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초짜교민⑤ 재중한국인, 잠 못드는 중국의 밤

주님의 착한 종 2011. 3. 11. 10:21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나라


늦게 자는 습관이 있는 한국인들 굳이 아침 정시에 출근할 필요가 없는 직장을 갖고 있고 더구나 가족이나 친구가 주위에 거의 없다면 중국의 밤은 얼마나 외롭고 길고 고독할까. ‘왜 일찍 주무시지 않냐’고 물으면 불면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한인사회에는 참 많다. “그냥 잠이 안와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첫 이미지가 한국 교민 대부분에게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공산당이 집권하는 사회주의 국가, 빨간색 구호의 현수막이 난무하는 나라, 문화 대혁명이 있던 기괴한 나라, 여전히 치안이 불안하고 밤 거리를 조심해야 하는 나라, 시끄러운 목소리, 거리에서 사고를 당해도 누구 하나 도와 주지 않는 무간섭의 나라, 자연스레 어기는 교통 질서 .. 베이징 올림픽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다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왔다는 들뜸과 어두운 나라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할 것이다.

나는 중국으로 온 초기에 잠시 한국에 다녀 오려고 했더니 먼저 정착한 교민 한 분이 “이왕이면 밤에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했다. 많은 이들이 중국 생활에 채이고 시달리다가 한국에서 들어가 잠깐의 푸근한(?) 생활을 맛보고 다시 베이징 공항에 돌아올 때마다 까닭모를 우울함을 느끼는데 밤에 도착하면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밝은 낮에 도착하면 한결 낫다는 얘기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베이징의 많은 이들이 가족이 기다리는 한국을 찾은 후, 중국으로 돌아온 첫 날 꼭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종종 목도하곤 한다. 기러기 아빠들도 우울증을 방지하기 위해 집에 햇볕이 잘 들어오게 인테리어를 꾸미라는 전문가의 조언을 읽은 적이 있다.

유학생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졸업 전 한국을 잠시 다녀오면 ‘말년휴가’. 완전 귀국은 ‘제대’라는 식으로 군대 용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병역의 의무를 마친 학생들이 장난스레 쓴 글 일테지만 타국의 유학 생활을 군대 생활과 동일시 하는 내면의 의식 저변에는 친지들과 떨어진 외로움과 고독함이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사연 없는 중국 교민은 없다
사람 사는 인생항로가 다 비슷하겠지만 사실 중국에 오고 싶어서 오는 사람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온 분들도 많고 심지어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탈출구로 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중국으로의 이민 이유를 겉으로는 그럴듯한 차이나 드림으로 포장하지만 내심 사연 없는 중국 교민이 한 두명 이겠는가. 한국에서 파산에 가까울 정도의 경제적 곤궁을 겪은 분, 회사가 부도난 분, 취직이 안되거나 인간 관계에 상처 받은 분, 혹은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이민을 선택한 분들도 많다. 한국으로 가고 싶어도 기다릴 가족이 없는 분들, 가족이 해체되거나 비보통적인 가정환경을 갖고 계신 분들도 유별나게 많다. 중국 한인사회에서 남의 가정사를 언급하는 것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빚쟁이들에 쫓겨 피해 오거나 경찰의 추격을 피하다가 기소 중지된 이들도 주위에서 간간히 찾을 수 있다. "사연 없는 중국 교민 없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나 보다.

메마른 낙엽은 쉽게 불 붙는다. 아픈 과거나 사연 있는 분들 역시 적지 않은 숫자로 중국 한인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쉽게 대면하게 할 수 있고 대화하다 보면 별 뜻이 아닌 말에도 상처 받고 민감해 할 수 있다. 한인사회에서 본인의 소외와 고독을 비정상적으로 표출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정작 본인의 삶은 헝클어져 있으면서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누군가에게 자꾸 주목 받기 위해 터무니 없는 일을 벌리고, 협력자인 듯 언저리에 맴돌지만 무언가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기를 바라거나, 혹은 자신의 내면의 깊은 상처로 소속된  집단의 화목을 잠재의식적으로 거부하고 분열시켜려는 행동이 표출된다면 그는 틀림없이 사연이 많거나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이다.

한인사회의 많은 싱글 젊은이들이 외로움의 수준을 넘어 고독하다. 고독이 부르는 것은 중독이다.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으로 갓 온 일부 젊은 남성들은 가라오케 순례를 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 타국에서의 밤이 외롭기도 하겠지만 어찌 보면 섹스나 탐욕, 쾌락을 좇는 한국의 행태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밤의 고독을 이기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가랑비 옷 젖 듯이 가짜 양주와 아가씨들의 웃음에 시간과 물질과 정신을 탕진하다 보면 담배 냄새가 옷에 쩔 듯 나쁜 습관이 몸에 깊숙히 배이게 된다.

당신이 고독이라는 코드를 읽는다면, 어려운 한인사회 경제수준에도 가라오케가 북적대는 것은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해도 현지 물가 수준으로 적은 비용이 아닐 뿐더러 찾는 분들도 꼭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아님에도 가라오케는 북적거린다. 빚을 내서라도 일 주일에 서너 번씩 출근 도장을 찍는 교민들도 있다. 다스리지 못하는 고독은 욕망과 거품을 낳고 정제와 안락을 꿈꿔왔던 교민 생활이 피폐해진다.  주위에 나이 40 이 넘도록 그저 20대 시절의 지체된 말과 행동, 정신상태를 가지고 술과 여자에 탐닉하는 이가 있다면 틀림없기 정돈되지 못한 생활의 반복된 결과일 것이다. 고독으로 피폐되 버린 삶에 놓여 있는 이들은 결국 오직 한방을 꿈꾸는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히고 절제되지 못한 생활 속으로 빠져든다.

 
고독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세계에서 한국인만큼 고독한 국민도 드물다고 한다. 대표적인 고독산업인 게임이나 도박산업은 한국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으로 최첨단을 달리는 한국의 인터넷도 고독을 달래는데 주 용도로 쓰이는 산업이다. 한국인들처럼 잠 안자고 인터넷에 빠지는 국민들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국인은 유별나다. 그런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게 습관적인 본능으로 자리 잡았다.

비 오는 밤이면 베이징 대학가가 새벽이 다 되도록 술 취한 한국 대학생로 넘쳐 나는 것은 그저 젊은이들의 한 때 낭만적인 모습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외로움을 이기려고 술과 유흥과 이성에 대한 탐닉을 비정상적으로 몰두하고 그 조차 해소되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번지고 나중에는 몸도 아파온다. 중국으로 이주해 오는 많은 분들이 바이오닉 계산기 두들기듯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오지만 정작 고독에 대해서는 취약한 면을 내보인다.

남편을 일터로 보낸 부인들이 혹시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지는 않나. 가족을 두고 혈혈단신 중국으로 혼자 건너온 당신은 지금 고독한가. 과연 초짜 교민들은 타국 생활에서 겪을 고독에 대하여 충분한 방비가 되어 있는가. 고독을 잘 견뎌내고 내면을 응시할 수 있는 자제력이 있는가.

준비되지 않는 교민들에게는 중국을 살면서 '고독'에게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당신이 지금 시작하는 중국 생활이 몇 년이 될지 아니면 그 보다 더 예상치 못했던 긴 세월일 수도 있다. 성공하는 자는 외로움과 고독에 굴하지 않는다. 고독을 이기고 잘 관리하는 자만이 중국에서 살아 남는다.

작성자
(前) 온베이징 편집장, (現)베이징이화자문유한공사 대표
이동기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