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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02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7. 2.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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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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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음묵상 전에 먼저 베네딕도 수녀회

정 마리아 고리띠 수녀님의 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지금 현재의 헌 것 또한 

처음에는 새 것 이었습니다.

 

지금 현재의 새 것 또한 

한결같이 새 것 일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새 것이 생겨날 것이며

역시나 헌 것 또한 계속 되어집니다.

낡고 오래된 것이

모두 쓸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새것과 헌 것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하느님 안에서의 영성생활에서는

옛 것에의 안주와 그것들을 향한 미련, 

깊은 상처와 아픔의 기억들은 

멀리해야 할 것들입니다.

영적인 신선함과 새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을 담으려면

나 자신은 매일 새롭게 새 부대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주님 앞에 나와

때묻고 구겨지고 헤진 마음을 내어 놓으며

주님 새 기운의 사랑으로 채워

기쁘게 시작해봅니다.

 

정 마리아 꼬리띠 수녀

 

그렇군요.

새것과 헌 것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하느님 안에서의 영성생활에서는

옛 것에의 안주와 그것들을 향한 미련, 

깊은 상처와 아픔의 기억들은 

멀리해야 할 것들입니다.”

 

옛 것에의 안주와 그것들을 향한 미련..

그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옭아매어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지요.

 

이런 것들의 대표적인 예로

바리사이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 마태오 9,14-17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지나칠 정도로 따지며

세부적인 규칙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의무적으로 단식을 하는

속죄의 날은 물론이고,

매주 번씩 단식했다고 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인간이 정한

형식과 전통을 지키는 것을

경건한 자세라고 여겼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도 회개의 표시로

자주 단식을 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단식 문제를 두고 예수님께 시비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자처하시면서

신랑이 있는 동안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식은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이루고자

준비하는 회개의 표현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오심으로

그 관계가 새로워졌으니

단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단식보다 예수님이 훨씬 더 중요하건만

그것을 몰랐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잔치를 베푸시고자

세상에 오셨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단식하며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요?

잔치 때에는 기뻐하고

장사 때에는 곡을 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명언,

포도주는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고와 삶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나 창녀와 같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죄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우리 같은 속된 사람들은

창녀 같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죄하려는 심보가 있음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우정을 나누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세리나 죄인에게까지도

두루 미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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