느님이 맺어주셨다고 보기 어렵겠습니다.

 

 

나는 나 자체로 충분하고 너 역시 너 자체로 충분한 관계.

충분한 너와 충분한 내가 만나

또 하나의 충분한 '하나'를 이루는 것이 혼인이다.

 

이 결론을 우리 아이들은 물론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둔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맺어주신 이유는

끊어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이어져 있음에 '행복하라'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