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2008년 1월 8일 아침 출근하면서 아내의 머리맡에 남겨 놓은
제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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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1. 당신은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아 내가 안기에 꼭 맞다.
2. 당신은 벌써 50중반을 바라볼 나이인데도 너무나 날씬한 몸매를 가졌다.
3. 당신은 아직도 30대에 못지 않는 고운 피부와 예쁜 얼굴을 자랑한다.
4. 당신은 언제나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5. 당신은 나를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6. 당신은 친정 어머니에게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를 대접한다.
7. 당신은 시부모님께 잘 한다.
8. 당신은 딸들을 사랑하고 친구처럼 잘 지낸다.
9. 당신은 나와 딸들을 위해 언제나 기도한다.
10. 당신은 요리를 잘 하고, 늘 내 건강을 위해 식단을 준비한다.
11. 당신은 언제나 많이 참아 준다.
12. 당신은 별 것 아닌 친정일로 나에게 미안해 한다.
13. 당신은 건강하다.
14. 당신은 알뜰해서 많지 않은 월급으로도 불평 없이 잘 산다.
15. 당신은 내가 직장일로 힘들어 할 때 언제나 나를 위로해 준다.
16. 당신은 내가 아이들과 섭섭한 일이 있을 때 내 편이 되어준다.
17. 당신과 나는 정말 궁합이 잘 맞지?
25년을 같이 살았어도 오늘은 겨우 17 가지 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는데
앞으로 자주 생각해 보아야겠어요.
5년 후, 결혼 30주년 기념일을 진주혼식이라 하던데
그때까지는 한 100 가지는 더 발견해야 하겠어요.
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잘 살고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말…
한국 남자들이 다 그렇듯 나도 잘 하지 못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2008년 1월 8일, 결혼한지 25년 된 날,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당신을 위한 날을 만들고 싶은 생각을 했지만
직장 일이 바쁘다 보니 포기하고
대신 문득 사랑 고백을 하고 싶어졌지…
오늘 저녁 감사 미사를 드린 다음,
괜찮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깊은 밤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나눈 다음,
포장마차에서 소주라도 한 잔 나누거나…
투정 잘 부리는 남편이
결혼 후, 처음으로 결혼 기념일을 떨어져 지내게 되었습니다.
실비아는 오늘 아침 미사를 드리러 갔을 것입니다.
1983년 1월 8일, 토요일. 지금으로부터 꼭 26년 전,
정동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혼배미사를 드린 날.
그날부터 우리는 부부의 연을 맺었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러
나는 50 중반을 훨씬 넘어섰고,
실비아도 꽃다웠던 자태를 딸들에게 전해준 채
50 중반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26년의 세월...
작년 은혼식 때에는
“ 아직은 큰 굴곡 없이 잘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가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다가오는 걸 부인할 수 없었는데..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정년퇴임,
그리고 결국은 중국 청도 땅에서 실비아와 떨어져 기념일을 맞았습니다,
일을 시작하자마자 금융위기에 경기침체에 고환율이 닥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당신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은 착한 여자라, 성모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썼던 17개의 칭찬도 바꿔야 하겠어요.
어머니의 병환으로 친정 엄마를 오빠 집으로 보내드려야만 했던
당신의 아픈 마음도,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시어머니를 보살펴드려야 하는 어려움도,
백수가 된 남편 때문에 겪게 된 경제적인 문제도,
무엇보다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편의 건강과 안위에 대한 걱정도..
모두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드리고 살아가는 그 모습에 대해
칭찬의 항목을 수정하고 업그레이드 해서
월요일 한국에 갈 때, 고운 분홍색 봉투에 넣어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실비아.
정말 사랑해요.
당신을 내게 보내주신 주님의 배려에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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