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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8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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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방은 계속 비가 오는데
영남권, 특히 경북지방은 가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 들어 비다운 비가 내린 적이 없다고 하네요.
대신 폭염만 계속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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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더니
그것도 갑자기 소멸되어 버렸답니다.
요즘 일기예보는 자주 오보를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기상 이변 때문일까요?
가뭄으로 애타는 곳에 흡족한 비를
내려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복음 마태오 15,21-28을 보면
어떻게, 왜 예수님이 저렇게 말씀하실까?
하는 의구심이 솟아납니다.
사랑으로 점철된 그분의 언행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매정하고 모욕적인 말씀을 하고 계시거든요.
몇 번 되풀이 해서 읽어보고
가나안 여인의 총명하고 믿음이 가득한 답변을
되 내이는 동안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웃는 사람에게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요?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안기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겠습니다.
특히나 선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실 것은
상식이고 자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모욕적인 말씀을 듣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또렷이 응대하는 그 여인,
그 가나안 여인은 필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기에
그런 현명하고도 당찬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고 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믿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셨고,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으로 맺어진 신뢰의 관계일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님을 ‘여인이여’ 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여인들은 그만큼 사회에서
인격적으로 존중 받지 못했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풍습이 비슷한 중동국가들,
특히 무슬림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지위가
비참할 정도이지요.
아무튼 유다인들도 그랬답니다.
게다가 특히 이방인 여인들은 유다인들에게
더 큰 차별과 멸시를 받았다고 하고요.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어느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하고 부릅니다.
그렇게 불렀다는 것은 그녀는 이미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요.
그리고 결국 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이 딸을 고치게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을 보니
몇 일전 동네 재래시장인 삼미시장에서 본
외국인들이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재래시장이 일반 마트보다는
상품 가격이 저렴하겠지요.
농장에서 일을 하는 분들인지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달치 정도의 생필품을 사가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마침 시장 근처에는 무슬림들을 위한
하랄 식품 매장도 있거든요.
우리 나라도 그랬습니다.
저보다 형님 뻘 되는 분들은 서독 광부로
누님 뻘 되는 분들은 서독 간호사로,
그 후에는 중동의 뜨거운 사막 공사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풍요로운 대한민국의
초석이 되었음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게 불과 얼마 안 된 세월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꼰대라고 한다지요?
하지만 알 것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부모님들과 형님들이
일제의 식민인으로 수탈을 받고.
6.25 동란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 이 땅을
요즘의 개만도 못한 생활을 하며
자식들과 후대를 위해 몸 사리지 않고 땀 흘렸고
그래서 너희들이 지금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
그것이 불과 40 ~ 60년 전 너희 부모님들 모습이다.
그러니 그분들을 깔보지 말고
우리들과 동등한 사람들로 바라봐주기 바란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우리 사회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없으면 농사 못 짓습니다.
그분들이 없으면 멸치 한 마리 모 잡고
소금 한 톨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 없으면 공장 모두 멈춥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없으면 한국인들 다 굶게 됩니다.
몇 몇 뜻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는 것이
차별과 불평등의 이유입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일본의 한국인들을 차별한다고 열을 올립니다.
참 나쁜 우리 나라 사람들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자신들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멸시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티나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도
예수님 시대의 이방인처럼 취급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차별과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넓고 깊습니다.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멍든 마음,
그들의 아픈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 줄 사람은 먼저 우리 신앙인 아니겠습니까?
무더운 날씨에 코로나는 극성이고..
짜증이 많이 날 때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에게 미소를 띄워주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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