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기억과 발자취/청도 이야기

초짜교민 ① ‘뼈중파’ vs ‘떠중파’ 사이의 혼돈과 균형

주님의 착한 종 2011. 3. 8. 09:41

 
‘뼈중파’…출처불명의 이 요상한 말은 널리 통용되는 단어가 아니고 사실 나와 지인들 사이에서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장난스레 만든 용어다. ‘뼈중파’는 ‘나의 뼈를 중국에 묻겠다’는 교민들을 뜻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 몸 바쳐 충성하겠다는 뜻은 아니고 현재 중국에 거주하면서 앞으로도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장래에도 중국에 계속 살겠다는 교민들을 지칭한다. 이는 ‘친중파’ 와는 조금 다른 의미라고 하겠다. 반대로 ‘떠중파’라는 용어도 있다.

‘떠중파’는 대개 중국 실정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래서 치안 문제, 자녀 교육 등 제반 환경을 고려해 볼 때 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중국을 떠나겠다는 부류다. 가까운 장래에 중국을 떠난다고 해서 ‘떠중파’로 명명했다. 떠중파는 “왜 중국을 떠날 생각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올림픽을 치른 수도 베이징의 횡단보도조차 신호 지키는 보행객들이 위험한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한다. 굳이 구분하자면 중국 교민들은 크게 ‘뼈중파’와 ‘떠중파’로 나눌 수 있다. 좌우지간 의미전달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으니 이 글에서는 그냥 '뼈중파'와 '떠중파'라는 용어를 편의상 사용해 보기로 하자.

‘뼈를 묻겠다’ 뼈중파 VS ‘머지 않아 떠난다’ 떠중파

나는 언제부터인가 중국 교민들과 대화를 나눌 때 먼저 상대방이 뼈중파인지 떠중파인지를 꼭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중국에서 뼈를 묻던 한국에서 화장(火葬)을 하던 간에 뼈중파와 떠중파들의 각자 향후 거주계획은 자유지만 묘하게도 그 때문에 중국에 관한 구체적인 시각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동일한 테마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 ‘뼈중파’와 ‘떠중파’의 주장이 팽팽하게 일직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까지 한 명의 교사가 계속 담임을 맡는 중국 초등학교의 일반적 체계 말할 때, 떠중파는 잘못하면 학생이 한 교사에게 예속되면서 촌지 등의 후진국 문화 부작용을 걱정하며 불합리하다고 말하지만 뼈중파는 오히려 오랜 기간 동안 한명의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자세히 살피고 관찰할 수 있어서 좋다는 식으로 쌍지팡이를 든다.

치안에 관해서도 떠중파는 중국에는 신문에도 나지 않는 은폐된 사건 사고가 많아서 너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뼈중파는 한국에서 보도된 대형 사고를 지적하면서 중국이 한국 보다 오히려 훨씬 더 안전하다고 침을 튀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고전적 테제가 정확한 셈이다.

현지 실생활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다르다면 비즈니스의 논점에 관하여 '거주계획'의 차이가 사업가들의 의식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내 판단이고 그렇다면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뼈중파는 중국 대륙이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넓은 시장의 무한한 기회의 땅이라며 장미빛 전망를 꾀꼬리처럼 노래하는 반면, 떠중파는 그건 일반 교민들과는 무관한 대기업과 대자본의 영역이고 교민의 90%가 주로 같은 한국인들 상대로 소규모 사업하는 상호의존적인 지역 경제구조 속에서 중국은 어떤 면에서 오히려 한국보다도 작은 시장이라고 일축한다.

뼈중파는 폭발하고 성장하는 중국 경제나 한국 대기업 중국 진출 같은 거대한 장미빛 담론을 희망적으로 즐겨 말한다면 떠중파는 현실적으로 많은 이들이 한국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가계 소득을 가진 구매력이 떨어지는 한인사회 시장의 협소함을 지적한다.

