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중국의 실체와 한국인들

주님의 착한 종 2011. 7. 12. 10:41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큰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현재 중국은 일본에게 저개발 국가 지원금을 매년 4조원(?) 정도를 무상 지원 받는

가난한 국가이고, 미국은 전 세계에 군대를 보내어 관리하는 경찰 국가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도 일본에게 1000조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50년 예산 규모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구촌의 전쟁은 미국이 일본의 대리(代理)전을 치르게 된다는 말이 있다.

 

선량한 사람이 범죄 조직의 감시를 받고 갇히고 범죄 조직이 활개 치는 국가 사회는

그 자체가 실질적으로 외세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중국이 돈을 많이 번 것 같지만, 사회는 더 오염 되었다.

이것은 자체가 밑지는 장사이고 결국은 다 잃게 된다.

그러나, 국가 권력 자체가 약점이 많고 존재의 정당성 명분이 약하거나 부패하면,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오염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개방되기 이전의 중국 각 지방 토착 깡패들의 유명세는 지금까지 풍문으로 들린다.

그리고 지금도 저열한 건달들이, 홍등가 새벽 길에 소금을 뿌려 놓은 듯 깔려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본주의화로 개방된 시대에 건달들의 세계는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원래 이웃을 자기 집으로 잘 들이지 않는 풍습을 가졌다.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중국의 풍습을 많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조선족은 동족이라는 개념이 한국인보다는 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교육 받았지만

한국인은 조국의 교육을 받았으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는 조선족 업자들이 저열(低劣)한 건달들이 많고,

한국인들이 그러한 자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어둠의 시대에는 어둠의 자들이 정치 사회 권력을 장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한국인이 중국인보다 인격적으로 더 났다(좋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문화적 차이가 있고, 장 단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교만심이나 우월감은 결코 우월한 인격자의 것이 아니고

해결의 방법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이 오염되고, 돈의 노예가 되고 방향 감각을 잃고,

코 앞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하는 자들은 스스로 화를 부르고,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물론, 너무 선량하게만 보여지는 사람도 약취(掠取) 및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중국의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대에는 중국 조선족 건달들에 의한 육안감시,

통신 도청 및 몰래 카메라 감시망이 깔리고 덮여있다.

중국의 하층민은 이것이 인간의 기본 인권 침해 즉, 범죄 라는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중국에 있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조심하고,

중국인을 함부로(쉽게) 집에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중국의 조선족이 동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조선족을 고용할 때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낫다(좋다).

그러나, 그 여자의 뒤에는 감시 및 조종하는 건달들의 검은 세계가 있다.

업소의 빈 방에도 한국인을 몰래 감시하는 장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조심해야 한다.

한국인의 생각은 그런 몰래 감시는 인권 침해이며 기본적인 범죄라서

아무런 영향력도 실효성도 없다라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사소한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있는데,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도 언행을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감시하는 근본 이유는, 검은 돈이 우리 민족의 이간질을 원하기 때문이다.

, 검은 돈이 우리 민족 집단의 단결 및 성공된 힘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 자멸의 계획이다.

자기 집단의 도덕 질서 파괴와, 정신적 오염과 동족 간의 이간질 방해 차단을 통해서

버는 푼돈은 집단 전체로 볼 때 엄청난 손실이다.

그런 돈은 자가 인권이 팔리고 어둠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 집단과 함께 스스로 말라 죽다가 내전(內戰)을 벌이게 될 것이다.

 

사회란, 서로 섞이는 교통이자, 서로 부디치는 쓰리쿠션 다마치기이다.

따라서 남을 이간질 차단하면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회란 붕어의 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인은 공멸을 통해서 동족은 하나라는 교훈을 얻으려고

방향을 잡았다.

 

살아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서로 존중하고 먼저 돕고 정직한 거래를 하고 믿음을 쌓는 것이다.

사회 전체를 위한 공의(公義)로운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 배려하고 친절해야 한다.

서로 돕는 것이 사회이지, 서로 속이고 시간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해치고

음해 차단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고, 결국은 전체가 엄청난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란, 서로 존중하고 친절하고 돕고 자유롭게 만나고 대화하고 연결하고

거래하고 믿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자를 위로 올리고 존중하고 받드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러한 자율 기능을 누군가 간섭 및 억제 차단하고

반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훌륭한 자들을 어둠의 인해로 가두고 이용하고 있다.

 

사회를 총체적으로 감시하고 음해 이간질 차단하는 것은 사회도 아니고,

외세에 이용 당하는 일시적인 집단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될까.

인간은 집단적으로, 다 함께 살거나, 다 함께 죽는 것이다.  

민족은 공동 운명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