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다름 분들의 황산 여행

바람의 전설 - 황산, 아아, 황산(제3부:잊히지 않는 이 감동을)

주님의 착한 종 2007. 9. 12. 17:18

출처 : 중여동  글쓴이 : 바람의 전설

 

                    황산, 아아, 황산 (제 3부 : 잊히지 않는 이 감동을)

그 시작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은 옥병참(玉屛站)으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 옥병참에 도착하기 전에 천도봉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고 그 전에 하나의

작은 봉우리가 있다. 나는 황산의 주요풍경을 좌하귀 남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계바늘이 가는 방향으로 회전하여, 서, 북, 동 하는 식으로 구경한 셈인데

이날 걸어다닌 거리만도 줄잡아 4, 50 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침 7시 무렵에 시작하여 밤 9시가 다 되어 산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확실히 산을 잘 감상하려면 우선 잘 걸을 수 있는 젊음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공부도 연애도 여행도 모두 젊음의 한 바탕 향연이런가.

양명한 황산
이날 처음 나와 같이 등산을 시작한 친구는 항주에서 온 여자 하나와 남자

둘이었는데 이 중 한 남자를 나는 이날 산에서 4번이나 마주치고 내려올 때

깜깜한 산길을 비를 맞으며 함께 내려왔다.

날씨가 더워 처음 몸이 풀리지 않았을 때는 자못 힘이 들기도 했는데 많이

마시는 물로 몸이 풀리고 운무에 가린 산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몸도 가볍고

기분도 더없이 상쾌해졌다.

 

안개가 끼는 것으로 보면 아미산과 같지만 아미산이 심오(深奧)하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황산은 퍽이나 양명(陽明)하다는 인상을 준다.

나는 이런 밝은 기운이 도는 산을 한결 더 좋아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잡목이 우거진 산도 다채롭고 무성해서 아름답지만 소나무가 주는

고결하고 고전적인 맛에는 못 미치는 듯하다.

계단 양 언덕으로 거대한 암벽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대체로 검은빛을 띠었다.

검다는 의미의 이산이라는 명칭이 와 닿는다. 우선 그런 바위부터가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니 환호성을 혼자서 질러야

하는 안타까움을 주체하기 어렵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가니 이 친구는 이미 웃통을 다 벗어젖히고 있었다.

같이 좀 쉬다가 여기서 친구들을 기다려 같이 오라고 하고 나는 먼저 길을

떠났다.

옥병참에서
천도봉은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여기서 잠시 간식을 했다.

옥병참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는 손님을 맞이하듯 가지가

구부러져 있다고 해서 영객송(迎客松)이고 가는 손님을 배웅한다고 해서

송객송(送客松)이다.

영객송 뒤 암벽에 많은 석각이 있다.

風景步畵 풍경이 그림 속을 밟고 다니는 것 같다
一覽衆山小 한 번 이 산을 보면 뭇 산들이 하찮게 보인다.

이 두 글귀가 하나는 왼쪽에서 쓰기 시작했으니 근대의 인물이 쓴 것이고

아래의 것은 우측에서 쓰기 시작했으니 예전 사람이 쓴 것일 터이다.

그 밖의 작은 석각들이 많은데 송객송 쪽으로 오니 岱宗遜色 (태산이 이

산에 미치지 못한다)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

태산은 상징적인 의미가 워낙 커서 설령 속마음에 황산이 더 아름답다고 해도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저렇듯이 석각을 해 놓은 걸 보면 아마도 이

산을 보고서 주체하기 어려운 흥분을 느꼈던 모양이다.

연화봉에 올라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에 참 아기자기한 소나무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이 소나무들이 연약하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이 소나무는

바위를 뚫고 들어가, 정말 그렇다, 바위 틈서리에 공간이 있어 뿌리를

기대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바위를 뚫고 들어가, 안개와 구름이

실어다 주는 이슬을 먹고 자란 것이다.

저 고난의 세월을 겪고도 저렇듯이 내색하지 않고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

참으로 나그네의 옷소매를 붙들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나에게 좋은 술이 한 병 있었다면 그 술을 뿌려 천고를 두고 인내해온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도 싶다.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은 몹시도 가파르다. 모두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데

몸이 절로 낮추어지고 마음이 작아진다. 굴을 통과하고 구름 다리를 지나

빙빙돌며 연화봉 정상에 올랐다.

먼데 사람들이 정말이지 천폭만폭의 산수화 속을 점점홍, 점점청으로, 남녀

노소가 꼬불 꼬불 산길을 꼼지락꼼지락거리며 움직인다.

곧 안개가 자욱히 끼어 크게 기대한 경치는 만나지 못했다.

안개의 마술
내려오는 다른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몰라 왔던 길을 돌아 내려오고 한

외국인에게도 그렇게 가르쳐 주었는데 내려오다가는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중간에 길을 돌아 해심정(海心亭) 쪽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가다 보니 갑자기 안개가 싹 걷히며 앞의 풍광이 드러나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산이 떠나갈 듯하다. 노승입정(老僧入定)(노승이 선정(禪定)에

들다)이란 팻말이 붙은 곳인데 도유의 설명을 엿들으니 늙은 쥐가 먹이를

먹는 곳이라고도 한다.

