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길 기도 - 기원과 그 의미
주님 수난과 죽음 묵상하며 그분 가신 길에 동행
해마다 사순 시기에는
신자들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더 열심히 바치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주일이 되면 코로나19 때문에
미사도 중지되어 드리지 못하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여
주일 아침에는 성당에 가서
매일 미사의 독서와 목음말씀을 읽고
묵주기도를 드리며
주일미사 대송을 한 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옵니다.
우리는 비단 14처 앞이 아니더라도
십자가의 길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이 어려운 2020년 사순 시기에
십자가의 길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쳐보면 어떨까요?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그저 입으로 외우는 기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죽음을 묵상하며
그 길에 동행하는 실천으로 여겼습니다.
(사진은 제주 이시돌 목장의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의 기원,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의 시작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세기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걸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묻힌 자리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얻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정형화된
처(處)나 기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일어난
장소를 따라 행렬하던 전통은
오늘날 십자가의 길 기도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라는 용어는
중세시기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보나벤투라 등의 성인들도
이 십자가의 길에 큰 관심을 두고 참여했습니다.
성인들은 십자가의 길을 방문하는 순례의 여정을
단순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로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 자체가
신자들의 신심을 수련하는 기도로 봤고,
많은 신자들이 이 십자가의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머문 곳, 14처
오늘날 우리는 14처를 만들어 성당에 설치하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칩니다.
각 처(處)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며 이동하던 중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장소들입니다.
이렇게 처를 만들어 기도하는 관습은
12세기경부터 시작된 풍습입니다.
신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걷고 기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먼 땅을
순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순례 길은 때로 이교도들에 의해
막혀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례를 갈망하는 신자들이
자신들의 도시에도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을 본 딴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처입니다.
따라서 각 처를 따라가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행위는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는 행위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곳이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따르는 수도원들이었습니다.
작은형제회 회원들은 수도원이나 경당에 처를 설치했고,
이를 통해 십자가의 길 기도가 널리 퍼질 수 있었습니다.
1688년부터는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 처가
설치될 수 있도록 허용됐습니다.
이를 공포한 복자 인노첸시오 11세 교황은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교회 내에 도입됐지만,
처의 수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클레멘스 12세 교황은 1731년
십자가의 길 14처를 승인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십자가의 길을 마련했습니다.
이 14처는
▲ 사형선고를 받음
▲ 십자가를 짐
▲ 첫 번째 넘어짐
▲ 마리아를 만남
▲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를 짐
▲ 베로니카가 예수의 얼굴을 닦음
▲ 두 번째 넘어짐
▲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함
▲ 세 번째 넘어짐
▲ 병사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함
▲ 십자가에 못박힘
▲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둠
▲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
▲ 무덤에 묻힘 순입니다.
이후 19세기경에는 14처와 십자가의 길 기도가
전 세계로 퍼져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기도로 바쳐져 왔습니다.
현재도 14처로 이뤄진 십자가의 길을 사용하고 있지만,
종종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로 이어짐을 강조하는 의미로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15처를 사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우리 은행동 본당도 15처로 되어있습니다.
신앙선조들의 십자가의 길, 성로선공
십자가의 길은 우리 신앙선조들이
열심히 바치던 기도 중 하나입니다.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을
성로선공(聖路善功)이라고 불렀습니다.
‘십자가의 길’이라는 의미만 생각한다면
‘성로(聖路)’라는 말로도 충분합니다.
또 굳이 기도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면
기도를 뜻하는 ‘신공(神功)’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선조들은 굳이 십자가의 길 기도 만큼은
‘선공(善功)’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선공은 선행이나 선업(善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존경할만한 행동이나
찬양할만한 업적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신앙선조들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그저 입으로 외는 기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죽음을 묵상하며
그 길에 동행하는 실천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신앙선조들이 성로선공을 대했던 마음은
신앙선조들이 사용하던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천주성교공과」는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받으신 고난을
묵상함으로 마음이 감동하여 허물을 고쳐
자기를 새롭게 하며, 혹 의덕을 보존케 한다”면서
십자가의 길이 신자들의 신심수양을 위한
실천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무지 이 선공(십자가의 길)이
가장 천주의 뜻에 흡합한(흡족하고 알맞은) 바”라면서
“연령(煉靈)을 구하기에 크게 돕는 바”라고
십자가의 길을 통해 쌓을 수 있는 선행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3월 1일
이승훈 기자의 기고문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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