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다녀왔습니다.
폐일언 하고..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안락한 곳이 바로 실비아 마님의 품이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이 바로 실비아가 차려 준 밥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일주일 간, 아내와 함께 하는 하루 세끼 식사가 이렇게 큰 기쁨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월요일 한국에 갔고, 실은 목요일쯤 되돌아 올 생각이었는데
하루만 하루만.. 더 실비아와 함께 있고 싶었고
딸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결국은 주일날이 마침 제 영명축일(클레멘스, 제4대 순교 교황)이라서.
그날까지 버티고 돌아왔습니다.
마침 금요일엔 본당 꾸르실리스타(스페인어, 영어로는 Course라는 의미)
행사가 있어서 모처럼 다정한 얼굴들과 함께 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제가 우리 본당에서 제일 고참 차수이거든요.
그러니 당근, 교우들도 반가워 하고..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강추위가 몰아쳐서 영하 7도까지 기록했는데
마님은 남편이 온 김에 김장을 하겠다고 서둘러서
이틀 만에 끝냈네요.
혼자 김장 재료를 사고, 운반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배추 쌈에 돼지고기 보쌈과 소주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
더 큰 이유라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고마운 마음에 청소며 정리를 하고,
마님 허리며 등을 마사지 해주는 것으로 감사함을 대신 했네요.
김치며 깍두기를 푸짐하게 담아 부모님 댁에 가져다 드리고
원래는 부모님과 식사를 함께 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기다리는 동네 교우분들 때문에 서둘러 돌아왔습니다.
직장을 그만 둔 후,
혹시 내 마음을 상하게 할까.. 조심조심하던 아내의 일거수 일투족이
새삼스럽습니다.
간신히 이곳 청도에서 일을 시작했건만
하필이면 시작하자 마자 글로벌 경제위기에
유달리 한국만 겪는 고환율로 사실은 너무 힘들기만 합니다.
특히나 고환율은 150달러에서 50달러로 하락한 국제 석유가도,
급락하는 원자재 가격의 메리트도 모두 허공에 날려버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제조업체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있고..
게다가 키코로 인하여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은 기업가를 절망케 합니다.
강만수 장관은 좋겠습니다.
자신의 소신인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으니…
MB는 좋겠습니다.
자신이 신임하는 소망교회의 동료가 사퇴압력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소신껏 고환율을 유지시키며 버티고 있으니..
청도 시내에 눈에 익었던 한국 음식점이며 점포들이,
어느 날 을씨년스럽게 문을 닫은 채 서있습니다.
나도 버틸 때까지는 버텨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저분들이 오죽하면 저렇게 허망하게 돌아서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그분들의 아픔이 배가 되어 내 가슴에 전해옵니다.
공항으로 출발하는 나를 배웅하던 아내와 큰 딸..
어려우면 언제라도 접고 걱정하지 말고 돌아오라며..
위로하며 근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실비아의 모습이 차창에서 사라질 때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결혼하며 우리 방에 세 번째로 걸어 놓은,
아내가 만든 가화만사성이란 자수 표구는
십자가와 성모상과 함께 떼어 본 적이 없고..
나름대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왔지만..
이제 솔직이 고해성사를 보는 심정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아내를 진정 사랑했는지..
내가 아내를 진정 존중했는지..
내가 실비아에게 얼마나 솔직했는지..
매일 “마님마님, 저는 돌쇠에 마당쇱니다.” 했지만
그건 그저 말로만 웃자고 한 말이었음을 이제 절실이 깨닫습니다.
지금 이 위기의 시간에,
한숨을 쉬고 푸념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고..
뭔가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을 해야겠지요.
모두들 힘 드시죠?
오늘 저의 실없는 이야기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더 침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미안합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오늘 하루, 틈날 때 마다 청도에 게시는 여러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사실은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 환율 게시판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되었군요.
'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 > 청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YS의 독설, 그를 평가한다. (0) | 2008.12.02 |
---|---|
집 임대료 낮춰봅시다 (싸게 임대하는 요령) 참고하십시오. (0) | 2008.11.26 |
정말 미치겠다. (0) | 2008.11.24 |
소화데레사 자매님. (0) | 2008.11.16 |
Barnum effect (바넘 효과) (0) | 2008.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