그 사이에 난 소로를 따라 사람들이 산을 올라가는데 구름 속에서 내려오는

듯도 하고 다시 구름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한 것이 이 감흥을 그림으로 표현

할 재주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그 곳을 떠나려 하니 뒷사람들이 한 떼 밀려왔는데 갑자기 안개가

몰려와 그 풍광을 모조리 가려버렸다.

이럴수가 … 나는 운이 아주 좋았는가 보다.

도유(導游)가 많은 중국
아까 도유 얘기를 잠깐 하고 지나갔는데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를 가면 항상

도유들이 넘쳐난다. 또유라고 발음하는데 바로 가이드이다. 이 도유는 두

종류로 구별되는 것 같다.

하나는 여행사에 소속되어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들을 인솔하며 설명과

안내를 하는 가이드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현지에서, 개인택시 영업하듯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안내와 설명을 상품화하는 것인데 이 가이드는

필요로 하지 않은 사람에게 좀 귀찮게 하는 면도 있지만 관광하고자 하는

곳을 잘 안내해주어 관람객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유를 이용한 적은 없고

 지나다니는 곳마다 도유들의 설명을 듣고 그들에게 길을 묻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정적으로 보면 좀 얌체 같은 행동이지만 내가 좀 듣는다고 해서

그들이 더 큰 수고를 한 것도 아니고 길을 묻는 것은 사람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 이 글을 중국인들이 읽게 된다면 나에게 설명을 해 주고 길을 안내해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해심정에서 장강 삼협 때 한 참 얘기를 나눈 중국인 청년 연인 한 쌍을 만났다.

이 남자는 한국에 대한 많은 호감과 동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를 만나자

아주 반가워했다. 그가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해서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곳에서 쉬며 길을 점검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황산 경치의 절정은

여기서 비래석(飛來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 왼쪽으로 한 서너시간 돌아가

는 몽환경구(夢幻景區)를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꿈속인가 그림 속인가, 황산의 몽환지구
몽환지구는 황산의 서북 지역에 있는데 이곳은 개발된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옛날에 나온 황산지도에는 이 곳이 나오질

않는다. 주요한 이동 경로는 신선세계를 밟는다는 의미의 보선교(步仙橋)를

지나, 아주 험준한 석인봉(石人峰)을 감돌고, 신선이 잡기를 펼친다는 의미

인 선인규고교(仙人足+采高 )(규고교는 일종의 표현예술이다)를 감상하며,

황산 최고의 관람지인 구름을 밀쳐내고 높이 올라간 곳에 있는 정자라는

의미인 배운정(排雲亭)으로 가는 것이다.

보선교에 못 미쳐 하나의 산을 지나게 되었는데 나는 안개와 구름이 잔뜩

끼고 빗방울마저 한두 방울 떨어지는 바람에 퍽 실망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심심하던 산길이라 구양수의 취옹정기나 한 번 읊조리며 걸어가는

중이었다. 내 손에는 산 입구에서 산 지팡이가 하나 있어 그것으로 돌길을

툭툭 찍으며 걸었다.

어떤 노부부를 만났을 즈음엔 너무도 짙은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눈이 펑펑 쏟아져 창 밖이 어두운데 그 때도

그랬다. 인적도 뚝 끊겨 나 혼자 길이 보이지 않는 구름속으로 들어가는,

산수화 속에 든 기분이었다.

尋隱者不遇
賈島
松下問童者하니
言師採藥去라
只在此山中이나
雲沈不知處라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으니
"스승께선 약을 캐러 갔어요
이 산 속에 있기는 하지만
구름이 깊어서 알 수가 없어요"라고 하네
( 이 시의 마지막 두 구는 화자를 동자로 보기도 하고 작자로 보기도 한다.)

이런 상념에 젖어 걷고 있노라니 문득 눈앞이 밝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이 빠른 속도로 건너편 산으로 밀려 올라가는데 마치

대군에 쫓기는 적의 패잔병 같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싶게 해가 나고

주변의 경물이 드러나는데 그 감동, 그 환희, 그 경이로움을 증언해 줄,

연인이나 벗이 옆에 없었다는 것이 천고의 한일 뿐이다.

 

나는 한 바탕 노래를 하고 팔을 위로 번쩍 들며 자연의 선물에 환호작약하였다.

보선교를 가니 경치는 점점 좋아지는데 안타깝게도 다시 구름이 끼기 시작

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아니되옵니다. 아, 무심한 구름이여,

천지불인이여.

석인봉을 돌아서 내려가는데 몇 백미터에 달하는 절벽이 곧추 섰고 길은

어느새 모두 잔도로 변한다. 구름만 없었다면 이 최대의 절경을 눈으로 다

보았을 텐데.
내가 아까 햇빛이 나는 곳에서 너무나 감동을 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중국인

들이 당신네 나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땅란 요우, 한구어더 진깡산 허쩌양더펑징 차부뚜어.

(있지요. 한국의 금강산이 이런 풍경과 비슷합니다.) " 라고 답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금강산엘 가보지는 못했지만 여기만큼 빼어날까 하는

의심이 좀 든다.

