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 공지

오늘의 묵상(2022년06월06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6.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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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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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년 현충일을 앞두고

동작동 현충원에 다녀옵니다.

삼촌께서 6.25 동란 때 전사 하셨거든요.

 

미혼이셨으니까 당연히 자손이 없고

저희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 분들도 모두 돌아가셨으니

찾아 올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아기 때였으니 기억을 못하고

다른 조카들은 태어나기 전이어서

얼굴도 모르는 삼촌인지라 찾아뵐 생각을 않지만

 

저라도 일년에 한 번 찾아 뵙고

술 한잔 올리고, 절 하고

위령기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꾸준히 다니고 있습니다.

안 그러면 너무 외로워 하실 것 같아서요.

 

전사한 날짜는 7월15일인데

제사는 생각을 못했고

기도만 드리고 있습니다.

 

 

현충일 당일은 현충원이 너무 복잡해서

보통은 현충일 전날, 6월5일에 다닙니다만

올해는 4일이 토요일이고 5일인 어제는 주일인지라

그저께 4일에 미리 다녀왔습니다.

 

작년에 제가 말씀 드린 적이 있었나요?

삼촌 묘소의 좌측 세 번째 분을 찾는

어르신이 계셔서 매년 만나게 되었습니다.

 

9살 때 부친이 전사하셨고

20년 전쯤에는 부인과도 사별하셨다는

저보다 열 살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입니다.

일년에 한 번이지만

20년 가까이 뵙다 보니 목례를 나눈 것을 계기로

알고 지내게 되었지요.

 

 

외로우신 분이라 제가 늦게 가도

꼭 기다리셨다가 저와 음복을 나누며

세상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데..

 

작년에 말씀하셨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고, 기력이 떨어져서

앞으로는 오지 못할 것 같다고..

 

그럴 리 있겠느냐,

내년에 꼭 다시 뵙겠습니다.. 했는데

다녀가신 흔적이 없습니다.

제가 하루 빨리 갔으니 혹시 어제 오지 않으실까

오시면 전화 주십사 전화번호 적어

묘비석 옆에 놓고 바람에 날라가지 말라고

돌을 얹어놨습니다.

그런데 어제 하루 종일 전화를 기다렸건만

벨이 울리지 않는군요.

 

혹시 건강이 부쩍 나빠지신 것인지

아니면 나쁜 일이 생겼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번호라도 나눌 걸.

 

내년에도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꼭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교구에서는 성체 현양대회가 열립니다.

김포성당과 김포 성체성지에서

주교님 집전으로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잠시 후에 부지런히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 전례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8년에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 선포하셨습니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교부 시대 때부터 쓰였다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에서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성령 강림 이후 교회를

어머니로서 돌보았고,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19,25-34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끝까지 스승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 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 십자가 곁에 있는 사람들은

성모님을 비롯한 몇 명의 여인,

그리고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요한뿐입니다.

사랑하는 아드님의 참혹한 죽음을

지켜보시는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과 함께 고통과 죽음을 체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성모님을 맡기시고,

그 제자를 성모님께 아들로 제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새로운 모자 관계를 맺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26-27)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청원을

중재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을 대신하여

아드님께 간청하시는 자상한 모습을 보여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신앙인들은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간청을 드릴 수 있고,

또 주님께서 그 간청을 들어주시리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모자 관계는 예수님께서 떠나신 뒤

남아 있는 공동체가 지닌 일치와

사랑의 특징을 대변한다고 교회는 설명합니다.

 

교회는 하느님 아드님의 희생으로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와 성모님의 일치는

하느님 교회의 사랑을 미리

보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관계보다 모자 관계는

끈끈하고 강하며, 애정으로 묶여 있는 관계이지요.

그 안에는 모든 논리를 뛰어넘는

사랑과 일치가 담겨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모자 관계는,

그것이 곧 가톨릭 교회의 특징적 모습이어야 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평화의 모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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