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청도 이야기입니다.
중국에서는 수녀님들이 수도복을 입으실 수가 없습니다.
평복을 하시고 계시다 보니,
여러 에피소드가 생기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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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때, 골목대장이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야기인 즉슨..
미사 후, 버스 정거장으로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누가 막 부릅니다.
ㅎㅎ, 푸른고을 형제, 다니엘 형제, 사무엘 형제 부부..
멋지고 따끈따끈한 차에서 부릅니다.
기분좋게 얻어타고 간 곳은 명인분식.
수녀님이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한다고 모였다고 하네요.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가겠다고 하니
그냥 들어가서 피우랍니다.
이층에 올라가서 담배를 피우며 둘러봐도 잿떨이가 없네요.
마침 카운터에 그저 착하게 보이는 자매님이 게시길래
다가가서 말했지요.
자매님, 잿떨이 하나 주세요.
그런데, 이 자매님, 대꾸가 없네요.
귀가 어두우신가?
조금 머쓱해져서... 있다가
학생이 나오기에 잿떨이를 얻어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아뿔싸... 귀가 어두운 자매님인 줄 알았던 그 분이
바로.. 바로,, 수녀님이시라니...
참나...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수녀님은 모른 척 하시던데..
알고도 모른척 하시는 건지, 정말 모르시는 건지..
게다가 맛있는 만두도 제게 덜어주시고,
나중에는 커피까지 타 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수녀님,
수녀님도 잘못이 있어요.
어쩔 수 없이 평복은 하셨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쉽게 구분이 가도록 '나는 수녀님' 이라던지
그것도 안 되면, 성체 표상이라던지.
뭐 그런 거라도 하고 계시면 이런 실수는 안 하지 않겠어요?
(쓰다 보니, 이건 사죄가 아니라 시비조가 되어 버렸네..)
농담이었고요.
이웃 집 좋은 분 처럼, 옆에 계시니 정말 좋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신자를 둘로 구분한다면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할 수 있겠고
그렇다면 수도자는 평신도에 속하게 됩니다.
굳이 편을 가르자면, 수녀님들은 우리 평신도 편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오늘은 수녀님께 저지른 무례도 있고 하여
수도자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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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정체성
수도자는 혼자 살고 있기에,
뭔가 범속한 다수와는 다른 거룩한 정결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다.
존재론적으로 그 안에
남성과 여성을 함께 통합해낸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기에
거룩한 정결을 이뤄내고 있다.
비록 인간적이고 행위적인 측면에서
온갖 부족함과 허물을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말이다.
수도자는 그저 수도복 한 벌에 만족하며
거친 음식을 먹고 좁은 방에서 지내고 있기에,
거룩한 청빈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론적으로 그 안에
과거와 미래를 통합한 현재라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기에
거룩한 청빈을 이뤄내고 있다.
때론 의식주에 대한 아무런 염려 없이
풍요롭게 잘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가난하게 살게 된 탓을 과거에 묻지도 않고,
앞으로는 부유하게 살고자 하는 희망도 갖지 않는다.
늘 가난하길 원한다.
부분적이고 현실적인 가난이란 모습 속에서
전체적이고 본래적인 풍요를 보면서.
수도자는 그저 윗사람의 명에 따라 이리도 가고 저리도 가고 있기에,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뜻을 내세우지 않는
거룩한 순명을 살아내는 것이 아니다.
존재론적으로 사도직에 수반된 어느 공간에도
묶이지 않음으로써
공간 전체를 통합해낸 삶을 살아내고 있기에
거룩한 순명을 이뤄낸다.
때론 주어진 소임이 힘들고 어려워
마음앓이를 잔뜩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수도자는 이렇게 남자와 여자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해낸,
인간 존재의 참된 본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기에 아름답다.
– 유 시찬 신부의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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