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43) - 아내를 먼저 보내며 (1)

주님의 착한 종 2007. 10. 19. 10:55

말기암 투병 중에 아내를 심장마비로 먼저 떠나 보내며 (1)


어느새 황혼이런가? 

우리 인간은 과연 시간을 쫓아 가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에 밀려 정해진 무대 위를 밟고 지나가는 것일까?  

이제 하느님께서 세상 일을 끝내고 빨리 오라고 재촉하신다.

( -일기 중에서 )

꽃마을에
 입원할 당시 아직은 한참을  살아야  이제 52세의 교감 선생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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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암이란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오면서 

그 동안 수없이 많은 환난을 겪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 감사를 잊지 않으셨던 

멋진 삶을 살다 가신 분이셨습니다.

이분은 투병생활 동안 자신의 일생을 일기 형식으로 꼼꼼히 적어가며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하셨고 마지막 남은 시간을 꽃마을에서 보내며 감사의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1952
 제천에서 5남매의 맏이로 출생해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며 지금의 

위치로 서기까지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새벽 별을 보고 나가서 일을 시작하면 저녁 별이  때까지 

고된 농사일을 하시면서 가족들을 부양하셨다는데 

이를 좋게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를 효부상(학교장상, 면장상, 군수상등) 

주인공으로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환자는 마지막 임종 때에도 어머니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그래서 자식을 가슴에 묻어 간직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는 

투병생활 내내 아들의 손을 부여잡고 쓰다듬으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앞서가는 자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주기 위해 팔순의 노구로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곁에서 간호해 

주었는데,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때로는 일부러 역정을 내며 

귀찮으니 만지지 말고 가만히 쉬시라고 화를 내기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아들의 머리맡을 떠날  모르고 간호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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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대 사범대를 입학해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과 동생들 

생각하면 빨리  벌어 효도해야지 하는 초조감에 신나는 대학생활 한번 

제대로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76 중학교 영어 교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성실하게 

교직생활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와 두 아들을 얻었고, 2001년에는 교감 자격 

연수를 받아 승승장구하면서 한때는 인생이 이렇게 즐거울  있는가 하는 

기쁨에 사로잡혀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날은 2002 4 29 벌어졌습니다. 

 치질기와 변비기가 있어 외과에 가서 진찰을 받던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을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설마 암은 아니겠지 하는 초조와 불안감을 안고  대학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고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1주일  의사는 직장암이라는 청천벽력의 선고를 했습니다. 
순간 헛웃음만 나왔습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나의 나이였습니다. 

 나이  살이지? 50이지? 50이면 살만큼 살았네, 허허허!!!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아들  녀석은 나름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 되는데 어머니와 

 사람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저리고 아파왔습니다. 

이제 호강을  시켜   있나 했는데  모든 것을 접어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보다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질러서도 안되겠거니와 아내를 위해서도 할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직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항암치료를 하면서 몸이 일시 좋아지는  하여 다시 직장을 나갔는데 

마침 교감으로 승진 발령을 받아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5월경에 장폐색에 걸려 5개월 동안 아내가 Retal tube 

통해 뱃속의 가스와 변을 뽑아내며 교직을 수행해야 하는 불편함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변을 뽑아   가스가  튜브를 잘못 처리하면 대변이 아내의 얼굴과 옷에 

온통 튀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얼굴에 묻은 변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편을 보고 환하게 웃어 줍니다. 

 

나는 괜찮아요... 가스가 많이 나와서 좋네...

 

아내는 남편이 미안해 할까 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웃으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투병생활을 내조하는 동안 아내는 제때에 

먹지도 못한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상했던  같습니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 2003 11월경에 ‘횡행결장루 내는 수술을 다시 

받았지만 결국 2004 1월에 이제는  이상 손을   없다는 마지막 판결을 

받았습니다. 

직장암이 재발되었고 게다가 전립선, 요도, 방광, 임파선으로까지 전이가 

되어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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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