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헌 님의 실패담 02 – 창업을 하다.
이 글은 정대헌 회원이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제2회 창업성공 및 실패수기 공모전에서 실패부문 노력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건넜더라면…’
-이렇게 창업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전세보증금’ 빼서 회사를 설립하다
나에게는 ‘남산’이라도 옮길만한 배짱과 열정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를 차릴 만큼 돈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사업을 안 할 거면 모르지만 기왕에 시작할 것이라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투자자의 얼어붙은 지갑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점점 조급해져 갔다.
어느 날 아내에게, 살던 집을 월세로 옮기고 전세보증금을 빼서 일단
시작부터 하자고 제안 했더니 펄쩍 뛰었다.
나는 ‘조만간 벤처기업의 거품이 빠지면 제2의 벤처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사업이 구체화되고 나면 투자자도 돈다발 들고 찾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하며 달래보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내가 내 손을 잡아주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음이 분명했다. 10년 지기 아내의 믿음을 바탕으로
그렇게 사무실과 이사 갈 집을 동시에 알아보러 다니며 본격적인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
보라매공원 후문 쪽에 위치한 벤처타운에 10평짜리 사무실을 얻을
수 있었으며, 정원이 넓은 주택의 별채에 세 들어 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자본금 5천만 원을 납입하고 법인 등기를 낸 후 2001년 5월
사업자등록증을 받는 과정까지 신속하게 진행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인터넷 여론 전문회사 ‘옴부즈닷컴(주)’
이라는 기업은 그렇게 월세방으로 옮기면서야 탄생할 수 있었다.
4명의 직원 뽑아 개발을 시작하다
나는 공식적으로 창업을 하기 몇 달 전부터 소호 센터에 작은
사무실을 얻고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지인의 소개로 리서치 전문가 1명을 만나게 되었는데,
온라인 리서치 시장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있던 그는 안정된 회사의
선임연구원 자리를 그만두고 기꺼이 내가 몰고 가는 열차에 올라탔다.
여론분야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던 내게 그의 합류는
더없이 든든한 힘이 되었고 창업 준비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우리는 시장조사를 하면서 실제적인 사업계획서와 사이트 개발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무실을 벤처타운으로 옮긴 후 소수정예의 창업멤버를 구성하기로
하고, 추가로 웹 프로그래머 1명, 웹 디자이너 1명, 플래쉬 애니메이터
1명 등 모두 3명을 뽑아, 5명의 식구가 되었다. 이들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인터넷 공간에 옴부즈닷컴(www.ombuz.com)이라는 여론포탈
사이트를 만들어 대한민국 최고의 여론정보 회사가 되고자 한다.
옴부즈닷컴 사이트에는 사용자 중심의 특화된 게시판 서비스를
마련해주고, 여론흐름에 민감한 정보수요자에게는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맞춤형 게시판으로 보여줄 것이다.
또한 매주 촌철살인의 ‘플래쉬 만평’을 제작해 인터넷으로 전파함
으로써 옴부즈닷컴을 감각적으로 알려나갈 것이다.
이런 여론브랜드를 바탕으로 온라인 리서치 시장에 진입하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사업의 성패는 후발주자가 나타나기
전에 얼마나 빨리 여론정보 시장을 선점하느냐에 달려있다”
마법사의 주문과 같은 이 계획에 직원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모두들 정말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고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 하자며 뜨겁게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작은 회사지만 열심히 일 해서 유명한 회사로 키워
창업 멤버로서의 보람을 누리자’는 결의가 나올 때에는,
나는 이 세상에서 부러울 것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벤처사장’이
되어 있었다.
순조롭게 시작하는 사이트 개발
개발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너무 열심히 하느라 좁은 사무실은
더욱 뜨거워졌고, 그럴 때면 돗자리를 들고서 보라매공원으로 나가
김밥을 먹고 배드민턴도 치며 열기를 식히고 돌아와 또 일했다.
내가 그려준 큰 그림에 서로 머리를 맞대 회의를 하면서 구체적인
살을 붙이고 한쪽에서는 색을 칠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개발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자금을 만들어야 했다.
서울시로부터 중소기업육성자금 지원업체로 선정돼 5천만 원을 배정
받았으므로 담보만 확보하면 되는데 나에게는 제공할 담보가 없었다.
그래서 신용보증 업무를 취급하는 금융기관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상담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출액이 없는 창업초기의 상태였기에 누구도 선뜻 보증서 발급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뛰어다니는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그러나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사이트를 보면서, 늦은 밤까지
때로는 집에도 못 가고 애쓰는 직원들을 보며 나는 용기를 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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