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 한국, ‘상전벽해’ 중국 …… 우리가 어찌 그들을 탓하랴
오는 9월 18일은 9.18사변 80주년을 맞는 날이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은 남만주철도 폭파사건을 빌미로 만주 일대에서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개시한다. 당시 이 철도는 일본이 경영하고 있었는데, 그 일부 구간을 중국인들이 폭파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파괴된 길이는 고작 80센티미터 정도였고, 그마저도 곧장 수리되어 열차운행이 재개된 조그만 사건을 구실 삼아 관동군은 오늘날 랴오닝(辽宁)성의 성도인 선양(沈阳) - 당시에는 펑톈(奉天) - 으로 물밀듯이 진격한다.
오늘날 역사책에는 80년 전의 그 폭파사건을 ‘관동군의 자작극’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 최고사령부의 치밀한 대륙침략 계획에 따른 것이었는지, 일부 극우파와 관동군 참모들이 독자적으로 주도한 사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들은 순식간에 만주지방을 점령하여 괴뢰국인 만주국(滿洲國)을 세웠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시 상해사변을 일으켰으며, 1937년에는 또다시 7.7사변을 일으켜 화북지방까지 진격하여 남방까지 밀고 내려가 근현대 역사상 가장 끔찍한 군사만행인 난징(南京)대학살을 저지른다. 그 시작은 모르겠으되, 차츰 진행된 과정은 ‘일부 과격파의 소행’이라 변명하기 어려운 규모로 전개되었다.
지금 선양시에는 <9.18역사박물관(九·一八历史博物馆)>이 있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1931년 9월 18일 금요일”이라고 커다랗게 새겨진 조형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9월 18일, 이날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랴오닝성 일대의 모든 도시들은 매년 9월 18일 저녁 9시 18분이 되면 3분간 기다란 사이렌을 울린다. 이날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처음에는 웬일인가 싶어 당황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그날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중국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숙인다. 사이렌이 울릴 때는 TV방송도 잠깐 중단되고 우왕궈츠(勿忘国耻)라는 자막이 흘러간다.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잊지말자(勿忘) - 이 두 글자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흔히 중국인들은 중일전쟁을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년동안 일어났다고 하여 ‘8년 항전’이라 부른다. 그러나 만주 또한 중국의 일부분이라 생각한다면, 1931년 9월 18일을 기점으로 하여 ‘15년 항전’이라 불러야 옳다. 8년 항전이든, 15년 항전이든, 어쨌든 중국인들은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일제와 전쟁을 벌였다. 이것이 갖는 의미를 쉽게 지나치고 있는 사람들이 적잖다.
◆ 자존심이 갈가리 찢긴 중국의 100년
근현대 역사에 대한 교육이 부실해지면서 요즘 한국에는 한국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절반 가까이에 이른다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태반이 모르고 있다. 그런 탓인지 중국 현대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은 더더욱 많지 않다. 중국 또한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반(半)식민지 상태로 10여년을 살았으며, 타이완(台湾) 지방은 50년동안 완전한 식민지였다고 말해주면 전혀 새로운 사실을 접한 듯 깜짝 놀란다. 특히나 만주국이나 난징대학살, 731부대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어떻게 그런 일이!’ 혹은 ‘설마 그런 일이?’하는 표정들이다.
한국인들이 중국 역사에 대해 오해하거나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난 100년간 중국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세상에서 자기 집안이 제일 대단한줄 알았고, 동서남북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중궁궐에 안주하며 “우리 바깥에 사는 놈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떠들면서 유아독존(唯我独尊)식으로 5천년동안 영화를 누렸다. 그런 도련님이 아편전쟁 이후로 지난 100년간 당한 치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일본 제국주의와 관련하여 우리는 흔히 우리 한민족의 피해만을 알고 있다. 물론 우리는 주권을 빼앗긴채 36년이라는 세월동안 식민통치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한국(조선)보다 중국이 훨씬 극심했다. 특히 학살, 고문, 강간, 생체실험 등을 당한 피해자의 숫자는 한국(조선)보다 중국이 100배 정도는 많았고, 그 잔혹함의 강도 역시 한국(조선)에서와는 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왜 일제는 중국에서 그렇게 잔혹했던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도 수많은 추측과 학설이 있지만, 아마도 쉽게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넓은 땅덩어리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섞여있지 않았을까 싶다. 제법 수월하게 집어삼켰던 한국(조선)과는 달리 중국은 오랫동안 끈질기게 저항했고, 일부 지역을 점령하긴 했어도 대륙을 통째로 휘어잡으며 실질적으로 통치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많은 군대를 투입하고 또 투입하여도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에는 ‘못 먹는 감을 그냥 찔러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갈가리 찢어놓는 격으로 일본군은 중국 대륙에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는 3.1운동 시기의 몇 달 간에 걸친 일제의 만행을 끔찍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그보다도 훨씬 강력한 피해를 10여년에 걸쳐 겪어야 했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의 반일의식은 자연스럽고 뿌리깊은 측면이 있다. 직접적인 피해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일개 섬나라 오랑캐에게 유린당했다는 자존심의 상처가 뒤섞여있기도 할 것이다. 요즘 중국에서 ‘이제야 100년의 치욕을 끝내고 굴기(屈起)할 때가 되었다’는 성급한 목소리들이 튀어나오는 현상은 그러한 역사적 피해의식의 반작용으로 이해할만 하다.
