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주님의 착한 종 2008. 12. 13. 11:14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실비아 마님은 꾸리아 단장도 한 적이 있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다니고 있지만 저는 직장 일이며 본당 일들을 핑계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언제든 해보려고 호스피스 교육도 받았는데..

 

정년퇴직을 하면 실비아 마님과 여행도 다니고 봉사활동도 다니고..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아직 연로하신 부모님에 장모님, 그리고 졸업 못한 딸에,

부실한 연금에 (아직 수급연령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그래서 함께 지내기는커녕 이렇게 생이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실비아에게 미안합니다.

월요일, 비자 문제며 몇 가지 일도 있고 해서 한국에 다녀와야 하는데

꼭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아직은 예쁜 얼굴이며 몸매를 가진 실비아를 생각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합니다.

 

정말 잘해야 할 텐데,

물론 금전적인 여유도 있어야겠지만 서로 건강해서

느지막한 새로운 인생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할 텐데..

 

 

나 늙으면 당신과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서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들고 산책 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 할거야.

이 때 나직이 모짜르트를 올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마셔야지.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힘들었나?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목에 겨자 빛 실크 스카프 메고

나는 연 베이지 빛 점퍼 입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까? 감미로운 드라마 같은 영화...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젊었을 땐 하지 못했던 사진 한번 찍을까?

예쁜 액자에 넣어 창가에 놓아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어느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