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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8월08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8. 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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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8월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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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10여년 전, 부인이 먼저 주님 곁으로 떠나신 후

홀로 기도하며 지내시던 아오스딩 형제님을

데레사 자매님 곁에 정성껏 모셔 드렸습니다.

 

아들은 외국에 나가 있는지라 참석을 못했지만

두 따님과 사위 분들이 얼마나 선하신 분들인지

생전에 효도를 잘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언제부터인가

눈에 띄지 않게 되면,

아!,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으로 가셨구나.

짐작을 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그래도 레지오 같은 봉사단체와

병실을 방문하고 기도와 위로를 드릴 수 있었는데,

(물론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셨을 경우이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병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그러다 시간이 몇 년씩 흐르다 보면

기억에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혹시라도 자녀분들이 같은 성당에 다닌다면

자녀들 때문에라도 연결이 되겠지만

요즘 자녀들과 함께 사는 분들이 거의 안 계시니

막상 선종하실 때에는 아는 분들이 없어

연도도, 기도도 많이 받지 못하고

떠나시게 되니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라 하는제

 전적으로 동감을 합니다만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식들을 생각하자면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고..

 

그래서 때로는 오래 사는 것이 형벌이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제발 병석에 오래 있지 않고 떠나는 것..

그것이 정말 행복일 텐데요..

 

 

부모를 모시는 분들께 부탁 드립니다.

정말 좋은 요양원을 찾아 보십시오.

발품을 팔면 의외로 사명을 가지고 운영하는

요양원도 많습니다.

운명하실 때까지 정성으로 모셔주는 그런 곳에 모시고

자주 찾아가서 관계자들과 면담도 하고

병실 분들과 나누어 드시라고

간식이나 과일도 준비해서 드리세요.

큰 돈 안 듭니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마지막 효도입니다.

돌아가신 후,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통곡하지 마시고요.

 

 

그래서 선종봉사를 하시는 연령회 회원들이

교회에는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겠지요.

 

요즘 날씨가 너무 무더워서 옷을 땀으로 적시지만

어제는 그나마 공원의 맑은 공기와 바람이 불어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함께 봉사해주신 회원 일행 분들께

주님의 은총이 내려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지금도 논란거리가 되는

세금 문제가 나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무거운 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금은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세리를 ‘총 안 든 강도’라 했겠습니까?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에도 세금이 많이 부과되었다는데

로마는 골치 아픈 유다인들을 다스리고자

무겁고 비합리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썼고

그리고 껄끄러운 상대에게는 표적 세무 조사를 하였는데,

이 모든 일의 하수인이 세리였다지요.


당연히 지주들과 상인들은 탈세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책정된 세금을 다 내다가는 망하는 판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을 하더군요.

상인들과 유지들은 그렇게 해서 로마에 협력하였고요.

 

그 당시 세금은 세 가지로,

지세(地稅)와 소득세, 인두세(人頭稅)였는데

지세는 곡식의 1할을 바쳤고,

소득세는 소득의 100분의 1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인두세’는 반란의 근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스라엘 남자는 14세부터 의무적으로

인두세를 바쳐야 했으니

분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인두세란 말 그대로 사람이면 무조건

내야만 되는 세금이었으니까요.

 

 

여기에다 유다인들은 성전 세도 내야 했습니다.

성전 세는 탈출기에서부터 근거하는데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진 후에는

매일 일년 된 양을 바쳐야 했고

거기에 밀가루와 기름을 곁들여 바쳐야 했으며

사제들이 입는 호화로운 제의며

사제들의 생활비에 성전 유지 관리 등에

엄청난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금은 스무 살이 되는 해부터 일인 당, 반 세켈이었는데

반 세켈은 두 데나리온 정도라 했으니

이틀 치의 성인 일당입니다.

아, 데나리온은 로마의 화폐이고

세켈은 이스라엘의 화폐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전에는 늘 환전상들이 있었다지요.

 

성전 세는 우리 나라의 3월달에 세리들이 지역마다

세금 수납처를 만들어 거기에서 거두어 들였고

이 기간이 지나면 예루살렘에 직접 가서

납부하여야 했다지요.

 

만약 성전 세를 내지 않으면 강제로 재산을

차압하는 제도였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리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성전 세를 내고 있는지 묻습니다.

묻는 의도도 빤합니다.

성전 세를 내지 않고 있다면

고발을 하여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고발할 생각이었겠지요.

 

예수님은 시비에 휘말리기 싫다며

낚시를 하여 잡은 물고기의 입에서 나오는

스타테르 한 닢을 내게 하십니다.

스타테르는 네 데나리온의 가치라고 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돈 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움켜쥐고만 있어서는 안 되고

흘러가게 해야 돈이랍니다.

돈은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기쁘게 내면 기쁘게 돌아온다는 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각가지 세금을 기꺼이 내셨습니다.
돈은 삶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데 ‘생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참 많지요.

 

그러한 탓에 돈의 속성인 불안과 걱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요..

돌고 돌기에 돈’이라고 했는데, 옛말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좋아하면 머리가 돈다.’고

돈이라 한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실제로 돈을 너무 좋아해

머리가 돌아 버린 사람도 있고요.

 

오늘의 우리에게도 세금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삶에는 세금이 아니더라도

강제성을 띤 돈이 적지 않아

그 부담이 더욱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교회에 바치는 헌금과 교무금도

곁코 부담스럽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한다는 마음으로 찌푸리지 말고

기꺼이 바쳐야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봉헌처럼..

그렇게 하고 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