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스크랩] 16년만에 3대 부자가 된 텐센트의 성공기

주님의 착한 종 2016. 5. 31. 10:22


마화텅(马化腾) 텐센트(중국명 腾讯) 창업 CEO는 최근 보유 주식 1억 주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했다. 165.7억 홍콩 달러(인민폐 138억 위안) 정도 되니까 약 2조 3480억 원을 기부한 셈이다. 중국에서 보기 드물게 통 큰 기부를 한 마화텅은 포춘 선정 ‘2016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부자 50인’ 명단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마화텅의 재산은 현재 206억 달러다. 부동산 재벌인 왕젠린(王健林) 완다 회장의 318억 달러나 292억 달러인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马云)에는 못 미치지만 140억 달러인 리옌훙(李彦宏) 바이두 회장보다는 많은 3위다. 138억 위안을 기부한 이후에도 마화텅의 부자 순위에는 변함이 없다.

QQ라는 인터넷 메신저를 개발한 마화텅의 성공 스토리는 마윈과 닮았다. 마씨 2인방이 초창기 무일푼으로 시작해 당시 인터넷업계에 넘지 못할 산으로 통하던 시나(新浪)닷컴이나 소후(搜狐) 왕이(网易)를 제치고 최후의 승자가 됐기 때문이다.

마화텅은 불과 16년 전만해도 100만 위안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던 가난한 인터넷 개발자였다. 컴퓨터를 만지고 놀던 마화텅이 선전(深圳)대학 컴퓨터학과 동기인 장즈둥(张志东)과 텅쉰을 창업한 것은 1998년 11월의 일이다. 얼마 후 쩡리칭(曾李青) 쉬천화(许晨晔) 천이단(陈一丹)이 가세하면서 창업 5인방 체제를 갖춘다.

당시 텅쉰은 장기 계획도 없고 핵심 제품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자금은 더 더욱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증시에 상장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중국에는 텅쉰 같은 인터넷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수익모델은 선전전신(深圳电信)이나 선전롄퉁(深圳联通)과 같은 몇 몇 이동통신 업체로부터 외주를 받는 게 전부였다. 조금 씩 돈을 벌어 생활이나 하다가 외부 상황이 좋아지면 사업을 키워야겠다는 희망이 그들이 가진 전 재산이었던 셈이다.

첫 사업은 선전톈신(深圳电信) 납품용으로 개발한 메신저 소프트웨어다. 절반은 베끼고 절반은 창작을 가미했다. 이 때 만든 소프트웨어가 바로 나중에 QQ로 이름을 바꾼 ‘OICQ’다. 엄격히 따지면 ‘OICQ’는 복제품이다. 원본은 이스라엘 기술자 3인이 개발한 ‘ICQ’다. 인터넷 상에서 메신저를 보내거나 채팅을 하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다. 한 마디로

세계에서 첫 번째로 나온 메신저 소프트웨어를 텅쉰이 한자로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한 것이다. 나중에 아메리카온라인(AOL)에 4억700만 달러를 받고 팔았으니 개발 가치가 그 정도 되는 셈이다.

OICQ가 나오자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고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덕분에 텅쉰과 마화텅도 업계에서 한 발 앞서 나간다. 그런데도 마화텅은 아주 난감해졌다. 인터넷 상에서 노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막상 수익과는 연결이 안 됐기 때문이다.

공짜 프로그램이라서 고객만 눈덩이 처럼 늘고 애프터 서비스 수요로 인해 운영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시장에서는 고객의 상업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화텅은 늘어나는 운영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사방으로 돈을 빌리러 다닌다.

그러나 돈을 벌지 못하는 프로그램에 투자를 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금이 바닥났다. 위탁 관리하는 서비스 컴퓨터를 관리할 비용도 대기 힘들었다.

눈에 불을 밝히고 밤낮으로 투자자를 물색했으나 허사였다. 메신저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텅쉰 만은 아니었다. 다른 업체들이 텅쉰 보다 오히려 잘나가던 시절이다. 이들 기업의 생존 방식은 텅쉰의 초창기와 똑 같았다. 제품을 개발해서 통신 대기업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를 찾지 못해 돈이 궁한 마화텅도 과거의 하청업체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OICQ을 한 단계 더 개량하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낙찰을 받기 위해 제품이 완전히 개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응찰 원서를 내면서 입찰에 참여했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낙찰 받은 회사들은 자기의 기술을 통신 대기업에 팔아버리고 영업을 접었다. 반면 낙방을 거듭하던 텅쉰은 다행히 QQ를 끝까지 보유하게 된다.

경쟁사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면서 QQ는 유아독존의 기회를 잡았지만 늘 자금이 부족했다. 마화텅은 사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벽에 부딪쳤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텅쉰의 주주인 선전싸이거(深圳赛格)그룹이나 광둥뎬신(广东电信)을 찾아가 “OICQ”를 300만 위안에 팔겠다고 해도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협력 업체였던 중베이쉰후(中北寻呼)그룹에 가서는 100만 위안 깎아서 “OICQ”를 팔겠다고 제안했다. 중베이 측은 “200만 위안짜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라는 말이냐”며 놀려대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OICQ의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서비스 위탁관리비용 때문에 마화텅은 자다가 기위가 눌려 벌떡 일어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시장에서는 OICQ 사용자들에게 사용료를 받을 것이란 이야기부터 심지어는 문을 곧 닫는다는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마화텅은 선전(深圳)전신국을 찾아가 60만 위안을 받고 OICQ를 팔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계약 조인을 앞두고 마화텅의 생각이 바뀐다. 자식이나 다름없는 OICQ를 팔아넘기는 게 말이 되느냐는 고민에서다. 즉시 계약을 중지시키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로 한다. 선전 전신국에 다니던 리리쥔(李黎军)이 여기저기 알아봐서 50만 위안을 대출해 줬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써버렸다.

