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여보 글라라

주님의 착한 종 2009. 1. 29. 11:47

여보 글라라

잘 있어?  우리도 잘 있어.

프란치스코 담임선생님이 전화했어.

모의고사에서 1등 했대. 공부하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모니카도 잘 있어. 스킨스쿠버 하느라고 바쁘고 남자친구도 생겼어.

대학 1학기 성적은 C로 깔았지만. 좀 놀아야지 1 학년 땐.

 

아침에 미사에 갔다 와서 하루 종일 모아둔 설거지 하고 모니카 깨우지.

일부러 아침식사는 모니카에게 시키고 있어. 이젠 곧잘 해.

장모님 생활비는 꼬박 꼬박 드리고 있어. 하는 데까진 해 봐야지.

 

교육분과장, 교리교사, 레지오 단장은 그만 두었어.

가정주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래도 레지오는 5년째 빠지지 않고 있어.

 

내년이면 나도 마흔 여섯이야.

서울에 있는 신학원에 다니려고 하는데 무리일 것 같아.

레지오만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여보, 나 장가가야겠어. 애도 기간도 끝났고......

내 가슴에 뚫린 구멍이 너무 커서 혼자서 서 있을 수가 없어.....

다른 사람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적어도 당신만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신앙심 깊고 착한 여자로 좀 보내줘. 

당신 데려간 분에게 말씀드려봐.

좋은 사람 데려갔으니 좋은 사람 보내주시라고...

 

여긴 불황이야. 우리 회사도 작년만은 못해.

더구나 부사장이었던 당신이 없으니까.

그래도 하느님, 어머니, 장모님에게 드리는 돈은

날짜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젠 당신 잊어버릴 거야. 

연미사도 1년 이상 드렸으니 이젠 특별한 날에만 드릴 거야.

이해해줘. 당신만은 이해하겠지. 우린 환상의 파트너였는데....

애들이 “아빠 우리 집보다 더 행복한 집은 없을 거야” 그랬었는데.....

이젠 전설로 남겨져야 하나봐.

잘 있어.  이젠 안녕이야. 

나쁜 사람.

 

- 예전에 유니텔 가톨릭 동호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조 사도요한의 글입니다.

  이 글을 받아본지 벌써 5년이 넘었군요.

 

  군포 본당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두 부부, 사도요한과 글라라.

  구로 공구상가에서 두 부부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요한이 암에 걸려 노심초사했었는데,

  요한은 살아나고, 오히려 건강하던 글라라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서러워하던 요한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렇게 아내를 못 잊어하던 요한이 재혼을 결심하며 쓴 글입니다.

  처음에는 저렇게 아내를 사랑하던 친구가 어떻게 재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부부 사랑이 깊으면 떠나간 배우자의 빈자리를 메울 수가 없어

  곧 따라가던지, 아니면 빈자리를 채울 방법을 찾던지 해야 한다더군요.

 

  어제 중국으로 떠나는 내게 손을 흔들며 눈가를 훔치던

  실비아의 모습을 보며

  나 또는 실비아.. 언젠간 헤어져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실비아와 헤어지게 되면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방정맞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난 정말 자신이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요한 형제는 아직 아이들이 어렸을 때니까 아버지의 의무감이 있었을 테지만

  나는 아이들도 다 컸으니까 그런 의무감도 없고..

 

  그러니 부부란 있을 때 잘 해!! 라는 말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정초 아침부터 쓸쓸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청도에 계신 여러분들.

  그저 살기에도 외로울 여러분들,

  부디부디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아름답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오정 형제 (사도요한의 닉네임)는

  재혼한 부인과 함께 열심히 성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50이 훌쩍 넘어버린 사오정 형제 가족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