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헌 님의 실패담 03 – 구조조정 창업멤버와 결별.
이 글은 정대헌 회원이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제2회 창업성공 및 실패수기 공모전에서 실패부문 노력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건넜더라면…’
-이렇게 창업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금이 막히다
또다시 찾아간 서울신용보증재단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
일정 조건을 갖추고 난 다음에 서류를 접수해 보자는 것이었다.
모든 게 뜻대로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사이트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점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잘 모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그려준 큰 그림에서 조금씩 빗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커져만 갔다.
개발팀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컨셉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었다. 회의는 길어지고 나는 다시 백지 위에 새로이 그림을
그려줬다. 아까운 시간을 흘려 보냈지만 우리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한편, 자금난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돈 걱정 안하고 개발에만
전념하고 싶던 나는, 조건을 갖춘 뒤에 서울신용보증재단에 제출해야
할 서류를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보증심사 서류에는 금융거래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거래은행에서
그것을 발급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최근에 연체기록이 있는데, 그 기록을 담아 발급
해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알아봤더니 부모님이 내 명의로
대출 받아 납부하고 있던 것의 이자가 실제로 늦게 납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또다시 3개월을 기다리란 말인가?
고비용구조 ․ 자금난…끝내 구조조정 단행
순탄하던 개발과정과 자금조달이 벽에 부딪히면서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한 달에 7-800만원이 지출되는 고비용 구조였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에 얼굴 한번 내밀지도 못하고 주저 않게 생겼다.
살다 보면 암초에 부딪힐 때도 있는 것인데, 나는 이럴 때 장렬히
좌초할 것도 아니면서 왜 대안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창업초기부터 자금이 부족했던 나는 자금조달문제만큼은 마땅한
대안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끝나는 날까지
내 발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나는 또 부랴부랴 생존의 방법을 찾게 되었다.
뒤늦게 내부적으로 경비절감 방법을 찾으면서 나는 인력 선택과
투입시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플래쉬 애니메이터의 경우 그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창의력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상대적으로 프로그램에는 서툴러 플래쉬를 잘 다루지
못했다. 3개월 동안 준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상품화가 힘들다고 보았다.
또한 리서치 전문가의 경우에도 어찌 보면 ‘가게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장비도 들여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찌감치 장비운용 기술자부터 데려다
놓은 셈이 되었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하기로 결심했다.
창업멤버이자 6개월 동안 든든한 동반자였던 리서치 전문가,
더구나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 아니던가? 그와 함께 보라매공원의 잔디밭에 앉아 낮술을
마시며 상황을 설명하였다.
그렇게 한다고 고통이 풀어질 수는 없었지만, 나는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운동장을 몇 바퀴째 돌고 돌았다.
창업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은 직원들의 생계를 순식간에 빼앗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무거운 책임의식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내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그렇게 직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리서치 전문가와 플래쉬 애니메이터를 내보내던 8월말, 나는 심하게
약해져 있었고 남아있는 개발팀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맞벌이로 직장에 다니고 있던 아내가 임신한 것도 이 시기였다.
기대치 밑도는 개발수준, 사이트는 표류하고
그래도 다시 9월이 시작되면서 한층 속도를 내고자 했다.
우선 회사의 몸집이 가벼워졌고 기획업무를 내가 직접 주관하면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내 컨셉을 공유하고 있지 못했던 개발팀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빠졌는데, 나는 그것을 설득시켜 되돌려 놓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주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이상한 그림이 되고
있었지만, 자금도 없는데다 자꾸 시간이 늦어지니까 그냥 이상한 그림인
채로 흘러가기만 했다.
짧지 않은 시간에 많은 개발비용을 투자했는데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우선 ‘기획’이 잘못 되어서 그렇다.
그러니 꼭 개발팀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개발팀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이트 개발은 시간이 흐를수록
표류하고 있었고, 그러는 중에도 나는 소액대출을 받아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기다릴 여력이 없어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대출보증 신청
서류를 접수했다.
“사장님, 언제까지 수정만 하고 계실 건데요?”
함께 고생했던 창업멤버를 한 순간에 떠나 보내는 것을 보고 개발팀
직원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개발과정에서 실컷
개발해 놓으면 손사레 치며 다시 그림을 그려주는 사장의 모습이
반복되니 어찌 답답하지 않았겠는가?
처음 그들이 입사하면서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은 멀리 떠나있는 것
같았고, 나 혼자 들떠 비전을 제시해도 점점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아이템들이 인터넷의 다른
사이트를 통해 상용화되는 것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이디어 유출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필요에 의해
창조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누군가 디지털 시대는 ‘시간싸움’이라고 했던가? 더 늦기 전에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고 초조해 하면서 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정리해서
특허 출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조만간 방문 예정인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심사팀에게 가산점을 얻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업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개발 중인 사이트를
가지고 시장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불만족스러워 한다는 것을 직원들도 알았던 것일까?
또다시 내가 컨셉과 다르게 개발된 것을 보고 지적하자 직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언제까지 수정만 하고 계실 건데요?”
그것은 고치고 또 고치는 작업이 곤욕스러워서가 아니다. 돈도 없어
직원들도 쫓아내는 상황에 밑도 끝도 없이 수정만 하고 있는 사장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랬을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그만 두겠다고 한다. 그것은 다른 개발자가 와서 인수
인계 받기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 동안 진행했던 모든 작업들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극구 만류하는데, 이번에는 디자이너도 함께 그만 두겠단다.
창업자로서 내 역량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며 나는 다시 혼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차라리 잘된 일인 지도 모른다. 새 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오히려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위복으로 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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