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제5화 - 한-중 보따리 상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2부

주님의 착한 종 2009. 2. 3. 17:26

5 - -중 보따리 상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2

 

어느덧 배를 탄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환경은 중국 쪽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지만

작년 같은 배에서의 선상 생활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이어지고 있다.

 

무엇 하나 해 놓은 것이 없다.

돈은 점점 축나고 왜 배를 타고 상인 신분으로 오고 가는지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그들처럼 뼈 빠지게 상인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배를 타고 있는지 솔직히 내 자신이

처량하게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사이다.

이번 상인으로서의 승선 목적, 다시 말해 따이공의 목적은 선상에서

중국 하북성 자료에 대한 번역이었다.

대부분의 조선족 분들이 한국어 중국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지만.

문자 해독능력에서는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번에 배를 타면서 상당한 식견을 가진 조선족 분인

김금화와 김영남이란 두 분을 만났다.

그들에게 번역을 부탁했다. 난 아무런 도움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 일이 끝나면 인천-진황도간 왕복 선편을

드리려 했는데 먼저 내색하기 싫었다.

 

다분히 돈 없는 한국의 중년 남자가 무작정 번역을 부탁 드렸다.

염치 없는 행동만 인식시켰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내 부탁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다분히 금전적이 이유에서 일까.

그들은 내 번역 청탁을 고사하였다.

나는 노심초사를 한다.

그들에게 금전을 지급함으로써 선상에서의 번역 작업을 이어갈까.

아니면 북경이나 심양에 있는 전문 번역 작가에게 의뢰해야 하나.

고민과 번민을 거듭했다.

난 전문 번역 작가에게 의뢰하기로 했다.

아주 힘든 작업이 될 것 같다.

배에서 지루한 시간을 번역작업에 매달릴 생각이었지만,

번역 전문가가 아닌 그들에게 상대적인 금액을 얼마나 지불하여야

할지 난감하다.

선상에서는 하북성에 관련된 한국쪽 자료 정독해 갈 생각이다.

이번 중국 1년간 여행 예산은 현지에서 일하며 조달할 생각이며

출발점은 일백만원으로 책정하였다.

환율이 폭락해서 그런지 벌써 30만원 정도의 초과지출을 하였다

앞으로 시작할 중국 일정이 걱정되며 솔직히 벅차다.

그리고 이 금전적인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할 것 같은 나약함에 흔들리고 있다.

 

일단 한국에서 노트북을 들여와 차익으로 수익을 올릴 생각이지만,

얼마나 될까. 고생과 노력하는 만큼 수익은 별로 없다고 본다.

중국인을 알아간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수익 쪽은 2월 중순 한국에서 촬영일과 중국 여행객을 모집하여

하북성 여행경비를 마련해 볼 생각이다.

이번 중국 진황도 길에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 중국음식 탐방이었다.

다행히 상인 중 한 분이 중국음식을 탐방하고 다니는 분이 계셔서

그분과 일부분은 같이 할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새로 얻은 아파트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낡은 아파트인데 중국 특유의 냄새가 된다.

요즘처럼 중국의 고물가와 환율 문제 등으로 심신이 고단한 상태여서

두 달간 아파트를 20만원에 임대하였다.

올해 중국 여행 및 사업 목적이 협의적으로는 하북성에 관련된

여러 자료 취합이다.

광의적으로 내가 중국에서 진행할 여행, 유학, 실버 산업이다.

빚을 얻어 사무실을 얻을까 생각도 했다.

현재 내 개인수입이 완전히 막힌 상태에서는 사무실을 얻어

유지한다는 게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다행히 나의 블로그에 관심을 가지신 김영식사장님이 내 사업적

취지와 상호보완적 사업 과정을 함께 하고 싶다며

인천과 진황도에 개설한 사무실을 임의로 사용해도 좋다는 내락을

하셨다. 아직도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몇몇 분이 같이 하고 싶다는 의견도 개진해 오고 있지만,

내가 아직도 중국에 가진 지식과 인적 자원이 아주 일천한 관계로

그분들과의 동거동락은 시기상조인 생각도 든다.

솔직히 아무리 공짜로 한-중 양쪽에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다 하여도.

결코 작은 유지비가 들어가는 게 아닌데,

내가 마냥 숟가락 하나만 올려놓고 목구멍을 채우기에는

많은 부담감을 지울 수 없다.

설날 전까지 확답을 달라 하는데,

정말 심신이나 금전적으로 아무 금전적 부담 없이 들어가기 민망하고,

금전적 유지에 진정 버거움을 느낀다.

내가 중국에 대한 실전적 생활을 탐방해 보고 싶다고 하자 중국에

계신 지인 분이 중국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신다.

315일경 영구 바이췐에서 상인 신분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이유는 고구려 천리장성인 건안성, 안시성, 백암성, 요동성 전문

탐방기간으로 한달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1항차 상인으로 다니며 중국 현지 경비를 마련할 생각이며

남는 시간을 홈스테이와 천리장성 탐방에 집중할 생각이다.

 

-중 보따리 상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난 솔직히 상인은 아니다. 상인이라면 배를 타는 동안 일정 부분에

수익이 창출되어야 하는데, 난 수익을 올리는 데는 관심은 없고

오로지 신변치료와 사무실개설 번역작업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수익이 있을 리 만무하고 오히려 지출만 확대되고 있다.

 

다만 상인 신분으로 다니면 중국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왕래할 수

있고 한-중 현지의 보따리 무역의 실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의 지식의 양분으로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인 분들과 관계가 아주 나쁘다.

그들과 교감할 수 있는 폭도 아주 제한적이려니와 그분들의 목적은

상인이라는 낱말과 같이 오로지 한-중 양국을 오가며 자신들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이비 상인인 나는 10년간의 계획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왔다.

내게 상인이란 신분은 오로지 저렴하게 중국을 오고 갈 수 있는

교통편의 확보일 뿐이다

내가 보따리 상인에 대하여 아는 것은 대개 50%로 선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정보만으로도 책 한권 정도는 솔직히 적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보따리 상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짓일지도 몰라 인터넷상에 그들의 일상과 사업적 내역은

적어가지 않기로 했다.

다만 내가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 보따리상의 경험의 일부만을

내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다.

한국에서 보따리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온다면.

그때 지면을 빌려 나의 일상과 그들 보따리상의 경험들을 한번

활자화할 생각이다.

앞으로 5개월 정도 진황도, 영구, 연태, 연운 배를 타며

그 지역의 정보를 취합해 볼 생각이다.

그들과의 어느 정도 마찰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보따리상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하지 않고 신분에 맞게 행동거지를

맞춰 나갈 생각이다.

내가 적어가는 한-중 보따리 무역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

혹시나 그쪽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리고 보따리 상인 분들 또한 사회적 직무에 자신의 일에 관한

책임을 질줄 아는 구성원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적어가는 보따리 상인의 글은 아주 지극인 단군세상

개인의 일상적 이야기이며 보따리 상인들과의 배치되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 글을 읽어주는 이들 또한 이런 배려에서 정보를 취합해

주시기 바란다.

 

난 보따리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보다는 내가 중국 현지에서 겪고

바라보는 나의 일상적 중국생활백서를 통해 여러분이 좀 더 중국을

이해하는 장이 되길 바랄 뿐이다

 

-출처 : 생생소호무역 천리장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