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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11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7. 1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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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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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오늘은 먼저 베네딕토 세례명을 가지신

모든 형제분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가시밭 뒹굴며 욕정을 이겨내고
동굴서 철저한 은수생활을 거쳐
수도공동체 규칙 만들어

가톨릭의 모든 수도원의 아버지가 되신

베네딕토 아빠스 성인을 따르려는

모든 베네딕토 형제분들께

주님의 은총을 기원합니다.

 

 

어제가 올해 들어 가장 더웠다고 합니다.

물론 서울지방 기준으로..

35도가 넘었다고 하더군요.

 

더위를 많이 타는 저는 정말 여름 나기가 힘든데

어제 같은 날이면 그저 가벼운 바지에

반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다녔으면 좋으련만..

 

어제는 주일미사에 본당 선종봉사회 회합과 강의,

그리고 두 건의 입관예절과 장례미사가 있었으니

정장을 할 수 밖에요. 

아무튼 엄청 더웠습니다.

 

게다가 열대야의 밤에 미리 읽어본 오늘의 복음은

더 덥게만 할 뿐입니다.

복음말씀을 읽으면 시원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요..

 

 

오늘 복음은 마태오 10,34-11,1입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은 정말 어렵습니다.

더운 열대야의 밤을 더 덥게 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쓰는 인사가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입니다..

 

부활하신 스승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분명하게 평화를 빌어 주셨기에

우리도 주님의 평화를 당연히 축원하고 있는데

그런데 오늘은 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칼은 자르는 도구 아닙니까?

도대체 무엇을 자르라는 말씀인지요?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결국 가족을 자르라는 말씀이군요.

 

평생 사랑해야 할 가족인데요.

가족은 나의 삶의 이유이며

살아가는 목적이기도한 가족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자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한참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더군요.

 

이런 말을 하면 꼰데라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이야기한다면

요즈음의 젊은 가장들..

저희 시대와는 많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제 또래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옆의 직원이 고생을 하고 있으면

윗사람이 지시를 하기 전에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심지어는 밤을 함께 새우기도 잘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런 미덕이 사라지더군요.

 

옆 사람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이

밤을 새건 말건, 시간이 되면 땡 하고 퇴근하는

그런 세태가 되더란 말입니다.

 

집에 아이가 감기에 걸렸는지 열이 많이 나요

라는 전화만 오면 회사 일이 어떻든

조퇴를 하고 달려갑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제대로 사는 건지..

 

아이가 아파도 내가 빠지면 힘들어 할 동료가 있으니

묵묵히 일을 끝내고서야 퇴근했던

저희 세대의 사람들이 잘 산 것인지..

 

아무튼 무엇보다 가족이 우선이고

가족이 전부인 세대가

자신에게는 가장 충실한 가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족만을 위하여 악착같이

재물을 모으고 있다면

이 말씀을 묵상해 보아야 할 것 같고,

 

자식 사랑에 내몰려 정신 없이 살고 있다면

이 말씀을 반드시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못 이해하면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가족 간의 갈등을 가져오더라도 당연하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할 테니까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내 자식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사랑하라는 교훈...

그러한 애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말씀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집착을 끊는 칼이 되고

아집을 자르고 편견을 도려내는 칼이 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 칼을 말씀하고 계신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내 가족만 소중한 듯 행동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칼’을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당연히 귀한 법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이 진리를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떠나며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가정을 포기합니다.

더 큰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위하여 작은 것을 포기합니다.

 

제자들은 보다 큰 하느님 나라의 절대 가치를 위하여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과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