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초짜교민④ 베이징 현지 한인교회와 사기꾼

주님의 착한 종 2011. 3. 10. 11:37

 
▲[자료사진] 베이징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 왕징의 왕징신청아파트
▲ [자료사진] 베이징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 왕징의 아파트

일요일이 오전이 되면 예쁜 이름의 ‘XX교회’라고 씌여진 수송차량이 거리를 내달리고 곱게 차려 입은 교민들이 분주히 교회를 향하는 모습은 베이징 한인촌 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도 큰 집회를 열거나 자국민에게 접촉을 하지 않는 한 외국인 교회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 비교적 관대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내국인에게는 엄격하게 외국인에게는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종교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 한국의 개신교 각종 교단, 교파가 중국으로 진출해 여러 한인밀집 지역에 꾸준히 한인교회를 설립 해 왔다. 그러다 보니 우후죽순 늘던 한인 교회들도 어느덧 포화상태에 이르러 교회끼리도 알게 모르게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사실 중국에서 한인교회 만큼 한인 사기꾼들이 둥지를 틀기 쉬운 장소도 없다. 규모가 작은 교회일수록 사기꾼들이 활동하기에 더 없이 안성맞춤이다. 교회 용어로 ‘부흥’을 노리는 작은 교회 일수록 새로 온 이들은 누구나 환영을 받을 뿐더러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람을 쉽게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이런 매카니즘을 꿰뚫은 사기꾼들에게 교회는 또 다른 의미의 귀중한 안식처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정도 노회한 교민들이야 그 방면에서 이미 이골이 났지만 갓 중국으로 이주한 초짜교민들의 경우는 다르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하는 중국인 습성을 닮아가는 한국 교민들의 무관여 속에 초짜 교민들은 쉽게 사기꾼들의 일용할 양식으로 전락하기 쉽다.

베이징 한인 교회를 떠도는 직업 사기꾼을의 작업행태를 살펴 보자. 중국 한인사회에서 한인교회 생존의 법칙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새로 출석하는 작은 교회의 대대적 환영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 속에 데뷔한다. 행여 섭섭하게 대해서 다른 교회로 적을 옮길세라 목사나 교회의 임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해서 안부도 묻고 때로는 밥도 사준다. 사기꾼의 집이나 사업장을 방문하여 이것 저것 살펴주고 진심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사기꾼들에게 사기란 단순한 범죄행위가 아니고 일종의 소설 같은 작품이다. 테마가 있고 복선이 깔리며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신실한 이미지를 보이며 한동안 이른 새벽에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때로는 뭉텅뭉텅 헌금도 잘 낸다. 혹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과거의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슬픈 사연을 쏟아내 주변을 숙연케 한다. 그런 가운데 서서히 그 교회에 무사히 연착륙을 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 잡는다.

물론 노련한 고수들은 이 사기꾼이 설교 시간에 동태 같은 눈빛으로 상념에 잠긴다던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 혹 자신을 알아볼까 초조해 하는 눈빛을 보고 의아해 하기도 하지만 아, 교회가 어떤 곳인가.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거나 ‘뒷담화’를 했다가 남을 정죄한다고 대번에 코너로 몰리는 곳 아닌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는 가르치는 판국에, 적당히 위선 떨고 모른 척 하면 대우받고 살고, 좋은 게 좋은 것이거늘 무리할 필요가 없는 노릇이다. 용각산처럼 소리나지 않고 그저 무색 무취하게 살면 도량 넓은 대인으로 대우받는 곳이 또한 중국 한인사회 아니던가.

세상에는 어질고 순박한 분들 참 많다. 아무리 주의를 당부해도 결국 실험정신이 투철한 분들이 늘 나타나 주위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사기꾼에게 투자를 하고 낚이며 사기 스토리의 말미를 장식한다. 왜 그런 바보짓을 했냐고 하면 ‘속는 셈’치고 그랬단다. 그 ‘속을 돈’으로 과부와 어린아이와 나그네를 도우면 얼마나 좋겠는가. 결과적으로 독버섯 같은 사기꾼들에게 꾸준히 영양분을 공급하여 제2, 제3의 피해자들은 계속 생겨난다.

