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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5월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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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 날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께 감사 드리고
수고와 노고에 위안을 드립니다.
경기도 시흥에는 작은자리 복지관이 있습니다.
작은자리는 ‘더불어 살기’의 원형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7년 강제철거로 보금자리를 빼앗긴
가난하고 평범한 주민들이 시흥으로 이주한 후,
복음자리 마을, 한독주택, 목화마을 등
세 곳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아가면서
작은자리 회관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모였습니다.
이곳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서
쉬고 나누며 배우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제정구 의원이 있었습니다.
제정구 의원은 빈민운동과 노동운동가였습니다.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도시빈민연구소를 세웠으며
제도권과 타협, 야합을 거절한 정치인이기도 하셨지요.
제정구 의원은 신천동 성당에서 처음 뵈었고
그분의 딸들은 저와 한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제 의원은 1999년 선종하셨는데
어제 그분의 장모님이신 김송심 데보라 자매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큰 따님이신 신명자 베로니카 자매님을 비롯한
유족들께 심시한 위로를 드립니다.
빈소는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입니다.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입니다.
먼저 오늘 매일미사에서 봉독되고 선포될
말씀들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착한 목자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불러 낸 다음 앞장 서 갑니다.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목자를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착한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성소주일.
聖召.. 성스러운 부르심이란 뜻이지요.
우리 나라가 반만년 동안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말 중 70% 정도는
한자어가 변형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희 세대만 해도 한자 교육을 받았었는데
박정희 시대에 한글전용 사용 정책이 시작된 후
지금 50대 미만의 젊은 층에서
한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하거나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거의 한자를 모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대학생이
부지기수라지요?
성소라는 말을 설명하다가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말씀 드린 대로 ‘성소’란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의 목적은 ‘만남’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맺어 주신 ‘섭리’를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족만큼 소중한 섭리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만남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이
‘성소 주일’의 취지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주일은 사제성소를 받은 사제나
신학생들만을 위한 주일은 결코 아니라는 거지요.
물론 사제나 수도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특별하고 축복을 받아야 하지만
평신도 성소를 받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거시는
기대 또한 지극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하는 것이 될까요?
저는 ‘인연’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인연은 불교 용어이기에 하느님의 섭리라는 말로
대신하곤 하는데 오늘은 인연이란 단어를 써보겠습니다.
섭리 또는 인연은 ‘그분의 손길’로 보면 된답니다.
주님께서 맺어 주신 것으로 여기면
인연에 의한 만남은 모두
거룩한 것으로 바뀐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니 ‘모든 인연’을 다시 끌어안으라고 말합니다.
‘성소 주일’은 이 작업을 하는 날이라는 것이지요.
한편, 오늘은 성소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들이 꽃과 열매라면, 우리는 뿌리입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자양분을
빨아들여 공급하는,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흙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역할..
그런 우리의 기도와 선행이 뒤따라야
젊은이들의 그 꿈을 이룰 수 있음은 자명합니다.
(공지영 님의 수도원 기행 중)
무엇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지요.
하나는 구해서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버리면서 얻는 것이랍니다.
구해서 얻는 것은
아무리 얻어도 더 큰 목표가 생겨
만족이 있을 수 없는 얻음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버리면서 얻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덤으로 얻는 기분이므로
만족과 기쁨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버리면서
하느님에게서 얻으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들에게 가장 큰 유혹이 있으니..
버리면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공허에 대한 두려움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온전히 의탁하고
자신을 송두리째 봉헌한 많은 분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히 내리기를
우리 함께 기도 드립시다.
또한 부르심을 받고도
아직 성소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방황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모든 평신도들이 자신의 삶 안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의 은총을 얻도록
역시 기도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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