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남자 (1)
“ 여기까지 따라와 준 것만 해도 고맙지! 뭘 더 바래요.”
“ 당신 남편이잖소. 올 때 그리 약속은 했지만 당신 남편이 저리 원하니
며칠만 함께 있어주소. 예? 환자가 마지막 소원이라고 안 캅니까?”
환자를 방에 모셔다 놓고 같이 온 성당 빈첸시오 회원들이 부인을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같이 온 회원 중 한 사람이
“ 신부님! 저 부인에게 한마디 좀 해주세요?
둘이 부부였는데 별거 후에 여자는 이미 딴 사람하고 살림을 차리고
있고요......
그런데 남편이 마지막 가는 길에 꽃마을까지 따라 가주면 좋겠다고
해서 여기 까지 왔는데 환자가 며칠만 더 있어달라는 거예요.
여자는 막무가내로 가겠다고 하고......
그러니 신부님이 한마디 해주세요.”
“ 글세 이게......
환자나 가족이 여기 좀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 적은 있지만
내가......아무튼 해보지요, 뭐!”
어기로 불려온 아내는 볼이 부었습니다.
“ 난 여기 원장 신부입니다.
지금 당신 남편이 살아봐야 한두 달밖에 못사는데 옛정을 생각해서
라도 단 며칠만이라도 옆에 있어주면 좋겠습니다.”
“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그렇고,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적선도
해주는데 그래도 지금 법적으로는 당신 남편이고 아이들도 있으니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며칠만이라도 옆에 계셔주세요.
여기 있는 동안 다른 것은 우리가 다 해주니까
여기서 밥 먹고 지내면서 환자 옆에만 있어주면 됩니다.”
그야말로 뭐 씹은 얼굴로 잠시 고민을 하더니
“ 알았어요. 며칠만 있을게요!”
하며 쏘아붙이고는 나가버렸습니다.
“ 허허 참!”
예고편이 이상하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같이 따라왔던 봉사자가 민망한지 그간의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 환자는 부인과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말이 운영이지 아내가 모든 것을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남편은 매일 도박에 빠져 있었고
거기다가 술까지 퍼먹으면서 폭력을 행사했으니
누구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가 다른 사람과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큰 딸도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작은 아들도 아빠를 미워하면서
나가 신문을 배달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연이어 터지면서 술과 화병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이 환자도 위암이 발병되어 홀로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이제 얼마 안 있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내는 옛정을 생각해서 죽기 전까지라도 보살피려고
찾아갔으나 살기 어린 눈을 보고 겁에 질려 다시 돌아간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이란 정은 다 떨어졌으니 어찌 보면 아내는 아내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 마지막 가는 길이라고 따라와 준 것만도 감사할 일이겠지요.
어찌 되었든 남은 시간 동안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숙식제공은 물론 환자의 수발은 봉사자가 하면서
아내에게는 다만 환자와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커튼까지
따로 쳐주었습니다.
가끔씩 보면 아내가 남편의 좁은 침대 옆에 누워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쥐고 있었고, 다시는 아내를 떠나
보내지 않으려는 듯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진작 저렇게만 했더라면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죽음을 앞두고서야
아내의 소중함을 비로소 깨달았나 봅니다.
“ 야! 보기 좋네요. 꼭 신혼부부 같아요.” 하면
“그렇죠? 우리 신혼 같죠?”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아마도 결혼생활 중에 꽃마을에서 지냈던 2박 3일이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2박 3일이 지나자 아내는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미련 없이 남편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일을 보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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