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2007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주님의 착한 종 2007. 11. 27. 07:38

11 27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1 독서 : 다니 2,31-45

임금님께서 보신 환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매우 크고 눈부시게 번쩍이는 것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임금님 앞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두 넓적다리는 놋쇠요,

정강이는 쇠요, 발은 쇠와 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계시는데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돌 하나가

난데없이 날아 들어 와 쇠와 흙으로 된 그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쇠, , 놋쇠, , 금이 한꺼번에 부서져 타작마당의 겨처럼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려 가고 자취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친 돌은 산같이 큰 바위가 되어 온 세상을 채웠습니다.

꿈은 이러합니다마는, 이제 그것을 해몽해 드리겠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왕이실 뿐 아니라 왕들을 거느리신 황제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임금님께 나라와 힘과 권세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가 다 어디에

있든지 그것들을 임금님의 손에 맡겨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금으로 된 머리는 바로 임금님이십니다. 임금님 다음에는 임금님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서겠습니다. 세 번째는 놋쇠로 된 나라가 온 천하를

다스리게 됩니다. 네 번째로 설 나라는 쇠처럼 단단하겠습니다.

쇠는 무엇이나 부숩니다. 그 나라는 쇠처럼 모든 나라를 부술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보신 대로 두 발과 발가락들이 옹기 흙과 쇠로 되어 있는

것은 나라가 둘로 갈라진다는 뜻입니다. 그 나라는 쇠처럼 단단하기는

하겠지마는 임금님께서 보신 대로 쇠는 옹기 흙과 섞여 있습니다.

발과 발가락들이 쇠와 옹기 흙으로 되어 있는 것은 단단한 편도 있고

무른 편도 있다는 뜻입니다. 임금님께서 보신 대로 쇠가 옹기 흙과

섞인 것은 사람들이 인척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쇠와 옹기 흙이 엉기지 않듯 서로 결합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왕들 시대에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고, 다른 민족의 손에 넘어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앞에 말한 모든 나라들을 부수어 없애 버릴

것입니다. 그 나라는 길이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바위 산에서 떨어져 나와

쇠와 놋쇠와 옹기 흙과 은과 금으로 된 것을 부수는 것을

임금님께서는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임금님께 알려주신 것입니다. 꿈은 분명 이런 것이었고

그 풀이 또한 틀림이 없습니다."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복음 : 루가 21,5-11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 가지 말라.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 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날,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날, 태양이 솟아오를 무렵,

성녀 체칠리아는 이렇게 부르짖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스도의 병사들이여,

어두움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으십시오!

 

이승에서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보다 본격적인 삶에로 건너가기 위한

일종의 사다리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체칠리아였기에

그리도 당당하게 떠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체칠리아는 이 지상에서의 삶이 천상에서 누릴 영원한 삶에 비교한다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영원한 삶, 불멸의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다보시는 종말의 징후들은

사실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입니다.

 

-거짓예언자들의 출현과 그들이 벌이는 사기극,

그로 인한 백성들의 혼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민족, 나라들 간의 전쟁

-계속되는 지진과 해일

-에이즈, 조류독감 등의 확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예견하시는 주님의 날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보다 날카롭게 촉각을 곤두세워 우리 시대의 징표들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요구됩니다.

 

주님의 날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스런

공포의 날이 되겠지만,

그날은 잘 준비한 사람들에게는 불완전했던 사랑이 완성되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그분의 얼굴을 직접 대면할 환희의 날,

희미하게 느껴왔던 그분의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날,

그간 우리를 괴롭혀왔던 갖은 죄악과 병고,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날,

작은 물줄기를 버리고 더 큰 바다로 나아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꽤 정통한 유다 역사학자로 정평이 난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운 돌’은 그 크기가 얼마나 컸던지

(가로: 12m, 세로: 5m, 높이: 4m) 보는 사람들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성전 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값진 예물로 온통 치장되어있었다고 하는데,

당시 유명했던 예물 가운데 하나가 헤로데 왕이 바친 것이었답니다.

황금으로 제작된 포도나무였는데,

그 크기가 실물보다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장중하고 화려한 성전 앞에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무렵, 예수님께서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지당하고 지당한 말씀입니다.

 

지금도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유형의 성전은 모두 유한한 성전입니다.

외형적인 성전들은 언젠가 모두 무너집니다.

 

규모가 아무리 웅장하더라도, 아무리 공사비가 많이 들었더라도,

아무리 기초가 탄탄하더라도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건물은 수명을 다할 것이고, 마침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모시는 사람들의 모임,

그분의 가르침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백성,

그분의 영성을 추구하는 영적인 사람들,

그분의 사상과 가치관에 따라 사랑과 나눔,

봉사와 친교를 생활화하는 사람들,

그들이 곧 진정한 성전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

아무리 큰 성전이라도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지 않는 성전이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사랑과 나눔, 봉사와 친교가 생활화되지 않는다면

그 성전은 빈 껍데기뿐인 성전, 이름만 성전에 불과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건축도 중요하지만,

보다 진실한 성전, 보다 영적인 성전,

보다 영속적인 성전을 건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지상의 삶,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지상의 삶은 언젠가 우리가 나아가게 될 영원한 삶에 비교한다면

“쨉‘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지상의 삶은 영원한 삶에 비교한다면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안 될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가 누린 기쁨과 평화는 하느님 품안에서 누릴

영원한 복락에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 큰 희망, 더 큰 기대, 더 큰 용기를 가지고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