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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26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7. 26.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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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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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마는 끝나고

무더위만 남은 같습니다.

나는 원체 다운 것을 싫어하는데

 

학교도 방학을 해서인가요?

어제 아침의 시내 버스는 좌석이

넉넉하게 여유가 있었습니다.

 

손녀들은 학교와 유치원이 방학을 했어도

부모들이 모두 직장에 나가는지라

여전히 학교에 가고 유치원에 갑니다.

사위와 딸이 하기휴가를 내면

어디 바다나 계곡으로 여행을 떠날 테고

그래야만 실비아 마님이 며칠이라도

편하게 늦잠을 있게 되겠지요.

 

오늘은 영흥성당 자매님의 입관예절이

인천 숭의동 성인천장례식장에서

11시에 진행될 예정이군요.

 

영흥도에서 연로하신 본당 연령회장님과

아네스 부회장이 나온다고 하는데

거리도 너무 멀고..

영흥도, 대부도의 현실입니다.

 

신임 지구장과 도와주러 가야겠습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태어나 안나와 혼인했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안나에게 천사가 발현하여

아이를 갖게 되리라고 예언하자

안나는 그 아이를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아이가 훗날의 성모 마리아입니다.

 

안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시작되었고,

동방 교회에서 널리 보급시켰다고 하며

서방 교회에서는 10세기부터 공적인 공경을

시작하였다고 전해옵니다.

요아킴 성인에 대한 공경은

이보다 훨씬 뒤에 이루어졌다고 하고요.

 

 

세계 2위의 군사대국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생각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끈질긴 민족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민족의 침입으로 여러 차례 식민 생활을 하였고

2차대전 때에는 히틀러 일당에 의해

600만 이상이 학살되었지만 결국은 살아남았고

6일 전쟁을 비롯한 아랍 연맹군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고 중동의 맹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배하고 괴롭히던 민족은 사라져도

어떻게 이스라엘은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속에는 기다림이라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다릴 줄 아는 민족이 그들이었지요.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고,

메시아가 오기를 열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던 시대에도 그들은

메시아가 오면 세상은 새롭게 엮이고,

이스라엘은 세상의 통치자로

군림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로마의 지배가 극성을 부릴수록

이러한 열망은 더욱 강렬해졌는데.

그러한 시점에 예수님께서 오셨던 것입니다.

 

민중은 그분 안에서 메시아의 모습을 보고

환호하기도하지만, 지도자들은 반대합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의 출신이

미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일지라도

무명의 시골 출신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오늘의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당시에는 이해되는 판단이었습니다.

 

(나자렛)

 

예수님의 출신지 나자렛은

예언서의 어디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자렛은 성모님의 고향,

곧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의 고향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분을 선택하실 때

이미 예수님의 탄생을 섭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태오 13,36-45의 내용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도 복음 마태오 13,24-30을 통하요

가라지의 비유를 묵상한 적이 있어

생소하지 않군요.

 

저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낼까요?”

종들의 말에 주인은 기다리자고 합니다.

가라지를 뽑다 밀을 뽑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요.

 

밀을 수확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주인의 명령은

세상의 종말까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함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둠의 요소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우리는 주인이

처음에 좋은 씨를 부렸다는 것,

즉 처음부터 좋은 씨가 뿌려졌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밭에는 밀이 더 많은 법입니다.

잡초인 가라지가 더 많았다면

주인은 밭을 갈아엎었겠지요.

 

 

우리는 가끔 뉴스에서 의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상쾌하지요.

그 이유는 우리의 심성이 하느님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렇듯 악인들이 많은 듯하지만

착한 사람이 더 많은 법입니다.

사람의 일생도 고통과 괴로움이 넘치는 듯하지만

기쁨과 희망이 더 많은 법이고요.

 

문제는 어떤 시각을 가지는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도 밝은 쪽과 어두운 쪽이 상존합니다.

그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는지에 따라

삶은 달라질 것이고요.


주위를 살펴보면 좋은 씨가 많음을 알게 됩니다.

가라지가 많은 듯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가라지 없는 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악인 없는 세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말썽 피우는 사람은 어디든 있는 법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가라지는 있습니다.

성스러운 교회 안에도 가라지는 많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그러니 인정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인연’을 선하게 만들도록

애써야 하겠지요.

그러면 천사가 될 터이니까요.

 

누군가에게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생각을

일으키게 한다면,

이보다 더 ‘밝은 행동’이 있을까요?

 

사랑의 마음’을 지니면

좋은 씨’의 사람이 되고,

'비뚤어진 마음'을 지니면

가라지’의 모습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