스토리가 서서히 완성될 무렵 사기꾼은 이런 저런 피치 못할 사정을 대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한 두번 안 받던 전화는 어느덧 꺼져있고 얼마 후 번호도 슬쩍 바뀐다. 피해자가 더는 못 참겠다고 수소문해 달려가면 법대로 하라며 안면 몰수하고 배째라고 버티는데 도리 없다. 대개 이런 분들은 속는 셈 치고 투자했기 때문에 계약서나 차용증 등 법적 안전장치 마련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어둠의 복수 따위는 결코 생각하지도 않는 분들이기에 발만 동동 구르다가 세월은 흐르고 결국 좋은 공부했다는 셈치고 자괴하며 잊으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사기꾼들은 사건이 잊혀질 만하면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또 다시 다른 교회로 옮겨 작업의 둥지를 튼다.

이들은 스토리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구린내를 눈치챈 이와 자신의 사기 대상을 이간질 시키는 치졸함을 서슴치 않는다. A가 자신의 사기를 눈치 채, 사기 대상 B에게 귀뜸이라도 하려고 하면, B에게 온갖 A 의 있지도 않은 악행을 꾸며내서 A와 B를 치졸하게 이간질하는 방법이다. 입에 꺼내기 조차 힘든 얘기를 가공해 내 당사자로 하여금 아예 확인 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 두번 듣는 것도 반복되다 보면 귀도 펄럭이게 되고 거짓도 진실로 둔갑한다.

난 어느 작은 교회 목사가 다른 교회에서 자신의 교회로 뚜렷한 이유 없이 옮겨 온, 유별나게 말과 행동이 수상쩍은 신도가 있다면 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것 저것 묻는다는 얘기를 듣고 손뼉을 치고 감탄한 적이 있다. 교회를 주무대로 한 사기는 중국 한인사회에 이미 보편화 되어 있다. 모름지기 한인교회의 목사라면 뒷짐지고 근엄한 척만 하면서 성도 늘리기에 급급할게 아니라 굶주린 이리떼에게 어린 양을 보호하기 해서 최소한의 적극성과 책임감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대개 한인 교회가 무슨 기도회다 구역예배다 뭐다 거의 매일 교회 출석을 권유하며 생활 공동체임을 강조하던데 그런 공동체라면 더 더욱 사기 범죄 예방을 위한 자정 노력이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세상에 공짜 점심식사는 없다. 교회는 살인자도 속죄하며 찾을 수 있는 곳이라지만 사기꾼 피해 보험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체질로 단련되야 교회를 노리는 사기꾼들로부터 선량한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다. 사기꾼들의 간궤를 대적하기 위해 성경만 달달 읽을 게 아니라 스스로 방탄복을 만들어 입어야 한다.

신앙인을 사칭하는 사기꾼들 그 행태가 참 가지각색이다. 민박집 방문을 조금 열어놓고 밤마다 웅얼웅얼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위의 환심을 사면서, 정작 KTV에서는 여자를 양 옆에 끼고 마이크 잡고 날라 다니는 사람, 한국에서 성경을 달달 외우는 무슨 집사인가 장로였다면서 ‘주기도문’도 못 외우는 사람, 술, 담배는 입에도 못 대는 독실한 신자라고 하면서 우연히 만취한 상태로 술집 여자와 비틀거리며 밤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목격된 이라면 한 번쯤 경계심을 가질 만도 하겠다. 그렇다고 거꾸로 매번 성경 구절을 잣구 하나 안 틀리게 달달 외우면서 들이대는 사람이라고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 여러 번 사기전력으로 교도소에서 들어갔다 나온 이들이 목사 뺨칠 정도로 성경을 달달 외우고 나와서 이를 재범의 도구로 쓰는 경우도 많다는 것도 염두해 두자.

