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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5월16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5. 16.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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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5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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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매일 미사의 복음은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무엇인가?

엊그제 제가 이 질문에 답을 해보라 하면서

우스개 소리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옛날 가요의 제목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ㅎㅎ

 

오늘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알아볼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사랑의 종류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여섯 가지를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고등학생 때 감수성이 예민할 때는

이런 것들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참 잘들 외우기도 했습니다.  ㅎㅎ)

 

1. 에로스 (낭만적인 사랑)  2. 루두스 (유희적 사랑)

3. 스토르게 (우애적 사랑)   4. 프래그마 (놀리적 사랑)

5. 마니아 (소유적 사랑)   6. 아가페 (이타적 사랑)

아직 잊지 않고 있었네요.

 

 

어떤 분들은 아래 그림처럼 네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아가페의 의미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신의 희생'이라고 하지요.

 

결과적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의미로까지 나아갑니다. 

구원의 궁극적 결과로 인간들이 신을 알고, 

신의 희생을 알며, 신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신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희생'이 필요하게 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은

동일한 구속력을 지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그가 당신이라도 되는 듯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끊임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

예수님의 강조하시는 사항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늘 아가페적 사랑만 할 수는 없을 텐데..

그래서 가족을 비롯하여 생활하며 부딪히는

관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정답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 애매한 영역 때문에 폭력이 사랑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는 계속해서 상
대의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관계 속에서 헤매기도 하지요

 

그래서 대표적으로는 스토킹 같은 범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흔히 아끼는 물건이 있다고 하면,

그 물건은 사용하지 않거나 특별한 날에만

조심스럽게 사용하며 닳지 않도록

신경 써서 보관하게 됩니다.

사랑도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아낌’과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겐 일을 시키지 못합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가 움직이게 되거든요.

사랑하는 상대를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항상 연인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일을 시킨다면

정말 사랑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지요.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미안하고 슬플 때는

자신이 쇠약해져서 더는 밥을 해주지 못하고,

맘껏 안아주지 못할 때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아껴줄 수 없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인 셈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면 그 사람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게 즐거워지기도 합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요한 14,21-26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고

예수님은 그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호자,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모두 기억하게 해 주실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의 모든 미혹은 사라지고 진리가 드러날 것이며,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지혜 가운데 진정 우리가 청해

얻어야 할 지혜는 어떤 것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필요한 지혜의 은사가

제각각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저명한 신학자는 각 개인에게는

분별의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그는 분별의 지혜를 하느님께서

성령의 은총으로 허락해 주시기를 다음과 같이

간절한 기도로 청해야 한다고 하였답니다.

하느님,

제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소서.

만일 제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라면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진정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정신적으로 혼란하기 짝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은총이리라 생각합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복된 오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