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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4월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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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어제 밤엔 기분이 좋아서
조금 과음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 레지오 팀에 두 명의 단원이 들어와
아마도 큰 활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성팀들은 단원을 꾸준히 늘리는데
남성팀들은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활동을 여성만큼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우리 팀에도 거의 2년만에 단원이 늘었기에
그래서 주고 받은 술잔이 많아졌네요.
오늘 복음은 요한 3,31-36입니다.
요즈음, 산에 오르면 나무에서 뿜어내는
파톤차드 향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듭니다.
소나무 송진에 섞여있는 터펜스도 그렇지요.
모든 생물에게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되면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방책,
곧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 설명한 피톤치드나 터펜스는
식물의 방어 기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 방어 기제에는 억제, 승화, 합리화, 부인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방어 기제 중에는
이러한 현상도 있다고 해서 흥미롭습니다.
즉, 극도의 불안이나 공포에서 벗어나려고
당면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어떻게 잘 되겠지.’ ‘나는 괜찮을 거야.’
‘무슨 큰일이야 벌어지겠어?’ 하는 식입니다.
일단 문제를 낙천적으로 보면서
그 상황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이 심리는
눈앞의 적응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근원적인 해결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요.
가끔 선종하시는 분의 가족들에게
하느님은 사랑이신지라
아마도 지옥은 거의 텅텅 비었을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사람다운 일을 했다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이라도 핑계삼아
지옥에 빠뜨리지는 않으실테니까요..
하고 이야기합니다만,
글쎄요, 백 퍼센트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지만,
믿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은커녕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러한 말씀은
삶의 근본적인 결단을 요구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진정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며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말씀에 개의치 않거나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뭐 어떻게 되겠지.
사랑의 하느님께서 설마
나를 지옥에 버리시겠어?’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일관하는 자세는
반드시 버려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문제 해결은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유지하면서
정의와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두 속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여야만 할 터인데요.
우리는 가끔 사랑의 하느님만을
마음에 품으려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믿음의 삶으로
돌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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