◆ 어느날 갑자기 ‘대박’ 만난 한국과 중국
오늘날 중국인들의 집단 심리상태를 살펴보자면 우리의 경험을 뒤돌아보면 된다. 우리는 줄곧 우리 스스로를 ‘중진국’ 정도로 인식해왔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자타가 공인하는 후진국이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심스레 중진국, 혹은 개발도상국이라 자임하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상황일까?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리둥절하겠지만 한국은 당연히 ‘선진국’이다. 전 세계 200여개의 나라 가운데 경제적으로 보나 군사적으로 보나 국제사회에서의 발언력으로 보나 20권 안에 드는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란 말인가. 전체 학생 200명 가운데 10~15등 정도 하는 학생을 두고 ‘상위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에 이상한가? (물론 ‘상위권’과 ‘모범생’은 엄밀하게는 개념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스스로 선진국이라 자임하기 부끄럽고, 주위에서 그렇게 추켜 세워주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고 자랑스럽다. 불과 30~40년 전만 하려도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달러를 벌어들이던 나라가 지금은 자동차와 휴대폰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한강의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 미국과 유럽의 공항에 내려서 “아이 엠 코리언!”이라고 말하여도 누구든 “오우, 코리아!”라고 알아주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한국TV를 보니 외국 청소년들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날아와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며 오디션을 치르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더라. 북미와 유럽에서 케이팝(K-POP)이 유행이란다. 그런데 어느 심사위원이 영국 출신의 한 참가자에게 “한국어를 배워라”고 명령하듯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소름이 확 돋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일제(日製) 워크맨으로 미국 팝송 들으며 발음을 똑같이 흉내내려 애쓰던 것이 고작 20여년 전,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그 짧은 사이에 문화적인 갑(甲)방과 을(乙)방이 뒤바뀐 것이다.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뿌듯함, 자랑스러움, 혹은 우월감…… 당신이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는 바로 그것을 오늘의 중국인들에게 대입시켜보라. 불과 20년, 아니 10여년 전만 하여도 우마차가 지나다니던 거리에 지금은 벤츠와 BMW가 숱하게 굴러다닌다. 낡아빠진 인민복 차림의 칙칙한 회색 도시가 어느 순간부터 알록달록 물결치기 시작하더니, 세계 최고급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하게 시내 중심가에 늘어서 있다. 고급 판타롱 스타킹만 선물하여도 고마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보란 듯이 최첨단 스마트폰을 들고 40위안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즐긴다. ‘상전벽해’다. 그들의 마음도 시퍼렇게 변했다.
정말 딱 10~20년 사이 중국 대륙에 이런 엄청난 변화의 태풍이 몰아쳤다. 그들의 우쭐한 심정, 어리둥절한 신분상승의 느낌은 과연 어느 정도이겠는가. 이것을 우리가 쉽사리 손가락질하며 탓할 수 있겠는가. 100년 치욕을 거치고 이제 막 살만해지니까 하루빨리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은 지난날의 바로 그 ‘부잣집 도련님’에게 말이다. 그것이 오늘의 중국, 중국인이다.
“나라의 치욕을 잊지말자! (勿忘国耻)” 이 네 글자에 숨겨진 역사적인 배경은 물론이고 거기에 숨어있는 중국인들의 의지와 욕심까지 제대로 읽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왕궈츠(勿忘国耻) 뒤에는 늘상 전싱중화(振兴中华 ; 중화를 떨쳐일으키자)가 따라붙는다. 오는 9월 18일에도 그러할 것이다. (bitdori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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