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대헌 회원이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제2회 창업성공 및 실패수기 공모전에서 실패부문 노력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건넜더라면…’
-이렇게 창업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프롤로그
2년여 간의 창업과 실패.
젊은 시절에 후회 없는 모험이라지만, ‘올인 후 실패’에 대한 책임은
너무 가혹했다.
그 후 2년여 세월 동안 오직 ‘발등의 불’을 끄고 나니까, 꼭 사업했던
기간만큼의 세월이 지나버렸다.
이제 몸 추슬러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되었는지
찬찬히 따져봐야 할 때다.
인터넷 여론사이트 옴부즈닷컴(www.ombuz.com)은,
7개월을 준비해 10개월의 개발기간을 거쳐 한때 인터넷뉴스 분야에서
5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7개월 동안만 세상에 선보이다 사라진
미완의 사이트였다.
지난 흔적들을 더듬으려니 뼈저린 아픔이 함께 묻어 나온다.
그 눈물로 성장한 딸은 세 살이 되어, 어느새 아빠의 고단한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신혼의 단꿈, 그보다 더 컸던 ‘벤처의 꿈’
우리 부부는 대학 1학년 때 만난 같은 과 커플이다.
오랜 연애 끝에 2000년 4월 결혼하여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돈을
가지고 서울시 동작구에 전세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꾸렸다.
나는 당시 작은 법인의 기획실에 근무 중이었는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던 중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는 ‘벤처열풍’이 한창이었고, ‘아이 러브 스쿨’은 날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신화를 만들어가던 분위기라 많은 청년들이 ‘벤처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나는 밤낮 안 가리고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재직 중이던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투자자였던 분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사업계획서를 보시더니 뜻밖에도 ‘아이디어가 좋다’며 적극 지원을
약속해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나에게 이보다 좋은 ‘엔젤’이 어디에 또 있으랴?
컨설팅업체를 찾아가 투자자와 함께 사업성 평가를 듣던 날,
열흘 동안 분석했다던 컨설턴트는 ‘아이디어는 기발하지만
내가 성공할 확률은 2%’라고 예측하였다.
그것은 그만큼 벤처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만,
사업경험이 없고 관련분야 비전문인인 내가 창업자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오기가 생긴 나는 보란 듯이 ‘그 2%’ 안에 내 이름을 올리겠다고
열정을 달궜으나, 투자자는 더욱 신중해졌다.
어차피 맨발로 뛰어들었기에 나는 하나씩 풀어나갈 생각으로
서울산업진흥재단에서 주관하는 ‘벤처기업 창업경영 실무과정’을
수강하며 준비해야 할 것들을 꼼꼼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벤처의 거품으로 인하여 기존 투자자금도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보도기사가 계속 쏟아졌고, 나의 엔젤은
‘소나기가 내릴 때는 일단 피하고 보자’며 유보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제서야 내가 탔던 열차가 ‘종착역이 없는 막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나는 이미 기관사 자리에 앉아 ‘미지의 종착역’을 향해
열차를 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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