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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5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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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한 곳이
인천 부평 산곡동이었습니다.
4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때 한 아파트에 살던
동년배의 교우 부부들이 모임을 시작했는데
참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습니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그곳에서 13년을 살았네요.
이후 우리는 현재의 시흥 은행단지로 옮겨왔고
다른 분들도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는데
그래도 끈은 놓지 않고 지내왔습니다만
세월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요?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소식을 전하는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시몬과 안젤라 부부와는
지금까지 꾸준히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40년이란 세월 동안..
어제는 그분들과 청와대를 다녀왔습니다.
운 좋게 신청을 한 것이 당첨 되었거든요.
뉴스로만 보던 청와대는 정말 웅장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대통령궁에 비해서도
그 화려함이나 규모가 최상급일 거라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영빈관 같은 곳이야 외국 정상들을
접대하는 용도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집무실이라던가 대통령 가족이 거주하는 곳이 ,
이렇게 호사스러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은 감정으로 관람을 끝내고
북촌마을, 인사동 거리를 거쳐
광장시장으로 와서 노포의 푸짐한 먹거리와
술잔을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시몬 형제와 안젤라 자매님 감사합니다.
우리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요.
오늘 복음은 요한 16,23-28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던 것은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쳐진
제자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심으로써
제자들은 충만한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마음이 환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바로 주신다니
정말 고마운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 때문일 것입니다.
기도는 자동 인출기가 아닌데요..
그런데 우리는 자판기처럼 조건을 채우면
금방 기도의 결과가 나올 줄 여깁니다.
하지만 기도는 절대 강요가 아니지 않습니까?
글자 그대로 ‘비는’ 행위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정성과 인내가 핵심이 아닐까요?
결과는 온전히 주님께 있는 것이고
우리는 청원을 드릴 뿐이니까요.
예수님의 이름도 아무렇게나 부를 수는 없겠습니다.
이익과 욕심을 위해 그분의 이름을 내세운다면
정말 곤란한 일일 것입니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숨은 이유이겠습니다..
옛사람들은 높으신 분의 이름은
쉽게 부르지 않았답니다.
작명할 때에도 겹쳐지는 한자는 피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대부들은 달리 사용하는 이름이
많았던 것입니다.
모두가 이름을 대하는 정성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도를 통해 힘을 얻고
은총을 체험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기도는 설명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냥 ‘매일의 생활’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의 기도는
예수님께 말씀 드리는 일상사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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