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중국과 친해지기

"'스랑’,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걱정된다"

주님의 착한 종 2011. 8. 13. 09:37

지난 며칠간 세계의 시선은 ‘중국의 항공모함’에 쏠렸다.

1998년 우크라이나에서 절반 정도 건조 중이던 항공모함을 해상호텔로 개조하겠다고 사들여와

항공모함으로 전용(轉用)했다.

용도를 바꿨다고 화를 내야 할지,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어야 할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하여간 그렇게 하여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이 탄생하게 되었다.


◆ 항모는 떠다니는 전천후 영토

어떤 사람은 “그깟 배 한 척을 갖게 된 걸 두고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말한다.

‘배 한 척’의 문제가 아니다. 항모를 갖게 되었다는 건 군사운용 시스템이 크게 바뀌는 것은 물론,

성급하게 말하자면 국가전략이 바뀔 수도 있는 계기가 된다.

항모는 ‘움직이는 섬’이다.

그곳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려앉는다.

항모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국가의 영토가 한 점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영토가 아니고 세계 어디든 필요하면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전천후 영토’가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남태평양의 빰빠야라는 나라와 단단한 시빗거리가 생겼다고 치자.

도저히 말로는 해결이 안되니 한 판 붙어야겠다고 전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나라까지 도대체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북한처럼 반잠수정에 특공대 태워서 떠내려 보낼 수도 없고,

수송선에 태워서 상륙작전 펼치다가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폭격기로 쑥대밭을 만들자니 거리가 너무 멀다.

폭격기가 웅장하게 날아가다가 종이비행기처럼 거꾸러지지 않으려면

중간에 공중급유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자면 공중급유 기술은 물론

필요할 때에 급유기가 뜰 수 있는 여기저기 ‘중간기지’ 또한 필요하다.

모름지기 원거리 전쟁이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럴 때에 한국에 항모가 있어 빰빠야 근처 해상 200킬로미터 지점쯤에 띄워놓고

밤낮으로 폭격을 들이붙는다. ……

이것으로 항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항모를 이동시킨다’는 정보만 흘려놓아도 빰빠야는 공포의 도가니에 빠진다.

미국 항모가 중국 쪽으로 이동만 하여도 매번 중국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새삼 이해가 될 것이다.

‘언제든 너희를 때려팰 준비가 되어있다’는 미국의 묵직한 협박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겁나고 짜증나는 존재가 항모다.


◆ 돈 잡아먹는 귀신, 항모

하지만 항모는 너무 크다. 굳이 인공위성으로 내려보지 않아도 눈에 확 띈다.

2차대전때에 일본군은 미군의 항모만 골라서 ‘조졌다’.

비싼 항모가 한 대 가라앉으면 마음이 대단히 쓰리다.

항모가 침몰하면 그냥 배 한 척이 가라앉는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실려있던 수십 척의 비행기와

헬리콥터, 수천 명의 장병들까지 동시에 수장(水葬)된다.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따라서 항모에는 전단(戰團)이 따라 붙는다.

망을 보는 배가 앞장을 서고, 전후좌우로 항모를 향해 달려드는 부나비들을 때려잡는 배들이

주변을 엄호한다.

순양함이니 구축함이니 하는 배들이 바로 이런 배들이다.

물속에서는 잠수함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항모 쪽으로 다가가면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항모가 한번 움직이면 언뜻 보아도 예닐곱 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주위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따라붙는다. 이들이 먹고 살 식량이나 무기, 각종 살림살이도 만만찮기 때문에 군수지원함까지

따라붙는다.

가히 한 나라가 통째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실려있는 전투기와 폭격기, 공격용 헬기 등은 또한 얼마나 값비싼가.

실제로 함모 전단 하나를 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웬만한 국가의 한 해 국방비와도 맞먹는다.

한술 더 떠, 대체로 항모는 혼자서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이 그런 방식으로 항모를 운용한다.

2대의 항모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야 상호지원이 가능하고 항모에 실려있는 항공기들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단다.

‘돈 잡아먹는 귀신’이 항모다.

항모에 이착륙하는 비행기술도 만만찮다.

생각해보라, 그 짧은 활주로에서 뜨고 내려야 하는데, 일반적인 조종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칫 잘못하다가 값비싼 비행기를 망가뜨리는 것은 물론 항모도 상처를 입고,

조종사의 생명도 위태롭고, 함상 유도(誘導)요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런 이착륙의 노하우를 비롯한 항모 운용의 기술은 아무에게나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방(友邦)에게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자신들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숱한 비행기들이 거꾸러지고, 수도 없이 항모가 망가지고,

수많은 전투자원을 소모하면서 터득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경험과 기술을 쌓으면서 제법 그럴 듯한 항모 전투능력을 갖추는 데도

보통 10년 이상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 값어치는 돈으로 따질 수도 없다.

