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J씨는 황당해 하며 “누구시냐?”고 묻자 전화의 목소리는“아는 사람에게 당신을 소개 받았다. 사연이 좀 길고 복잡하다”고 했다. 그리고“직접 찾아 뵙고 말씀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업가인 J씨는 조금 의아하게 여겼으나 그저 과거 업무상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을 소개했나 보다 생각하고 일단 사무실 주소를 알려주고 한 번 찾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J씨의 사무실에서는 행색이 초라한 일용직 노동자 차림의 중년의 중국 남자가 찾아 왔다.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꾀죄죄한 몰골이 한눈에 보기에도 어리숙해 보였고 동정심이 솟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외모였다. 남자는 내놓은 탁자 위에 차 한잔을 벌컥 마시자마자 운을 떼었다. “친구여, 당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네? 무슨 사연인지 말씀을 해보시죠?” 중년 남자의 사연인즉 이랬다. 버스도 제대로 안 다니는 그야말로 깡촌구석에서 농사를지으며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난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더는 견디기 어려워 수도 베이징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왔다. 딱히 배운 기술도 없고 낯선 대도시에 아는 이도 없는 지라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일당 몇 십위안을 받는 고된 막노동일 뿐. 고향에 남겨둔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하기 위해 하루종일 일하고 거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초라한 판잣집 임시숙소에 눕기만 하면 그대로 곯아 떨어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직업 소개소의 알선으로 베이징 변두리의 전원주택 신축 공사현장에 일하러 나가게 되었다. 새 집을 짓는 기반을 닦기 위해 곡괭이 질을 하던 중, 곡괭이 끝에 ‘쨍’하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났다. 이게 뭘까? 이상하다 싶어 살펴 보았더니 흙더미 바닥 속에서 딱딱한 고체가 들어있는 작은 보따리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보따리를 꺼내어 살펴보았더니 안에는 황금빛이 은은히 빛나는 주먹만한 작은 금속 몇 덩어리 들어 있었다. 그 사이로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낡은 유서도 한 장 보였다. 오래된 집터 속에 나온 금으로 추정되는 금속, 거기다가 유서라…여기까지 들은 J씨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완전히 한국 전래동화 아닌가. “그게 다 사실입니까?" 진실해 보이는 중년 남자의 암소 같은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당장이라도 줄줄 흐를 것 같았다. 이리 저리 뜯어봐도 어리숙해 보이는 시골 무지랭이 남자가 절대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찬찬히 살펴본 유서의 내용은 <나는 병들어 죽으나 자식들은 불효자니 이 금을 발견한 사람은 본인이 갖고 일부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 고어체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고 한다. 중년 남자의 가슴도 뛰었다. 그래서 중년 남자는 다른 공사인부 모르게 자신의 짐인양 보따리를 몰래 챙겨왔다. 그리고 이튿날 현장에 출근하지 않고 그 중 한 조각을 쪼개 한달음에 J씨를 찾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년 남자는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새끼손가락 만한 작은 금속 조각을 꺼내어 J씨에게 건내며 진위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J씨는 반신반의하면서 “아니 그럼 당신이 직접 확인해 보면 되지 않소?”라고 물었다. 그러자 중년남자는 자신 같은 행색이 남루한 하층민이 금은방에서 금조각의 진위를 알아보면 장물이라고 괜한 의심을 살 지 모른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 했다. 약간 이상하기도 했지만 J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마침 잘 아는 인근 보석상에 확인해 보았다. 중년 남자가 가지고 온 금속조각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진짜 금이었다. 보석상 주인에게 몇 번이나 확인해봤지만 틀림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J씨는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리숙한 일꾼이 금 덩어리를 들고 스스로 찾아오다니. 황금호박이 넝쿨 채로 굴러 온 셈이었다. 아이들은 커가고 지난 몇 년 간 중국의 사업도 시원치 않았는데 이런 일이! 아니다 다를까, 그 남자는 자신은 가난한 농민이고 외지인이기 때문에 많은 양의 귀한 금을 매매하면 의심을 받는다며 J씨가 금을 헐값에 사줄 것을 제의했다. 비밀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도 했다. 자신은 이제 힘든 외지 노동일을 그만두고 고향의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했다. 아무 욕심도 없다고 덧붙였다. 아, 너무도 순진해 보였다. 중년 남자는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몇 개의 작은 금 덩어리를 들고 다시 찾아 왔다. J씨가 보니 육안으로도 금이 틀림 없었고 시가에 비하면 중년남자가 부르는 가격은 그야말로 헐값 중의 헐값이었다. 도무지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J씨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난 중국에서의 힘들었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급히 이리 저리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사무실 운영비조로 남겨둔 은행잔고를 탁탁 털었다. 한국의 친구들에게도 달러 이자를 주겠다면 하소연하며 급하게 송금을 요청했다. 며칠 동안 지인들에게 전후 사정은 쉬쉬하며 J씨는 이리 저리 거액의 돈을 마련해 중년 남자가 요구한 돈을 지불하고 그 금 덩어리를 모두 매입했다. “역시 중국은 기회의 땅이야!” 그러나 중년 남자가 샘플로 제시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금은 모두 가짜라는 것이 드러난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그…그럴리가 없는데…” 당황한 J씨의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급하게 그 중년 남자를 찾았지만 핸드폰은 꺼져 있었고 찾을 길은 막막했다. 베이징에 남아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아차! 사기 당했다고 느꼈지만 드넓은 중국에서 찾을 도리가 있겠는가. J씨는 그제서야 신분증 사본이라도 받아 놓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지금도 J씨의 집 한구석에는 한 때 일확천금의 욕심이 빚어낸 슬픈 초상처럼 가짜 금 덩어리가 씁쓸하게 놓여져 있다.
