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중국 광주에서 창업 이야기 (1탄)

주님의 착한 종 2007. 7. 12. 12:56

출처 칭다오도우미 카페,  글쓴이 칭다오조

 

안녕하세요. 중국 광주입니다.

중국 광주에서 창업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순수하게 제가 겪었던 얘기입니다.

이 글은 중국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과

또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라고 적는 겁니다.

 

돌이켜 보면 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생각이 듭니다.

쇠는 두드리면 단단해 진다는 말과 같이

현재 조그마한 사업을 하지만 지난 이런 경험들이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늦은 나이에 무식하게 중국에 아무 연고도 없이 한국의 모든 걸

정리하고 장가도 못 간 놈이 용기만 갖고 중국에 왔습니다.

중국 북경에서 2년 정도 중국어 공부를 하고 취직을 하려는데

나이가 많아 취직이 안되더라구요.

아는 사람 수소문하고 인맥 다 동원해 봤는데 감감 무소식..

원래 기다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이력서 30장 들고 북경, 천진, 청도

등을 돌아 다닌 끝에 좋으신 분의 소개로..

안지 이 주일되신 분의 소개로 청도에서 악세사리 생산관리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생산관리는 생전 처음이고 중국공인 150명 관리에 납기일 지키랴

하루가 정말로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눈물로 혼자 어떻게, 어떻게 하면서 (실제로는 울지 않았음, 울뻔 했음)

지새운 밤이 몇 일 이었던가..

지금도 생각하면 내가 정말 무식하게 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을 상대로 생산관리 초보자가 일하기엔 너무도 버거운 나날들

이었습니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 밖의 직원들의 거짓말,

자재 없어지는 문제, 깡패들 보호해준다며  돈 달라고 안주면 행패.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저녁엔 술 한잔은 해야 잠을 잘 수

있었고.. 그때 흰머리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일 한지 몇 개월 만에 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며

오늘이 마지막이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드디어 폭발했습니다.

사장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3박4일만 휴가를 달라고 자존심 상해서 사표는 못내겠더라구요

그래서 휴가를 받고 생산관리 하시는 분 찾아가 배우고 돌아와서는

조금씩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배운 것은 한마디로 실명제..

처음엔 제품은 좋은데 속도가 안 나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이후 조금씩 문제점들을 고쳐나갔고

여기서 경험담 한가지를 예를 들면

악세사리 도금할 때  동선에 꼬아서  도금장에 보냅니다.

나중에 도금장에서 오면 가위로 잘라 동선은 따로 보관 하는데

동 값이 비싸 비싼 값에 다시 팔 수 있습니다.

근데 먼저 있던 교포 관리자가 한족에게 그것을 팔았는데 저울추가 있는

저울로 달아 팔더라구요.

헌데 이상하게 한족 운전수가 동선무게를 달 때마다 저울의 한쪽을

손으로 누르고 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울의

한쪽을 눌러보니 무게가 덜 나가더라구요

이후엔 그 놈에게 물건 안 팔았죠.

나중엔 협박까지 했는데 웃으면서 나도 빽이 있는데 하는 식으로 계속

거절을 하니 시내 나올 때 조심해 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오질 않았습니다.

한 일주일정도 혹시나 해서 조심했지요. 하도 들은 얘기가 많아서..

별일 없었습니다.

 

하나 더.

일하던 기사가 하도 열심히 하길래 사장님이

“너, 차하나 사면 계약서 작성하고 한 달에 얼마씩 이렇게 주기로 하고

그 친구한테 좋은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차를 썼습니다

처음엔 정말 열심히 하더라구요.

여름에 에어컨도 안틀고.. 기름값 많이 나온다고

사장님만 간신히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었지요.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구요.

중국사람들 하도 불만이 많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 직원들한테는 친절한데 중국 직원들이 나가자면

인상 쓰고 잘 안 나가려고 하더라고요.

60킬로 이상 속도 안내고 천천히..

악세사리는 속도전인데

그 친구의 생각은 차를 몰고 나가든 안 몰고 나가든 자기는 무조건

계약서의 돈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더군요.

한국적인 상식이 이곳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스트레스가 쌓여 크게 싸울 뻔 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 운전기사한테 밤 12시쯤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어떤 놈이

(그 기사 친구) 중국어로 별 욕을 다 퍼붓길래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요점은 너 죽을래?)

위의 방식이 기본적인 중국인들의 협박 방식입니다

 

새벽 1시에 일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은 시간이 2시반..

지금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겪어보세요 6.25 전쟁입니다.

술 먹고 몇몇의 친구들과 웃통 벗고 소리치고 욕하고 물건 던지고

칼 들고 넘어오려고 할 때, 아! 중국에서 죽는구나..

다행히 경비가 막아서 아무 일 없었지만

문하나 사이로 저는 울분을 참으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너무 많은 생각을 그 친구가 하게 하더군요

1시간 반 후 그들은 지쳤는지 돌아 갔고 저도 숙소로 와서 잠을

청했지만 두려움 반, 분함 반으로 밤을 새우고 다시 출근했고

한달 뒤 그 친구는 사장님과 합의 하에 퇴사를 했습니다.

 

나중에 아는 분들과 술 한잔 하면서 들은 얘긴데

삼국지의 일주일 분량밖에 되질 않는 분량이라고 웃으시드라구요 .

너무 겁먹었었나? 챙피하더라구요.

오늘은 이만 쓸께요.

생각난 김에 쓰느라 두서없이 막 썼네요.

내일 2탄 잘 생각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카페지기님 제 글이 사업, 무역 칼럼에 맞는 성격인지 모르겠네요.

단지 저의 경험담이 새롭게 중국에 진출 하시려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올렸습니다.

 

중국광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