거의 한 시간 가량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구름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은 곳임을 느끼기에는

유감이 없었다.

知全鼎(일련지전정)이라고, 한 솥 가득한 고기를 한 점만 먹어 보아도

그 맛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인이 마술을 부린다는 곳에는 가파른 산봉우리를 잔도로 돌아서 갔다.

그 와중에 틈틈이 만난 중국인들과 애피소드가 좀 있지만 글이 너무

늘어지므로 생략한다.

하여간 그런 꿈속을 걷는 것인지 그림 속을 걷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이름 그대로 몽환지구를 걸어서 배운정에 당도하였다.

이곳에 오니 구름이 또 좀 걷혔는데 인파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건너 편에는 창이며 칼처럼 생긴 바위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고 하늘을 찌를

듯 자라는 소나무들이 그들을 호위하듯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저물어가는 하산길, 가슴에 남은 감동
배운정에서 비래석을 보기 위해 다시 길을 잡았다.

이 쪽 길 주변에 빈관들이 몇 있는데 내 생각엔 다음에 가면 산상에서 반드시

 하루밤을 잘 생각이다.

 황산의 일출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하루에 황산을 다 본다는 것은 너무도

무리이니까.

나는 항주의 서호를 보고 소주의 졸정원을 보기 위해 서둘러 그랬지만

다음에 간다면 반드시 산상에서 일박을 할 것이다.

비래석을 보고는 하산 길을 잡아 광명정으로 향했는데 특히 동북방향의

산들에 우리 나라 금강산에서 자라는 소나무 같은 게 많다는 얘기를 들었건만

확인하지 못하여 퍽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하산 길을 물으니 사람들이 전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다들 말한다.

아닌게 아니라 거의 7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 줄잡아 3시간은 넘게 걸어야

할 산길을 누가 권할 수 있겠는가.

케이블카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운곡사에 가도 온천지구로 내려가는 차편이

다 끝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강행해 보기로 하고 남은 음식을 먹고 신발을 점검하고 반바지를

잘 추스렸다. 그리고는 남은 힘을 이용해 뛰었다.

 뛰지 않고서는 해가 지기 전에 이 산을 벗어 날 수가 없다. 그 순간 아득한

공포가 밀려왔다.

내가 근 1시간을 뛰어 케이블카가 내려가는 산장에 이르렀을 무렵에 다시

빗방울이 굵어 졌는데 그 때 처음 이 산엘 같이 오른 청년을 만났다.

같이 온 동료들은 어찌 되었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다리가 아파 먼저 내려갔다

고 한다. 그에게 들으니 내가 다닌 코스로 고스란히 다닌 것이다.

 

다만 내가 비래석을 보러 가는 동안 그가 샛길로 와서 나와 다시 만난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 펑요우, 펑요우, 라고 하며 부둥켜안고는 같이

산길을 뛰었다.

나의 우의가 다 찢어졌는데 그는 알몸이니 필요가 없다며 자신의 우의를

주어 다행히 내 가방이 비에 젖지 않아 지금 황산 지도와 메모장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산 길 계단을 우리는 근 한시간 반은 뛰어서 내려왔는데 거의 다 내려와서는

다시 마음의 여유가 생겨 풍경을 보기도 하고 등소평이 오른 산길에 설치한

사진도 보며 얘기도 하고 그랬다.

 

중국인들은 내가 말을 좀 알아듣는 것 같으면 어려운 말을 막하는 바람에

금방 또 못 알아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주로 듣는 입장이 되고 그는

주로 말하는 입장이 되고 그런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새로운 화제로 돌린다든가, 질문을 한다든가 하여

균형을 찾으면 된다.

운이 좋은 하루
내려와서는 오이를 사서 그에게 하나 주었다.

우리가 서로 돈을 내려 하였기에 주인이 우리를 절친한 친구로 안 모양이다.

우리가 오늘 만난 친구라고 하니 그가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운곡사에 오니 관례상 그런 것인지 정문은 잠그고 옆의 쪽문을 열어 두었다.

쪽문을 통해서 나오니 차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그 때 돌연 빵차 한 대가

온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며 그 차에 탔는데 운전수가 오늘 운이 좋다고 한다.

안 오려고 하다가 왔다는 것이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오자 주인이 아주 반가워 한다.

나는 내가 오늘 한 오십킬로는 걸었다는 사실과 황산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떠들어대었더니 맞장구를 쳐준다.

또 주인 여자는 오늘 한국인이 두 명 와서 자기 집에 가방을 맡겨 두고

황산으로 갔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짚고 온 지팡이를 기념으로 그 집에 주었더니 간판에 한국어로 인사말을

써 달라고 한다. 그런데 필기 도구가 시원찮아 그만두었다.

 

중국인들에게 한국 인사말을 가르치면 한 번 발음해보고는 신기한 듯 한 참

웃고 그런다. 아까 타고온 차에서는, 한국인들 말을 전혀 못 알아듣겠는데

마치 개구리 울음소리 같다고들 한다.

참 우리가 할 소리를 그들이 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귀로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