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창업을 준비하며/중국무역·사업 경험기

중국 부자들 이야기

주님의 착한 종 2010. 5. 27. 13:00

중국 개혁개방 27년이다.

중국 백대 부자들이 떠오른 것은 근 10여년의 일이다.

일찍이 중국인은 "만위안호"로 부자들을 불렀다.

그들은 자신이 아주 작은 사업을 창업했다.

이유인즉 당시 중국의 업종 대부분을 국유 또는 집체기업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백대 부자 랭킹이 떠오르고 있다.

그들은 젊은 고학력자로 인터넷, 생명공학 등 하이테크 산업에서

엄청난 대박을 연이어 터뜨리고 있다.

새로운 부자들의 출현은 중국 사회 자본의 열기로 붕 뜬 정서를 상당히 완화시켜 주고

중국의 젊은층들에게 아주 좋은 자극과 격려의 작용을 하고 있다.

요즘 중국 부자들은 투명하다.

전에 비해 부자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말하지 않았다.

사회는 그들이 도대체 무슨 일에 종사하여 부자가 되었는가를 알 수 없었다.

탈세와 마약과 매춘 조직폭력과 연루 등 사회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

종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현재 중국의 부자들은 중국이 WTO에 가입한 후, 제도화된 사회로 발전해나가는

과정 중에 있으며 주식상장에 대해 사회 감독을 받게 되고

부자들은 마땅히 규범화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사업을 창조해나갔다.

따라서 부자들은 아주 당연히 사회의 존중을 받고 있다.

중국 부자들이 몸에 친친 감고 있던 “(자본주의파의)원죄”의 그림자도 점차 소멸해갔다.

사람들은 부자들의 머리에 기업가의 월계관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의 현재 사회환경 속에서,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가의 기업이 진정한 기업이라고 본다.

즉 민간기업만이 진정한 기업으로 친다.

만일 부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사회에 공개되지 않거나

또는 그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행위는 곧 프라이버시 차원으로 그쳐버릴 것이며

사회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사상이나 아이디어가 국가 사회의 재원으로 변화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오늘날 몇몇 부자들은 자신들을 말할 때 당연히 매우 소극적으로 말한다.

중국이 부자들이 살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상당한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질투를 받고 민간재산은 법률의 양호한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일부 탈세한 부자들은 세무사찰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것으로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은 기업을 떠날 수 없으며 기업은 개인을 떠날 수 없다.

거시적으로 부자들의 인격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곧 부자들의 사회적 의의를 발견하는 것이다.

중국의 부자랭킹은 날이 갈수록 국제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왕따를 당했던 주변인계층이었던 개체호(개인 소자영업자)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부자계층으로 떠올랐다면 역사의 농담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중국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개체호는 문화대혁명 때 농촌으로 방출되었다가

도시로 돌아왔던 지식청년과 만기 복역을 마치고 돌아온 전과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국인민대학 사회학 교수인 리챵(李强)은

1980년대 초 당시의 개체호들의 이 두 사회주변인 계층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들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실업자들은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 나섰다.

이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대 사건이었다.

사회주변인이 신중국의 자산이 국가로부터 개인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음을 그 누구가 예상했으랴.

최초의 개체호가 주로 종사했던 업종은 주로 암거래와 운수업이다.

다오예(倒爺)는 당시 개체호의 대명사처럼 되었었다.

복장업과 식품업도 개체호들이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았던 영역이고

베이징의 슈수이제(秀水街)와 우한(武漢)의 한정지에(漢正街)가 중국 제일대 부호의 탄생지였다.

1978년 전국 개체호는 14만명이었으나

1980년에는 80만명, 1987년에 이르렀을 때는 이 숫자는 1845만명에 이르렀고

자산은 0.53억위안에서 179억위안으로 증가했다.

이는 중국에 개인재산 백만장자가 생겼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1988년에는 [헌법]은 정식으로 사영기업의 합법성을 명문으로 보장했다.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이 해를 중국에서는 사영기업의 황금의 해라고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