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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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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인 어제 6월6일.
인천교구에서는 해마다 성체현양대회가 열립니다.
올해도 김포 성당과 김포 성체성지에서
교구장 정신철 주교님과 사제단
그리고 많은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15년 가까이 쉬고 있던
성체분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기에
올해에는 다른 각오가 있었던 터라
성체 현양대회가 새삼스러웠습니다.
구름 끼고 비가 왔지만
워낙 가물었기에 비가 많이 오기를 바랐는데
성체행렬을 시작할 때는 비가 그치고
마치 어릴 때 가을 하늘처럼
파란 하늘이 몹시도 아름다웠습니다.
광명, 광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리는
어둡고 흐린 것과는 정 반대의 색깔을
성지 성당의 십자가 위로
하늘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5,13-16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오늘 복음의 주제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은
명언 중의 명언입니다.
무슨 설명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더해지는 모든 것은 치사한 사족일 뿐이지요.
그러니 중요한 것은 소금으로 남는 일이겠지요.
썩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소금으로 남는 일일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서 부패가 없는 시대가 있었을까요?
성스러운 교회 안에도 있었는데요.
초대 교회가 끝나고 로마의 박해가 종식되자
출세를 노린 별별 인간 군상들이
교회 안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언되었으니,
신자가 되어야 출세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 속에는 성직자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결과는 어둠과 혼란일 수밖에 없었고
중세 교회의 부패가 시작되었던 것이지요.
빛은 어둠을 없애고 소금은 간을 맞춥니다.
어둠의 요소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굳이 범죄 같은 죄악이 아니더라도
삶의 활력을 빼앗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어둠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빛의 생활, 그것만이 답입니다.
통이 터오는 새벽을 오래 바라보신 기억이 있습니까?
저는 군대생활을 할 때 많이 보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업무가 바빠
자주 철야를 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그런 날이면 창문 너머로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곤 했었지요.
예, 그렇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며
아무리 약한 빛이라도
어둠 앞에서는 강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빛의 생활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빛일 수는 없으므로
빛이신 주님께로 나아가는 행위뿐입니다.
곧 그분의 힘을 청하는 기도와 선행이지요.
그러한 지향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이고요.
사랑을 하고 선행을 베풀고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을까요?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행복할 것입니다.
빛의 생활, 이러한 생활은 삶에 생기를 줍니다.
어둠이 걷힌 결과입니다.
또한 이것이 소금의 요소입니다.
소금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삶의 기쁨 아닐까요?
사랑 없는 삶은 기쁨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소유에 욕심을 냅니다.
소유하고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하겠습니다.
많이 가진다고 그것이 저절로
사랑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사랑과 소유는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곧 기쁘게 살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인생의 기쁨을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서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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