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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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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일이 안 되었는데
오랜만에 들어와 묵상 글을 마주하는 느낌입니다.
새만금 방조제를 가 보셨습니까?
매스콤을 통해 보았지만
과연 상상을 초월하더군요.
박수를 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바벨탑을 보는 그런 느낌도 들었습니다.
옛날에, 아주 옛날은 아니고
우리들 젊었을 때
주일학교 여름 캠프가 끝나고 나면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과
청년 연합회 멤버들이 엠티를 가곤 했는데
그때 자주 찾았던 선유도 라는 섬이 있었습니다.
군산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면
멀리 보이는 괴암괴석..
그 바윗돌이 점점 커지고 산 만한 크기가
되었을 때, 그때 배에서 내리던 그 황홀경..
그런데 지금은 다리로 연결된 육지가 되었습니다.
선유도 뿐이 아닙니다.
선유도를 포함한 고군산열도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이제는 섬이 아닌 섬이 되었고
언제고 자동차로 들고 나갈 수 있는
육지가 되었습니다.
목포 성지..
벼르고 별렀던 성지였건만
우선 목포라는 거리가 쉽게 가기 힘들었고
처가도 경상도 지역이고
휴가를 가더라도 동해안으로 방향을 잡기 일쑤였고
땅끝 마을 해남과 강진을 갔을 때에는
일행이 교우가 아니라서
목포는 전국 순례성지의 끝차례였습니다.
절친 동창 두명..
모두 열심한 교우.
하나는 경북 안동에서 변호사로
하나는 가까운 수원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오랜 만에 의기투합하여
수원에서 집결하여 목포로 떠나던 중
직선 길을 잠시 벗어나
천천히 우회 길로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내일은 목포 성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어 보셨습니까?
오늘 복음 마태오 6,7-15를 통해 주님은
기도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일곱 가지 청원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뜻 등
하느님에 관한 세 가지 청원이 있고
우리의 빵,
우리의 죄,
우리의 유혹,
우리의 악 등
우리 삶에 관한 네 가지 청원이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의 기본 성격은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서 우리의 삶을
잘 꾸려나가도록 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
이렇게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렇듯 감동입니다.
저는 주님의 기도를 자주 하는 편 입니다.
기도를 할 줄 모르다 보니
그저 잘 아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언제 어느 때 바쳐도
좋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제가 보아도 그렇습니다..
어느 구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처음 세례를 받을 당시에는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를 늘 가슴에 담았습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고, 이제 노년이 된 나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라는 구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과거에는 개인적인 좁은 기도를 드렸다면
이제는 어려움에 놓인 이웃도 생각하려 노력하고있습니다.
제가 성숙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렇다 라기 보다는
나이만 많이 먹고 있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하느님에 관한 이론은 정말 많습니다.
시대에 따라 숱한 가르침이 있어 왔고
지금도 신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론도
예수님의 표현’만큼 단순하고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가르치셨으니
얼마나 명쾌한 해석입니까!
‘아버지’란 말 이상으로 하느님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어디에 또 있을까요?
남은 일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내일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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