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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01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7. 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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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7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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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7월1일,

2022년의 반이 지나가고

이제 나머지 반을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올해의 반은 어떻게 보냈나..

세월은 유수같이 지나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의

반의 반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매일 매일 단 일분이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될 터인데

아무런 생각 없이 올해의 반을 허비했습니다.

 

 

너무도 가믐이 심해 육 개월을 목말라했는데

단 몇 일의 폭우로 세상은 난리가 아닙니다.

바벨탑을 세우고 하늘에 닿겠다고

기세 등등했던 인간들은

신이 선물했던 아름다운 자연의 유산을

탐욕스럽게 학대했고

이제 그 죄업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보면

인간들은 아직 멀었습니다.

자비를 잊은 사람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쏟으시는 무한한 자비를,

우리 영혼이 깨닫게 해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 드립시다.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의 자비를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합시다.

 

우리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화해의 삶을 살고,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베풀 때에만 소중한 것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것이 사랑이고 자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실천에 옮기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진실한 증거자가 되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합시다..

 

 

오늘 복음 마태오 9,9-13에서도 예수님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비는 그만큼 좋은 행동입니다.

하느님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타고난 자비심이 있을까요?

아니요!!!

자비는 노력과 희생의 결과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을 줄 알아야 자비를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는 것은 결코 멍청한 행동이 아니지요.

 

비웃음을 극복하지 않고서도

참된 자비심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매사에 너무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조금 가졌다고 큰소리치고

조금 안다고 거들먹거리고

조금 높은 자리에 있다고

사람을 우습게 여기지 않습니까?

이래서는 자비심을 깨달을 수 없겠지요.

 


마태오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그를 가소롭게 여겼습니다.

그러한 사람과 어울리는 예수님 역시

하찮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성품상 당연했겠지요.

 

그러나 하찮게 여겨져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있던가요?

내가 남을 그렇게 여기면

그 역시 나를 그렇게 생각할 텐데요.

물론 ‘자리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결코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으면

앉지 않음’보다 못한 것이 사실 아닐까요?

 

털썩 앉았다가 자신도 망가지고

 공동체도 멍들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보아왔지요.

부족한 사람을 ‘챙겨 줄 줄 아는 이’가

자비로운 사람이랍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게 챙겨 주는 이가

진정 자비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 글 앞부분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자비는 하느님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

행동”이라 생각한다고요.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틀림없이 함께 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자비심 없이 어찌 그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