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스크랩] 중국 생활, 반년이면 천하에 모르는게 없다는데

주님의 착한 종 2011. 8. 26. 12:37

"百闻이 不如一见"이거늘…

지난 90년대 중반에 회사의 주재원으로 중국에 처음 입성했을 때

현지 선배들의 조언 한마디가 생각난다.

“중국에 온 지 6개월쯤 되면 중국 전체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이 말을 하고,

이후 3년 정도 지나면 본인의 전문 분야와 본인이 직접 다녀온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을 하며,

이후 5년 정도 지나면 본인의 전공 부분만 제한적으로 말하게 되고,

그리고 10년이 지나면 ‘잘 모르겠다’고 라고 할 것 같다”라는 조언이었다.

이제 필자도 중국 진출 17년여 세월 속에서 새로운 업무를 개척하고 생활을 즐기면서

어렸을 때부터 책 속에서 봐왔던 역사의 현장 구석구석을 보고 느꼈지만,

그래도 “중국에 대해 무엇을 알았는가?” 라고 물으면, 상기 선배의 얘기가 가장 가슴속에 남는다.

현대사회는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해당 정보를 사전에 숙지한다면

직접 가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더라도 대충 갔다 온 ‘얼치기’ 경험자 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알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듯 하다.

즉 옛 말의 “서울 안 가본 사람이 가본 사람 보다 더 잘 안다”라는 말의 실현인 셈이다.

하지만, 필자는 오늘 고사를 통해 ‘백문이 불여 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 왕안석(좌측)과 소동파(우측)

소동파와 왕안석의 국화꽃잎 고사

북송시대의 왕안석(王安石)과 소동파(蘇東坡)에 대해서는

중국역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익히 들어봤던 명인(名人)임이 틀림없다.

두분 다 송나라시대의 명 정치가이자 시인으로 명성을 떨친 당송8대가 중에 포함되는 대문호이다.

왕안석은 정치적으로 신종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왕안석 신법을 제정하여 강력한 개혁정치를

펼치면서 당시의 보수세력인 사마광 일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곤 하였다.

소동파 역시 관료 후배이지만 사마광 일파에 합류하여 신법에 저항하였다.

그러한 시점에 다음의 고사가 있다.

소동파가 하루는 당시 재상 왕안석을 방문했는데 마침 왕안석은 집에 없었다.

왕안석의 집을 둘러보던 소동파는 우연히 책상 위 벼루 밑에 깔린

미처 완성되지 않은 시 한 수를 발견했다.

어젯밤 서풍이 불더니
뒷뜰의 국화 꽃잎이 떨어져
마치 황금이 땅에 가득 쌓인 것 같구나


이 시를 본 소동파는 이렇게 생각했다.

“가을이 되면 서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화는 서릿발이 심한 날씨에도 굴하지 않은

‘오상지골(傲霜之骨)’이라서 가을이 아주 깊어서야 시들기는 하되 꽃잎은 떨어지지 않은데,

어째서 꽃잎이 황금처럼 땅에 깔려 쌓였다고 했을까?’

이것은 시의 흥미를 위한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그래서 소동파는 그 시 아래에다가 이렇게 적어놓고는 자리를 떴다.

가을 꽃은 봄과 달라 떨어지지 않거늘
시인께서 잘 살피시길
한 말씀 드리노라


왕안석이 귀가하여 소동파의 글귀를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소동파는 후베이성 한 지방의 현령으로 발령 받아 부임하였다.

소동파는 내심 당시의 실권자인 왕안석이 당시의 사건에 불쾌하게 여겨 본인을 지방으로

좌천시켰다고 생각하여 불만을 품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후베이성에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오고, 이곳의 국화꽃도 만발하였다.

소동파는 활짝 핀 국화송이를 앞두고 친구들과 거나하게 주흥을 즐기게 되었다.

아! 그런데 며칠 동안 큰바람이 불어 뒤 뜰의 수십 포기나 되는 국화의 꽃잎이 하나도 없고,

황금으로 수 놓은 듯 정원에는 노란 국화 꽃잎이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다.

소동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국화 꽃잎도 바람에 떨어지는 구나.

그리고 왕안석의 싯구절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거였구나….

부끄러움과 자괴감, 그리고 왕안석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몰랐다는 고사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니 즐겁지 아니한가?

누구라도 모든 사실을 직접 경험해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삼국시대의 제갈 공명은 약관 26세의 나이에 천하를 3분하는 대계를 제안하였다.

불과 26세의 젊은 나이에 무슨 많은 경험과 실제 견학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가보지 않고 머리 속에서 세운 전략에 따라 실제를 완성시켰으니,

범인으로서야 어찌 일상의 논리로 영웅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국을 이해하고 중국사업의 진수를 터득하려 한다면 중국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고 선인들의 숨결을 체득하는 것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넓디넓은 광활한 중국의 영토 아래서 저 멀리 북으로는 하얼빈, 치치하얼, 둥닝에서 북국의 정취를

만끽하고, 지린성에서는 백두산 및 한민족의 발자취, 랴오닝성에서는 고구려의 요동성터, 여순감옥

등 우리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중악 숭산, 서악 화산, 남악 헝산(衡山), 북악 헝산(恒山), 동악 타이산 등 중국 전통의

오악(五岳)과 푸퉈산, 주화산, 어메이산, 헝산, 오대산 등 불교 5대 성산을 둘러 봄으로

중화민족의 기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서쪽으로는 간쑤성 둔황의 막고굴, 옥문관을 통한 실크로드의 발원지, 칭하이성의 맑디

맑은 하늘아래의 칭하이 호수 및 푸른 초원, 그리고 외부 온도는 40도가 훨씬 넘는 중국에서 가장

더운 지역 신장 투르판에서 바라보는 천산의 만년설, 베이징에서 2박 3일간의 72시간 여행 끝에

다다른 중국 속의 또 다른 나라 신비한 티벳, 그곳에는 해발 4천 미터 에서 인생을 얘기 할 수 있는

색다른 느낌이 있다.

사시사철 봄의 정경으로 모든 사람을 나른하게 하는 윈난의 샹그릴라, 리장, 다리,

그렇지만 여름과 밀림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솽반나, 내몽고의 푸른 초원 위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호쾌함…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동양 고전적인 신비한 모습의 광시성의 구이린, 후난성의 장가계,

안후이성의 황산, 푸젠성의 무이산, 구이저우성의 황과수대폭포, 하이난성의 남국의 정열,

그리고 충칭에서 열차를 타고 산을 넘고 꼬불꼬불 산모퉁이를 휘돌아서 동양 산수화의 한가운데를

질주하여 쿤밍에 도착하는 12시간의 기차 여행,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어느 지역 어느 산골 에서의 두리번거림 등등…

아! 어찌 한 두 줄의 서설로 광활하면서 다채로운 중국의 산하와 수천년 역사의 현장을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단지 필자는 중국 지도를 앞에 놓고 여러분의 족적에 따라 표시해 가면서 떠나는 즐거움과

현지에서 체험하는 공기를 마음으로 느껴보시길 제언해 본다.(jgkim1226@hanmail.net)

 

작성자
포스코건설 중국법인 초대 동사장, (現) CNP건설 사장
김점권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출처 : 청도의 아름다운 꿈을 위하여
글쓴이 : 청아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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