교회 순례 사기꾼들의 모습은 다양하나 특별히 초짜 교민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신비 시리즈’ 사기꾼들이다. 예를 들어 수식어가 ‘신비의..’ 가 붙는 상품 들을 연구하거나 판매하는 이들이다. 정작 본인들은 해당 물품에 대해서 비전공자인 자칭 재야의 고수들인데, 먹으면 불치의 병을 걸려 누워있던 이도 병상에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된다던가 바르면 쭈그렁 할머니가 백설공주가 된다던가 마시면 흰 머리카락이 까맣게 되고 피가 맑아져 회춘하거나 불로장생 할 것 같은 상식 이하의 상품을 팔면서 중국 한인사회의 ‘신비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 가는 분들이다.

대개 이들의 허무맹랑한 상품은 거의 완성에 이르러 막판 상용화 이전단계라며 인허가를 얻기 위해 급전이 필요하다는 등의 조건으로 교회 등지에서 눈먼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중 수교 20년 가까이 되고 무수한 이들이 이 역사와 전통의 ‘신비 시리즈’의 맥을 꾸준히 이어갔지만 정작 이런 류의 물품을 팔아서 때부자 되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투자가 성사되거나 아예 투자가 성사되기 힘들 것 같으면 슬그머니 다른 작은 교회를 옮긴다던가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교회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참, 교회를 옮기려면 뭔가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다니던 교회에 대한 치졸한 험담을 잊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신분세탁을 하고 교회로 작업하러 들어오는 사기꾼들의 실체는 이마에 ‘나, 사기꾼이오’ 라고 씌여 있지 않으니 알 도리가 없지만 막상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 크로스 체크 하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가 있다. 한 사람 건너 물어물어 보면 대개 꼬리가 밟힌다. 중국은 넓지만 중국 한인사회는 생각보다 넓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비슷한 사기 피해 사례를 교민 커뮤니티에서 검색해 찾아볼 수도 있고 요즘에는 중국 사기꾼 공유 카페도 생겼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가 만나 본 피해자들은 대개 너무도 게으르다. 사기꾼의 각별한 보안유지 당부를 곧이 믿거나 혹은 본인 혼자서만 돈 벌고 싶은 탐욕에 주변에 쉬쉬하다가 당한 경우가 많다.

초짜 교민들도 시간이 지나면 겪게 될 일이지만 중국 한인사회에는 크고 작은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의사, 변호사, 기자나 PD 등 비교적 믿을 수 있는 직업군을 사칭하거나 때로는 비밀업무를 수행 중인 정보기관원 사칭, 전직 한국 권력자의 친인척 사칭, 중국의 실력자 친분 과시 하는 하면서 ‘뻥카’치는 이들 등 별 종류의 인간들이 가지가지 다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가 지역마다 돌아다니면서 사기치는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을 하며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해외 한인사회의 교회가 단순히 신앙 뿐 아니라 현지 적응을 위한 정보와 인간관계 커뮤니티로 활용된다는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대부분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교민들 이면에 한 손에 성경과 또 한 손에는 뒤통수를 칠 망치를 들고 있는 음지의 사기꾼들이 공존하는 것이 한인사회 생태계다. 사기수법은 점점 변화무쌍하게 진화하고 주로 당한 사람이 또 당한다. 물론 사기꾼이 아니더라도 신비의 상품을 파는 분들도 많다.

다만 한국에서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초짜 교민들이 중국에서 ‘독실한’ 교회 구성원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마음을 열고 믿는 경향이 많은데 이를 미끼로 이용하는 사기꾼들이 많다는 것에 각별한 경각심을 당부 드리고 싶다. 심지어 소위 목회자니 선교사니 하는 사람들도 예외도 아니다. 이 바닥에는 후원금으로 제 잇속 차리는 정체불명의 자칭 선교사도 적지 않다는 것은 알만한 이는 다 아는 고전적인 상식에 통한다. 성경에도 사랑과 정의는 동등비례다. 나만 안 당하면 상관없다는 무관심과 방임 속에 저급한 사기공작은 한인교회를 떠돌며 자라난다.

 

작성자
(前) 온베이징 편집장, (現)베이징이화자문유한공사 대표
이동기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