놀랍게도 이 황당한 사연을 겪은 이는 J씨만이 아니었다. 왕징에 사는 또 다른 중년의 사업가 K씨도 비슷한 시기 같은 경험을 겪었다. K씨에게도 어리숙해 보이는 남루한 일용직 노동자 차림의 중년 남자가 찾아 왔고 같은 사연을 털어 놓았다. K씨도 처음에는 귀가 솔깃했다고 한다. 그러나 K씨의 경우는 달랐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으나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K씨는 비록 집터에서 발굴한 아무도 모르는 물건이나 이 물건은 절차를 밟아서 주인에게 돌려 주고 당신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으라며 정중한 말로 중년남자를 돌려보냈다. 예상치 않았던 반응에 당황한 중년의 남자는 가격을 자꾸 낮춰 불렀으나 K씨는 요지부동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단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뿐더러 어차피 자신의 물건도 아니고 사망한 주인의 상속권리를 승계한 이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K씨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K씨의 판단이 옳았음은 며칠 후 드러났다. 어느 날 외출을 나갔다 귀가하는 버스에서 K씨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우연히 쳐다본 버스 안 텔레비전의 CCTV(중국관영방송) 뉴스에서 자신에게 금 조각을 들고 찾아온 그 중년 남자가 수갑을 채인 채 연행되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의 추적 끝에 연행되고 끝내 사기극은 막을 내렸다. K씨는 그 광경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2007년 ~ 2008년 즈음 베이징 왕징에 거주하는 몇몇 한국인을 대상으로 이뤄졌던 이른바 가짜 금괴 사건의 진상이다. 이 사기행각으로 많은 한국인 피해자가 발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J씨와 K씨의 사례는 필자가 정말 우연히 기회에 알게 되었을 뿐이고, 또 이런 사건의 속성상 피해자들은 어디다가 하소연도 못하고 쉬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몇 명은 더 피해를 보지 않았나 싶다. <초짜 교민들을 노리는 대박 테마> 물론 이 사건은 중국인에 의해 저질러진 드라마 같은 사기극이다. 그러나 돈은 어느 정도 있으나 사업이 신통치 않던 중년의 한국 남성들을 범행대상으로 삼은 점, 연락처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어떤 식으로든 배후에 또 다른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나 의심해 본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살다보면 가끔 황당한 대박 소재를 갖고 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꺼내 놓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군침 도는 환상을 심어준다. 재벌 비자금..청와대 괴자금..정보기관 돈세탁..권력자의 숨겨둔 딸..중국 정부에게 서부개발의 전권을 위임 받았다는 이.. 중국의 권력자와 호형호제 한다는 이, 심지어 사우디 아라비아 왕자를 만나게 해 준다는 이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설레이지만 자꾸 들으면 귀가 펄럭이고 나중에는 설마 하면서도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움켜잡았다가 낭패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오래된 교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사한 경험이 없는 초짜 교민들이 경우 경제적으로 곤란할 때 잠시 방심하면 어김없이 어둠의 낚시대가 드리워진다. 중국 한인사회는 사기 브로커들의 밀도가 높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주위를 돌아봐도 이런 자들은 호시탐탐 먹잇감을 참아 기회를 노리고 있다. 피해자들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아픈 기억이겠지만 비싼 수업료 지불한 셈 치고 꼭 중국에서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이 아니면 아예 가지를 말라”라는 말은 다시금 험난한 중국 살이를 목전에 둔 초짜 교민들에게 드리는 잔소리 같은 평범한 조언이다. 공짜를 탐하지 말고 자신의 물건이 아니면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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