어쨌든 항모와 관련된 모든 것을 중국은 앞으로 스스로 배우며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훈련용 함모가 필요하다.

뜨고 내리는 연습을 무지하게 해보는, ‘막 가지고 노는’ 항모인 셈이다.

시멘트로 만든 모의항모를 만들어놓고 중국 전투기가 이착륙 연습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항모를 향한 중국의 대단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지금 중국에 항모가 왜 필요한가?”

중국이 이번에 시험 운행한 항모는 바로 그런 훈련용 항모로 운용될 것이라 한다.

그래도 값은 비싸고, 항모는 항모다.

훈련을 위해 꼭 이런 비싼 배가 필요한 것인지,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해조차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현재 2척의 항공모함을 더 건조중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항모의 운용원리에 따르면 지금 중국이 다른 항모를 추가로 부지런히 만들고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새로 만들어지는 항모는 ‘핵추진 항모’다. 이것도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항모는 한번 떴다하면 몇 개월씩 바다 위에서 움직이다.

그때그때 주유소 찾아 기름을 집어넣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발전소를 자체적으로 ‘집어넣고’ 다닌다. 그것이 핵추진 항모다.

함모와 짝을 이룬 핵추진 잠수함도 비슷한 원리다.

소형 원자력발전소 몇 개가 바다 위아래에서 통째로 움직이는 셈이다.

이번에 중국이 시험 운행하는 항모는 재래색 항모로 기동거리가 짧다보니

‘절반짜리’ 항모이지만, 버젓한 핵항모 2대가 추가되면 그때의 군사적인 압도력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현재 항모를 갖고 있는 나라는 9개국인데, 미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재래색 항모다.

게다가 미국은 11척을 갖고 있고 나머지 나라들은 다들 1~3척씩이다.

그것도 경항모 - 항모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작은 항모 - 에 불과하다.

눈치챘겠지만, 이렇게 보면 사실상 현재 지구상에서 항모를 제대로 운용하는 국가는

미국밖에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항모 운용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거기에 중국이 도전장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미국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런 장비(항모)가 왜 필요한지 답해 달라”고 중국에 공격탄을 날렸다.

미국의 이러한 질문에 분개할(?) 사람도 있겠지만 - 자신들은 11척이나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

전혀 엉뚱한 소리는 아니다.

사실 중국에게 왜 항모가 필요한지, 가급적 중국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는 필자 역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미국의 경우 대륙과 뚝 동떨어진, 어쩌면 섬나라로서, 나름대로 이해가 가능한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항모의 수를 늘려나갔다.

지금 중국이 불쑥 “공격적인 작전능력을 전 세계로 뻗쳐나가겠다”고,

비용도 터무니없이 많이 들고 오랜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항모 전단을 꾸리겠다는 구상이

터무니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식칼만 들어도 되는 사람이 갑자기 관우의 청룡도를 꺼내드는 꼴이다.

‘머나먼 어떤 나라’와 언젠가는 한번 붙어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는 오해를 살만도 하다.


◆ 들뜬 중국, 그것이 걱정

이왕 만들어버렸고, 만들고 있는 항모에 왈가왈부 토를 다는 일이 의미 없긴 하지만,

제법 중국이 걱정된다.

뱁새가 황새 좇아가는 식으로 미국과 불필요한 군비경쟁을 벌였다가 결국은 패망을 자초했던

옛 소련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과도한 생각일까.

역사상 중국은 대양해군을 갖춘 적이 없다.

어느 중국 지식인의 말씀대로 “서(西)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비롯한 고산준령, 북으로는 사막,

남으로 밀림, 동으로 대해에 가로막힌 자신만의 제국에 안주하며” 살아왔다.

좁은(?) 대륙 안에서 자기들끼리 통일한다고 복작거렸던 5천년이다.

중국이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대륙을 넘나들어본 것이 기껏해야 명나라 때

정화(鄭和)의 대원정 정도에 불과한데,

그것도 상업적이나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콜럼부스의 항해와 비슷했다고나 할까,

그냥 ‘바다 건너 저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 해소나 ‘천하(天下)의 외곽을 두루 살펴본다’는

과시욕 차원이었다.

“돌아보니 세상은 시시하더라”며 정화의 항해는 막을 내렸다.

어쩌면 이번 항모 운항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군사적인 세계 진출의 시작’이라고 말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시한 세계가 정복해야 할 세계로 관점이 달라진 것이다.

이번에 시범 운행한 항모의 이름은 스랑(施琅)으로 명명할 것이라 전한다.

청나라때 타이완(臺灣)을 수복한 장군의 이름이다.

지난 7월초에 중국이 항모 건조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을 때,

중국중앙텔레비젼방송(CCTV)에서 30여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아나운서들의 목소리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보다 더욱 들떠보였다.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것이 걱정된다. (bitdori21@naver.com)

작성자
온바오 칼럼니스트
곽대중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