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식/호스피스 일기

호스피스 일기 (22) - 어차피 죽을 것 그냥 자살해버릴까?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7. 16:45

어차피 죽을 것 그냥 자살해버릴까?

 

31살 총각의 말기 신장 암 이야기입니다.

이 환자는 말기 암이 뭔지, 얼마나 중한 병에 걸렸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요양을 잘 하면 금방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어떻게 투병생활을 하면 나을지,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운동하기, 먹는 것 조절하기, 긍정적인 생각과 말,

행동하기 등 등 ......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말기 암이 어떤 병인지를......

다만 무리하지 말라는 말밖에는,

처음 입원할 때는 옆구리에 통증이 심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고,

음식을 먹으면 구토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는데 그런 증상들이 가라앉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얼마 동안은 정말 기분 좋게 다니고, PC방도 가고, 친구

결혼식도 참석하고.....

사실상 그런 일들과 만남들이 아는 이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는

것을 본인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PC방에 가서 자신의 병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병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본 후 더 확실한 치료방법과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밤 10시가 넘어서야 들어왔는데 힘이 다 빠진 축 처진

모습이었습니다.

 

저녁을 먹었느냐는 물음에 입맛이 없다며

더 이상의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불을 끈 채 밤이 하얗게 새도록 침대에 앉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PC방에서 아마도 무엇을 본 모양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생긴 것인지,

왜 내가 이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

자신만 홀로 남겨두고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신에게 이러한 운명을 준 신()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것 그냥 자살을 해버릴까?

아니면 얼마 안 남은 인생, 막가파처럼 되는대로 살다가 죽어버릴까?

이런저런 한탄과 절망감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고 하며 며칠 후에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뭔가를 결심한 듯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습니다.

 

31년이란 세월을 혼자 힘들게 산 것도 억울한데 죽을 때도 비참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왕 죽을 거라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마무리를 잘

장식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처럼 죽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하며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마음에 평화를 얻었는지 밝은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또한 젊은 나이에 총각이 아파하는 것을 본 봉사자들이 안타까워할 때면

나는 괜찮다며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며 농담으로 대꾸하는 여유도

보여주었습니다.

 

대략 한 달 정도는 움직이고, 걷고, 식사도 조금씩 할 수 있었지만,

그 후부터는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잠도

계속해서 앉아서 자야 했습니다.

구토도 점점 심해져서 물조차 넘기지를 못했습니다.

 

먹으면 바로 토했는데

이것은 암 세포가 위()로 전이가 되었기 때문인데도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그저께 먹은 수박이 얹혀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애써 떨쳐버리려는 몸부림

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젊은 나이였습니다.

 

어느 날은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바다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확 털어버리고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울다 보면 풀릴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친구들 차를 얻어 타고 갔다 오겠다고 하는데

사실 동해바다까지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이미 걷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 있는 것도 축 늘어질 정도였습니다.

 

보름 이상 식사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데다 수박 한 조각이 식사의

전부였으니 체력이 남아 있을 리 없습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때문인지 진통제 외에 포도당이나 영양제도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런 몸을 이끌고 어느 날 저녁 친구 따라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그 길로 동해바다까지 갔습니다.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진통제였습니다.

마약성 진통제좌약을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계속 투여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몸을 무리해서 움직였으니 약효가 더 빨리 떨어질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오전 10시쯤 들어왔는데 거의 초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바닷가를 보고 오니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움직일 수 있었던 마지막 몸짓이었고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 후로 통증이 더 심해졌고 자신도 모를 헛소리와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통증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미 1000mg의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었음에도 치솟는 통증을

따라잡기에는 버거웠습니다.

 

임종 전 날,

어제 밤에 엄마 아버지를 만나 얘기도 나누었다며 행복해했습니다.

이는 죽기 전에 반짝 기력을 회복하는 듯이 보이는 반조(返照)현상

입니다.

다음 날 오전 11시쯤부터 임종이 시작되더니 오후 5 45분에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마도 엄마 아버지가 배웅을 나왔을 것입니다.

엄마 아버지의 정을 그렇게도 그리워했는데 이제는 원 없이 만나

행복해 할 것입니다.

31살의 꽃다운 총각은 불과 한 달 보름 정도를 산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