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의 가라오케에는 홀 중앙에 광장이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 광장에서 연출을 하기도 하고 손님 분이 나와서 노래도 합니다
끝 마무리에는 디스코타임도 있습니다
그런 가라오케에서 생긴 일 입니다
저녁이 되어 할 일이 없으면 가까운 이 가라오케에 갑니다
그렇다고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20위안 짜리 쥬스를 마시면서
연출을 구경하고 나중에 흥이 나면 춤도 춥니다
그런대로 싸게 시간을 보내는 방편이지요
그런데 갈 때마다 웬 혼혈아 같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디스코 시간에는 어김없이 전신을 과격하게 흔들면서 춤을 춥니다
지금이야 중국 사람들의 춤 실력도 국제화되었지만
90년대의 춤은 와따리 가따리 수준으로 단조로워지요
저 같은 사람도 고수에 끼었으니까요^^
어쨌든 이 친구는 호스테스들한테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전신을 흔들며 전후좌우로 춤을 추니 쑈를 보는 그런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서로 자주 보게 되니 안면은 익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대화할 수준은 아니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화장품 도매상을 알아 봐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도매상가를 가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도매상가에서 화장품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됩니다
자기도 반가운지 이것 저것 다 알려주더군요
그래 고마운 마음에 저녁을 초청하면서 친구로 사귀게 됩니다
정말 이해관계를 떠나 사회친구, 놀이친구로 만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 친구의 과거를 알게 되는데~~
본시 이 친구의 할아버지는 그 지역의 대지주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첩도 여러 명 두었는데 포르투칼 여자 즉 자신의 할머니가
그 첩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 이 친구의 얼굴에 그 흔적이 남아있지요)
그 당시 포르투칼 여자를 첩으로 둘 정도이니
할아버지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갈 것입니다
그러다 국민당이 쫓겨가고 공산당세월이 되면서 자연 집안이 몰락합니다
그래서 15살쯤인가 마카오로 밀항을 하게 됩니다
그전에 형은 홍콩으로 이미 넘어 갔고 자기는 동생과 같이 배를 이용해
마카오로 넘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마카오 신분증도 가지게 되면서
안정을 얻게 됩니다
그 동안은 올 생각도 못했는데 개방이 되면서 이런저런 제한이 없어지자
장사 등을 핑계 삼아 겸사겸사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카오에서 벌어서 중국고향에서 쓰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벌이가 잘 되었는데 이제는 예전만 못하다면 투덜댑니다
그리 많은 돈은 없는 것 같고 먹고 살 수준은 되는 것 같은데
더구나 총각이므로 부담 없이 잘 노는 것이지요
대지주 할아버지의 후손들이 대만 브라질 미국 일본 필리핀 등
각국에 퍼져 사는데 가끔 고향을 방문합니다
그러면 저도 연락해서 같이 잘 대접합니다
사실 이 집은 첩의 후손으로 방계인데 종가집 처럼 그들을 대접하더라구여
이렇게 한 중국인 후손이 한 100년 사이에 이렇게 다양하게 혼혈이 되고
번성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한없이 사람 좋은 그는 자주 우리 집에 옵니다
마치 자기집인양 내가 없어도 혼자 와서 낮잠도 자고 가곤 합니다
그리고 내일이라면 자기 일도 제처 놓고 나섭니다
부담이 갈 정도이지요
그리고 내 사업을 자기 사업인 양 걱정도 해줍니다
기실 도움받을 것도 없지만 기분만은 그렇지 않지요
그러면서 내가 그 지역을 떠나 광쪼우로 이사 오고
외성으로 출장이 많아 지면서 서로간에 연락이 뜸하게 됩니다
지금도 잊을만하면 전화가 옵니다
자신도 주체 못하면서 왜 그리 내 걱정을 하는지!!!
다 커서 이런 사심 없는 만남이 있다는 것이 그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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