자녀 교육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에 뼈를 묻을 뼈중파가 중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언젠가 떠날 떠중파는 영어가 더 필요하다고 맞서기도 하고 자녀를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유학 보내는 것보다 비교적 저렴하게 중국 내 인터네셔날 스쿨에 보낼 수 있다는 뼈중파에 발언에 대해 500위안 (한화 약 9만원)도 빌리기 어려운 중국 한인사회 경제 실정 하에 극소수 부유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자녀를 한족학교에 보내야 하는 대부분 중국 교민들에게는 배부른 환상일 뿐이라고 꼬집는다.관점에 따라서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떠중파인 동시에 뼈중파인지 모른다. 나 역시 베이징에서 몇 년을 거주하다 보니 중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만을 늘어놓는 갓 현지사회에 진입한 떠중파 초짜교민들을 보면 내심으로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하게 반발심리가 생기는 것을 느끼곤 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실제로 뼈중파가 떠중파가 되기도 하고 거꾸로 떠중파가 뼈중파가 되기도 한다. 잘나가는 현지사업이 하루아침에 망해서 한국으로 야반도주 하는 기업인은 뼈중파에서 떠중파로 전향한 셈이고 기사 딸린 차를 쓰고 가사 도우미를 쓰는 주재원 가족이 현지 삶의 달콤한 맛에 본사의 귀국 발령을 거부하고 독립선언을 한다면 그 반대가 되는 셈이다. 왜냐면 전자는 중국에 대해 희망만 늘어놓고 살다가 망해서 한국으로 돌아간 후 “중국 가면 무조건 망한다”는 식으로 욕설을 늘어 놓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사냐”는 식에서 “살아보니 한국보다 나은 점이 많다”는 식으로 조금씩 사고가 변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럴진데 비즈니스 세계에서 뼈중파와 떠중파 파트너들에 대한 접근방식이 각기 달라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걸핏하면 중국의 실정을 비방하면서 한국으로 금의환향을 꿈꾸는 떠중파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도록 한다.

뼈중파를 살펴보자. 중국과 수교 역사가 길어지면서 뼈중파들은 대개 중국에 10년, 혹은 15년 이상 장기 거주한 이들이 많다. 수교 초기 차이나 드림을 꿈고 한국에서 건너온 이들도 있고 중국 유학 후 그대로 눌러 앉은 이들도 있다.

‘강성’ 뼈중파 앞에선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금하라

그 후 중국 내 사업이 자리 잡고 현지에서 주택을 구입하고 인맥을 구축하는 등 나름대로 성공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수교 초창기의 '일확천금' 성공 마인드를 가지고 사업한다고 떠돌이 장돌뱅이처럼 살면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 하는 사람들도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럭저럭 성공해 번듯이 안정된 수입원에 교민단체 등에도 얼굴을 들이밀고 행세하는 뼈중파도 있는가 반면 여전히 차이나 드림에 들떠 생물학적 연령은 40, 50대이나 정신적으로는 20대를 벗어나지 못한 남루한 행색의 뼈중파들도 허름한 술집이나 당구장 등지 곳곳에서 보인다. 가기 싫어서 안가는 자발적 뼈중파도 있고 가고 싶어도 못가는 비자발적 뼈중파도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두 경우 모두 중국에서 오래 거주 하다 보면 한국의 존립기반이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한국 내의 막역한 여러 인간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몇 년 지나다 보면 조금씩 멀어지고 사업의 인프라도 사라진다. 세월 앞에 장사가 어딨겠는가.

급격히 변하는 한국의 시장과 실정에 둔감해지면서 나중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기반이 없어진다. 물가 수준도 낮고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만만디'한 중국에 살다가 막상 급변하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두려운 마음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 과정 속에서 중국은 현실적으로는 버릴 수 없는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리며 ‘신조선족’화 되는 것이다. (참고로 현지에서 중국인 배우자를 만난 사람들은 뼈중파가 꽤 많다.)

나는 사업관계상 거래처 손님 등을 만날 때 “중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중국에서 사실 건가요?”라면서 우회적으로 상대방이 뼈중파인지 떠중파인지를 확인한다. 이마에 뼈중파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중국 거주기간이나 사업 현황 등을 물으면서 여러 각도로 유추해 보는 것이다. 사실 상대방의 ‘성분’을 파악하고 대화에 임하는 것은 상당히 요긴하다. (물론 중국에 오래 거주했다고 해서 뼈중파가 아니고 또 단기거주한다고 해서 떠중파란 법은 없으니 속단은 금물이다)

뼈중파 앞에서 버릇없이 중국 욕을 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큰 결례가 된다. 다른 외국인 앞에서 그 나라의 부정적인 면을 열거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국에서 뼈를 묻겠다는 사람은 이미 정서적으로 상당 부분 중국화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 부당함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생활의 일부일 수가 있다. 뼈중파는 중국이 앞으로 본인과 본인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제2의 고향이기 때문에 자꾸만 중국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나는 몇년 전 자칭 ‘중국통’ 이라는 컨설팅 업자와 중국에 투자를 모색하러 한국에서 날라 온 선배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나의 경험을 들어 중국 사업시 주의해야 할 점을 선배에게 역설하다가 나를 바라보는 그 ‘중국통’ 의 초조하고 애처로운 눈빛을 본 적이 있다. 자리가 어색해진 것은 그 ‘중국통’이 ‘강성’ 뼈중파라는 것을 잊었을 뿐더러 얼굴에 언짢은 빛이 나타나는 것을 놓친 나의 부주의 때문이겠다. 알고 보니 선배와 그 중국통 사이에는 사업관계가 얽혀 있었고 그런 조언이라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 선배와 대화를 하고 당부했어야 했다.