대출 만기가 됐을 때 마화텅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리리쥔에게 생떼를 쓰기로 한다. 원리금 대신 주식으로 줄 데니 이걸로 결제하자고 버텼다. 리리쥔은 고민 고민하다 안 된다며 거절한다. 리리쥔은 결과적으로 수 천 억 위안을 벌 기회를 날린다. 당시 텅쉰의 채권자들은 이런 기회를 모두 날린 셈이다. 채권자들은 하나 같이 텅쉰의 주식을 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채권자는 “진짜 돈이 없으면 그만 뒤라. 돈을 날리면 날렸지 주식은 필요 없다”고도 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비슷했다. OICQ는 돈벌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기는커녕 아무리 부어도 메꿀 수 없는 블랙홀 같은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새 투자자를 구하지 못하면 만기도래하는 부채를 막지 못하게 되고 마화텅으로서는 먹고 입는 것까지 아껴야 하는 상황. 수시로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불안감이 몰려왔으나 이를 악물고 서비스도 하고 개발도 멈추지 않았다. 돈을 구하러 다니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전의 기회를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돈 걱정이 겹겹이 쌓인 가운데 더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다. ICQ를 사갔던 AOL에서 영문으로 된 법률소송 장을 보낸 것이다. OICQICQ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며 즉시 OICQ 사용을 중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사면초가에 몰린 창업 5인방은 심사숙고를 한 끝에 계속 밀고 나가기로 결정한다.

온갖 궁리를 다해 추가로 자금을 조달할 방안을 찾는 회합 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엔젤투자를 받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당시 엔젤 투자는 개념이 생소했다. 마화텅도 그 말을 처음 들었다. 듣자마자 감이 왔다. 당장 해보겠다고 답한다.

엔젤 투자에 대해 대충 검토한 후 꼼꼼하게 사업계획서를 만든다. 엔젤자금 유치를 위해 은 회사가치를 550만 달러로 포장하고 220만 달러를 투자 받아 40%의 주식을 넘기겠다고 생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왔다. 1999년 8월 중국 당 중앙과 국무원은 전국기술창조대회라는 것을 열어 기술 혁신을 가속화하고 고급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산업화를 실현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이어 선전에서 고급신기술 산업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중국 국제 고급 신기술 교역회를 열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화텅은 OICQ를 가지고 교역회에 나간다. 외부 행사에 웬만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마화텅이지만 이번에는 직접 나섰다. 개정한 66개 판본과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사업계획서 가지고 텅쉰과 QQ를 마케팅했다.

최종적으로 IDG와 홍콩 잉커(盈科)로부터 110만 달러의 투자를 받고 20%의 주식을 넘긴다. 이 때 마화텅은 두 차례 요추 수술을 받았고 2번째 수술 때는 병상에 누워 노트북을 켜 놓고 업무를 챙겼을 만큼 신경을 썼다고 회고한다. 텅쉰의 운명을 역전 시길 호기란 판단에서다.

실제 이 자금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자금과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바람에 미국에서 날아든 지적재산권 문제도 해결한다. OICQ이름도 QQ로 고쳤다.2000년 4월에는 QQ 등록 고객수가 500만 명을 돌파한다. 한 달 뒤에는 동시 접속 고객이 10만 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도 이례적으로 기업기사를 1면 톱으로 다룬다. 인민일보의 홍보 효과 등으로 고객은 더 늘었지만 상응 하는 대가는 따르지 않았다.

관리방식에도 문제가 생기도 융자로 조달한 자금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월 말만 되면 팍팍 줄어드는 자금을 추자로 융자할 생각을 하던 마화텅에게 다시 시련이 닥친다.

미국에서 IT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화텅은 기존 주주에게 추가 투자를 요청한다. 그러나 주주들은 추가로 투자하기는 커녕 주식을 전매하고 빠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나닷컴을 비롯해 야후 소후 왕이 등 당시 인터넷 기업과 접촉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QQ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뼈 속 깊숙이 박혀 있었다. 설령 흥미를 보인다 해도 자기 코가 석자인 마당에 매입이나 협력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였다.

렌샹(联想)도 찾아갔으나 보고서는 주리난(朱立南) 총재의 손에 전달도 안 됐다. 실무선에서 거절해 버린 것이다. 이름이 있는 기업을 다 찾았지만 돌아온 것은 거절뿐 이었다.

이때 구세주 격인 한 외국인이 마화텅의 사무실에 들어온다. 바로 남아공의 MIH그룹 중국사업부 부총재인 왕다웨이(网大为)란 사람이다. 그는 지혜를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모험을 한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던 지분 12.8%를 가져갔다.

자금 압박에서 벗어난 텅쉰은 이 때부터 상상 이상의 실적을 낸다. 매일 수 억 명이 QQ와 웨이신(微信) 위체트(WeChat) 등에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들은 정보를 이용하고 오락을 즐기고 인터넷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텅쉰과 마화텅에게 많은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현재 텅쉰의 시가 총액은 2000억 달러정도다. 잘나가던 왕이(网易)를 10개나 살 수 있는 자금이다. 이 보다 못한 시나닷컴은 60개를 살 수 있고 소후는 100개를 사고도 돈이 남는다.

지분 305를 보유한 남아공 MIH그룹도 중국 인터넷에 투자해서 대박을 낸 최후 승자가 됐다. 투자대비 1500배 이익을 남겼기 때문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투자격언을 되 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현문학 매일경제 영남 취재 본부장 m_hyun@mk.co.kr


출처 : 칭다오 한국인 도우미 마을(칭도마)
글쓴이 : 스프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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