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 공지

오늘의 묵상(2022년04월26일)

주님의 착한 종 2022. 4. 2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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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2022년04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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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교님을 만나서 따질 거야.

내 딸년이 그렇게 착실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학교 다녔는데

XXX 신부를 만난 후부터는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데모만 하러 다니고

이제는 경찰이 집에 찾아온다고.

내가 XXX 신부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단국대학에 다니던 울리안나의 아버지.

다혈질의 김ㅇㅊ 바오로 형님은

제게 와서 한바탕 하고 가기를 여러번 하셨지요.

 

XXX 신부는 누구일까요?

 

(예전 산곡동 성당 모습입니다.

지금은 재건축을 했지요.)

 

제가 인천교구로 이사 와서

처음 사목위원을 맡은 곳은 산곡동 본당이었습니다.

청소년 분과, 즉 주일학교와 청년단체가

저의 분과에 속해 있었습니다.

 

백마장이라고 불리던 곳에 위치한

산곡동 성당 옆에는 ‘샤미나드 피정의 집’이 있지요.

 

당시 산곡동 본당 청년들은

가톨릭 청년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줄여서 ‘가청’으로 불리던 단체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이른바 과격단체, 용공단체 라는 누명을 씁니다.

 

5.18 광주의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두환의 호헌 선언 등이 계속 맞물리면서

젊은이들의 항거는 그 강도를 더해갔습니다.

 

당시 나 굴리엘모 인천 교구장꼐서는

젊은이들의 보호 울타리가 되어 주셨고

젊은이들 앞에서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앞장 서신 분이 위의 XXX 신부,

바로 김병상 신부님이었습니다.

 

 

어제, 김병상 몬시뇰의 2주기 추모미사가

백석 인천교구 묘원 성직자 묘역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한 평생 이 나라의 올바른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신 김병상 몬시뇰이 주님의 나라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사도행전 4, 32-37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모두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고집하지 않고

모두 공동체를 위해서 내어놓습니다.

참 사랑은 나눔이며 배려입니다.

참사랑은 주님에 대한 흠숭이며 이웃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래서 참사랑의 공동체인 초대 교회 신자들은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구약의 율법이 하지 못했던 일들이

사랑의 성령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일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나눔은 신앙의 최고 가치와

주님께 대한 희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니코데모와 대화 하시다).

 

오늘 복음은 요한 3, 7. 8-15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대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집중되어 있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안에

이미 현존해 있습니다.

니코데모의 편견과 오해는 예수님의 참 가르침을

아직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위로부터 태어나라고 하시니..

한참 생각하고 복음을 다시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게 되는 모든 문제도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표징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자신에게 부닥친 문제만을 가지고 씨름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할 뿐,

주위를 둘러보고 이웃의 문제, 우리의 문제를

이슈화 해서 공통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함께 해결해보자는 시도는 없습니다.

그러한 삶의 문제들이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으로 수습하게 될 것입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신앙을 삶의 모든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 안에 머무르는 삶이

곧 “위로부터 태어나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삶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삶의 여러 문제로 고통을 받을 때

자신의 전체적인 삶을 신앙의 관점에서

다시 숙고하며 조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하게 살아왔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얼마나 실천하였는가?

 

삶의 목표와 가치 추구에서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움은 없었는가?’

 

이러한 성찰과 더불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되돌아 보고

신앙에서 멀어진 자신을 재정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관점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유혹은

바로 이러한 신앙으로의 회귀가

구체적인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를

의심하는 것” 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만이

우리 삶의 근원적인 주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분께 의지하는 것만이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진정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