모든 뼈중파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듯 강성 뼈중파 앞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하다가 대화가 소모적으로 길어지는 수가 있고 자칫 잘못하면 왕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신입교민들은 반드시 염두해둬야 한다. 톡 까놓고 자라온 고향을 등지고 친지들을 떠나 공기 나쁜 후진국 중국에 살러온 사람들의 주관이 어디 보통 사람, 보통 고집이겠는가.

한국에서 주변을 싹 정리하고 중국에서 새 삶을 살러 온 대개 이들은 뼈중파나 뼈중파 성향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주변을 둘러봐라! 교민들이 종사하고 있는 업종이 대부분 같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삼성이니 현대니 내국 소비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기업들은 아무리 중국으로 진출을 해도 종업원을 현지에서 고용하는 현지화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주재원 숫자는 전체 교민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고 새발의 피 정도라 통계적으로 무의미하다. 실제 한국 대기업이 공장 하나를 지어 현지 종업원을 수백, 수천명을 고용하더라도 한국인 파견인원은 손가락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진출이니 한류니 들떠서 떠들어봐야 그것은 소수에 불과한 '그 사람들' 얘기고 중국 한인사회를 살아가는 절대다수 평범한 서민의 삶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컨데 삼성전자 소주 공장이 크게 증설을 하고 종업원 현지인1천명을 늘리더라도 한국인 파견직원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고작 몇 명일 것이고 그 인원이 그 동네 치킨집이나 학원, 혹은 한식당 경기를 좌지우지 할 만큼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물며 다른 대도시 코리아 타운 서민 경기에 무슨 영향이 있겠는가.

신규 교민들에 대한 일부 뼈중파의 침묵의 카르텔

해마다 수 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찾지만 중국 내 전체 한인숫자가 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돌아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인데 결국 한인사회 경제는 끊임없이 신규 이주민들을 수혈받아야 지탱할 수 있는 구조다. (금의환향하는 교민들이 많은지 '접고' 귀국하는 교민들이 많은지는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중국 당국에서 올림픽 등을 이유로 비자 발급 제한 조치를 해 한국인 신규 이주가 줄어들면 중국 한인사회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받는 이유다. 그 이유는 중국내 대표적인 도시 베이징이나 상하이, 선양 등 대부분의 한인사회 경제가 중국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유학생 등 한인들끼리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라고 위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러므로 뼈중파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신규교민들에게는 절대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된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경제적인 면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자기들의 존립기반을 갉아먹는 자기 부정이라고 느껴지 때문이다. 난 이와 비슷한 얘기를 현지 캐나다 교민이 쓴 <캐나다 이민 절대 오지 마라>라는 책에서 읽고 “어느 나라 교민사회나 실상이 비슷하구나”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쉽지만 중국 교민들 특히 갓 중국으로 들어온 신규 이주자들에게는 사실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다. 결론으로 들어가자.

중국의 어떤 사안에 대해 조언을 들을 때 상대방이 ‘중국통’임에 앞서 뼈중파인지 떠중파인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양 부류의 조언을 함께 크로스 체크를 하라. 무슨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 재물욕, 명예욕, 허영심, 경쟁욕에 근거하기 마련이다.

떠중파로 중국에 사업하러 왔다가 몇 년 내에 승부를 못 내고 장차 사업의 전망마저 불투명 하다면 근거없는 낙관으로 무작정 버틸게 아니라 과감하게 한국으로 복귀를 결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위에 잠깐 언급한 책의 저자도 “돌아가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럽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식매매 처럼 타이밍을 놓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나중에는 결국 '물타기' 하는 좌절이 되풀이 되는, 실패한 뼈중파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귀국 타이밍을 놓쳐서 충혈된 눈빛으로 '한방'을 꿈꾸며 신규 교민 등치려는 비자발적 뼈중파는 중국 전역에 널려있다.

신규 교민들에게 당부 드린다. 중국 현지 실정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다면 늘 중국을 턱없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일부 뼈중파나, 항상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소수 떠중파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 혹은 당신을 간접적인 '먹잇감'으로 삼고 있지 않나 경계하라.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의 불필요한 조언은 늘 소중한 희망을 품고 이국땅 중국에서라도 잘 살고자 왔던 교민들의 정신을 골병 들게 하고 미래를 어둡게 하기 마련이다.

작성자
(前) 온베이징 편집장, (現)베이징이화자문유한공사 대표
이동기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