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핵심은 결국 한국 사람이다.
한류 문화 사업 현장에는 반드시 한국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한류 장사꾼’ 황해진(62) 중국 칭다오 바로쿡찬음유한공사 사장의 말이다.
황 사장은 칭다오에서 ‘빠로커’(바로쿡)라는 한국 음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젊은 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 양념치킨, 떡볶이, 비빔밥 등을 판매한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억대의 연수익을 내며 안정적으로 경영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 음식 표준화를 목표로 칭다오에 소스 공장을 차렸다.
황해진 중국 칭다오 바로쿡찬음유한공사 사장이 13일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중국 진출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황 사장은 “한식이 성공하려면 어느 식당을 가도 동일한 맛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식당따라, 혹은 주방장따라 맛이 다르다면 한식의 인기가 오래갈 수 없다”면서
“9번 맛있었던 가게가 1번 맛이 없으면 가지 않는게 사람의 입맛”이라고 말했다.
황 사장은 중국에 오기까지 수많은 역경을 넘었다.
가난한 시골집 맏아들로 태어나 열아홉살에 상경, 인쇄소에서 잡일을 했다.
인쇄소 근무 경험을 살려 인쇄사를 낸 뒤에는
명함을 ‘미니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대박을 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인쇄업 불황과 함께 디지털 변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런 변화의 바람에 황 사장은 결국 도태돼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암선고까지 받았다.
실의에 빠진 황 사장은 2005년 중국으로 떠났다.
황 사장은 중국으로 간 까닭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죽으러 갔다”고 답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황 사장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였다.
황 사장은 ‘한류 열풍’ 속에 K-푸드(food)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건강도 회복됐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인쇄업을 하면서 다졌던 시장을 보는 눈이었다.
황 사장은 “인터넷만 뒤지면 떡볶이 레시피(요리법)나 된장찌개 레시피가 넘쳐난다.
음식만으론 차별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서비스로 승부를 걸었다.
“식당을 정말 깨끗하게 청소했다. 또 하나, 가게에서 손님을 받으면서 넥타이를 맸다.
중국에선 넥타이를 매는 식당 사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넥타이를 맨 저를 보고 손님이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라.
한국 사람이 장사하는 한국음식점이라고 알려지면서 더 많은 손님이 몰려왔다.”
황 사장은 “중국엔 진짜 한국 사람이 만드는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실을 인지한 뒤부터 저나 부인이 꼭 가게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황해진 사장이 운영하는 중국 칭다오의 빠로커 매장./황해진 사장 제공
황 사장은 한식 세계화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한국인 부재’를 거론했다.
그는 “지금 중국에서는 안타깝게도 한국 음식이 저급한 문화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더는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인이 K-푸드 매장을 우후죽순식으로 내면서
저질화가 심각해졌다는 게 황 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C-10000 운동‘을 제안했다.
C-10000은 중국에 1만개의 한국 음식점을 개설하고
1만명의 한국인을 오너 경영자로 보내자는 비전이다.
그는 “수습직원-정직원-매니저-오너 경영까지의 과정을
단계별로 거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C-10000 운동이 취업난과 골목상권 붕괴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제할 대안이 될 거라고 강조했다.
황 사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청년 실업과 자영업자 문제”라며
“꿈을 잃어버린 청년들과 생업에 절박한 자영업자들을 살려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공멸한다”고 했다.
이어 “이 모든 원인의 시작은 한반도라는 무대가 좁아졌기 때문에 발생했다.
무대가 좁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라며 “
답은 결국 밖에서 찾아야 한다. 해외에 나오면 기회가 넘쳐난다”고 했다.
황 사장은 “기성세대의 역할은 청년들의 물길을 터주는 것”이라며
“해외 진출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도전정신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백날 걱정만 해선 답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청년들을 향해서도 “일단 나가봐야 한다. 꿈의 현장은 책상 앞이 아니다”며
“현장으로 나가 직접 부딪혀 봐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국내에서 하지 말고 외국에서 해보고,
HSK(중국어평가) 점수에 목메지 말고 현지에서 손발을 써가며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매번 하는 말이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이다.
보는 입장에서 참으로 답답하다”며 “나가보면 뭘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 사장은 자신의 마지막 목표로 ‘디딤돌’을 제시했다.
“올해 62세다. 앞으로 계속 사업을 할 순 없다.
제 역할은 이런 사업을 또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한류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디딤돌이 돼야겠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
[윤희훈 기자 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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