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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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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마태오 5,27-32입니다.
아마 오늘 복음을 읽으시는 분들은
누구나 낙담하거나 좌절을 느끼신
경험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오늘 복음을
말씀의 덫이라 느끼고 애를 태울 것 같습니다.
말씀의 덫이라..
음욕을 품고 여인을 바라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해야 하니 말입니다.
미인은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고 했습니다.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고 즐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더 즐겁겠지요.
천하의 미인이 내 여인이 되어준다면
남자로서 그 순간만큼은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느낄 것 같네요.
저는 가끔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그건 이미 죽은 남자이거나 죽어가는 남자일 거라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자가
어여쁜 여자를 느끼지 못해야 한다니요..
그것이 정말 죄일까요?
주님께서 목석과 같은 눈길을 원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여인을 보든지 아무 생각도 갖지 말라니요?
그것은 살아 있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을 터인데요.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저는 성적 충동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충동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에
죄가 성립되는 것 아닐까요?
성(性)과 성적(性的)인 것은 전혀 다르니까요.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마음으로 여인을 간음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의 간음은 유혹일 뿐입니다.
유혹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말씀의 의도는 마음으로부터
그런 생각을 차단하라는 것이겠지요.
시각의 점검이라고 할까요?
여인을 바라보는 눈길을
돌아보라는 말씀이실 것이고.
성적 대상으로 보지 말고
삶의 동반자로 보라는 말씀이실 것이며
생활의 반려자로
여인을 대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이 어찌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습니까?
여성에게도 바꾸어야 할 시각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욕망의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욕망과의 끊임없는 대치가
인류 역사를 만들어 왔음은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염두에 둘 것은
욕망의 시각을 승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욕심의 눈을 사랑의 눈길로 바꾸는 일.
탐욕의 눈빛을 승화시켜
‘사랑의 눈길’로 바꾸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숨은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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