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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5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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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내린 비 때문일까요?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합니다.
그 대신 머리가 맑아지네요.
강수량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많이 가물었는데..
오늘 복음은 요한 16,16-20 입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깨달음이란
“뭔가를 깊이 생각하다가 알게 되는 것”
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곰곰이 깊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알게 되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요.
그래서인지 인터넷 검색창에 꺠달음이라고 입력하면
불교 관련 자료만 잔뜩 나옵니다.
그러나 깨달음이 불교만의 전유물일까요?
아주 오래 전 일인데..
제 어릴 적 친구 중에 세례명이 루카인
친구가 있습니다.
공부도 안 하고, 말썽만 부리던 친구였어요.
물론 당시에는 교우도 아니었고요.
중학교 졸업 후 소식도 끊어지고
언젠가 큰 사고를 쳤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곧 잊혀진 사이가 되었습니다.
훨씬 나중에, 어느 봉사단체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엉뚱한 경우라서 믿지 못했지요.
환갑이 넘은 그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얼굴은 50년 전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그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렀는데
그때 어느 신부님의 감화를 받아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세를 받던 날, 어린 복사들을 보니
제 생각이 나더랍니다.
아무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지금은 경북 구미에 제법 탄탄한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70이 넘은 지금도 울트라 마라톤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파트너가 스님입니다.
두 사람은 코로나 발생 직전에는
베트남 남북횡단 마라톤에 참여 했습니다.
1Km에 몇 백원부터 몇 천원까지 후원을 받고
두 사람은 묵묵히 달리고 달립니다.
후원금은 전부 기부합니다.
참 대단한 친구입니다.
그가 신앙을 가진 후 많은 노력을 했는데
우연히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 사람이
바로 달리기 파트너 스님이었답니다.
스님과 교분을 쌓으면서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깨달음이 뭔가 꺠달았다고..
불교에서는 깨닫는 순간 부처가 된다고 하지요.
불교의 깨달음과 우리의 깨달음이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어제의 복음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오시면
죄를 깨닫고 의로움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며,
사람들에게 심판을 확신시켜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깨달음 역시 은총이며 하느님의 이끄심입니다.
준비되어 있으면 누구에게나
깨달음은 주어질 것입니다.
아니, 준비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미 깨달음은 시작되지 않을까요?
그러기에 은총은 갑자기 옵니다.
성령께서는 예고 없이 오시는 분이시라고
어제도 말씀 드렸었지요.
깨달음을 위한 첫 준비는
올바르게 보려는 노력이라고 하더군요.
불교에서는 올바르게 보고 판단하는 지혜를
‘정견’(正見)이라 한답니다.
‘더하지도 말고 덜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라 하더군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신 성철 스님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갸우뚱 했었지요.
정견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라 하더군요.
득도하여 돌아왔지만
여전히 산은 그대로 산이고,
물은 그대로 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뀐 것은 산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바뀌어야 내가 바뀐다.’는 마음에는
깨달음이 오지 않습니다.
내로남불하는 우리 나라 정치인들에게
꼭 들려주었으면 합니다.
어제 말씀 드린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라는 것..
성령께서 주시는 진리가 복잡할 리 있겠습니까?
우리가 계산을 하고 조건을 달고
순서를 따질 따름일 뿐이지요.
그래서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모든 지식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산천초목부터 달리 보이고
모든 관계를 단순하게 인정하면
사람이 달리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은혜를 청해야 합니다..
진리 안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 해서는 안될 일이고,
어떤 행위는 의로운 것인지를
똑바로 바라보는 노력을 통하여
언제나 세상의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하느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깨어 있는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롭게 깨어 있는 삶이
바로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요
성령께서 이끄시는 삶이라는 것이지요.
성령께서 임하셔서 오늘도 내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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