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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01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6. 1.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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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6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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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아침은 찬란하다.
뻐꾸기 울음소리로 새벽을 깨우고
숨을 쉬는 온갖 생명들의
분주함 속에
하루가 시작된다

풀잎 끝에 달려있는
영롱한 이슬방울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쑥쑥 키가 큰 옥수수
보면 볼수록 예쁜 감자 꽃
빼끔히 고개를 쳐든 고구마
무겁다고 고개 숙인 매실
빨간 입술을 머문듯한 앵두
땅콩, 상추, 쑥갓,머위덩쿨

난 지금 6월의 천국에서
숨을 쉬고 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앞뜰을 열심히 뛰노는
별이와 빛나처럼 천진한 삶인 것이다

 

박용운 시인의 ‘6월 예찬’입니다.

그분의 시집 ‘그리운 사람같이’에서 찾았습니다.

 

박용운 시인은 2021년 한국NGO 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당선한

조금 특이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NGO 비정부기구.

 

 

신록의 계절 6월이 찬란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지방선거가 개표되면

어떤 정당과 정치인들은 찬란한 6월이겠지민

나머지 정당과 당원들은 정반대의 6월이 되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6월 농부 8월 신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6월이 오면 농촌에서는 농번기로

 바쁘게 일을 해야 하지만

8월이 되면 익어가는 곡식을 보며

 신선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하나 알려드릴까요?

6월을 영어로는 June 이라고 하지요.
June은 Juno의 어원에서 파생되었다는데

Juno(유노, 쥬노)는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미모와 품위를 갖춘 너무나 멋진 여인이었습니다.

로마의 신들 중에 지위가 가장 높은 Jupiter (쥬피터)가

Juno에 반하여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6월이었다는 겁니다.

이후 고대 라틴어 Juno에서

영어 June으로 파생된 것이라고 하네요.

 

 

오늘은 성 유스티노 축일이며

부활 제7주간 수요일이고

복음은 요한 17,11-19입니다.

복음을 읽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묵상해 봅시다.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전부터 서양에서는 하느님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러 왔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개입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며,

그 결과를 나중에 확인하고서야

그분의 손길을 깨닫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개가 끄떡여집니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잘 아는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저서 『국부론』에서 사용하기도 하였다지요.

 

그는 개인의 이기심에 입각한 경제 행위가

사회적 생산력 발전에 이바지하게 되는 현상을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결과로 보았다고 했습니다.

 

곧, 사적 이기심이 사회적 번영을 가져온다는,

다소 논리적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들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빛에 대해 말씀 드렸었지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악의 그림자가

만연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TV나 스마트폰으로

악이 저지른 만행의 결과들을

시시각각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진리로 거룩해지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자면.

바른 정신과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부모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젊은이는 젊은이답게 늙은이는 늙은이답게

사는 것, 온몸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겠지요.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결코 높은 곳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이 꼭 알아야 할 진리가

사람 곁에 있지 않다면

그건 진리가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떠나 홀로 있는 것을

어찌 진리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매일 아침 다정한 눈빛으로

 얘기해 주는 그 말씀을 진리라고 하신 겁니다.

 

 ‘잘 살아라. 기쁘게 살아라.’

 그런 말들이 아버지의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 부모들은 당연히 자녀들이 잘 살기를 바랍니다.

똑똑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다 같이 잘 살기를 바랍니다.

몸이 성치 못한 자녀가 있다면

애정을 더하기 마련이고요.

 

주님께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주님께서 영적으로 뛰어난 이에게만

은총을 베푸시겠습니까?

 

어둠 속에 있는 이에게도 똑같이

은총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자녀답게 신뢰를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리로 거룩해지는 삶’ 아닐까요?.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악으로 멸망하지 않고

진리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끊임없이 아버지의 자비를 청하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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