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한 마음/오 하느님

하얀 흔적

주님의 착한 종 2005. 6. 10. 08:42
 

1955년 삭풍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날 새벽녘이었습니다.

아직도 검푸른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만상이 아직도 어둠과 고요에 잠든 때,

이 마리아는 미사경본과 묵주를 챙긴 후 새벽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한 줄기의 찬바람이 마리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 갔습니다.

그녀가 대문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자,

마당에 하얀 물체가 가는 선을 이루며  담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하얀 물체를 손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건 쌀이었습니다.

밤손님이 꼬리를 남겨 놓고 간 것입니다.

광문은 열려있고, 어제 낮 방앗간에서 벼를 찧어 쌀을 가득 채워 놓은 쌀독은

거의 바닥나있었습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았습니다.

역시 담밖에도 하얀 흔적이 새벽길에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녀는 하얀 선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따라  가보았습니다.

그 하얀 선은 네 자매를  홀로 기르는 정말 어려운 청상과부의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사립문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행상을 하는 그 과부와 네 자매의 가난에 찌든 모습,

특히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지게 가득해와서

장터에서 팔아 엄마를 돕고 있는 과부의 큰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밟혀 왔습니다.

 

그녀는 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싸리 빗자루로 담 밖에서 시작된 그 하얀 흔적을 없애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녘 찬바람에 얼굴과 귀, 맨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려와도

그녀는 쓰레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초가집 사립문 앞의 그 하얀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버릴 때,

별들이 빛나는 새벽하늘에 삼종이 은은히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리아님은 천수를 누리시고, 7년 전에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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