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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한국인 - 여태근 칼럼 1. 백제원 15년 역사의 회상

주님의 착한 종 2009. 10. 26. 15:06

여태근 칼럼 1. 백제원 15년 역사의 회상
[2009-06-21, 07:26:12] 온바오    
▲ 여태근 칼럼니스트
▲ 여태근 칼럼니스트
 15년전 체류비 절감 위해 한식당 개업


1994년에 처음에 중국 선양에 도착했을 때 중국 전체가 그랬듯이 선양의 경제규모는 보잘 것 없었다. 오늘 날의 발전된 모습은 상상도 할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문명이 15년 동안에 전부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 식당을 할 생각은 없었으며, 중국에서 사업할 생각은 있었다. 한국에서는 세무공무원 10년, 건축사업 3년 , 신발공장 2년을 해보았다. 무엇이 나의 전공인지 적성인지도 생각지 않고 그저 중국이 막연히 다가왔을 뿐이다.

1~2년 시간을 중국에서 보내면서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고 일단 먼저 정착을 해야겠다 생각했으며 중국생활 비용을 줄이고 친구와 교류하고 중국을 공부하며 사업을 찾기에는 일단 조그만 식당이라도 하는것이 좋을듯 했고 우연한 기회에 진짜 만들게 되었다.

요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한국요리이기 때문에 조금 틀려도 당시 중국 고객에게는 한국 요리자체가 특색이었다. 서점에서 한국요리책 몇권을 사서 조선족아줌마들에게 요리를 가르키기도 하고 스스로 배우기도 했다. 된장찌게 하나도 책을 보면서 공부했다. 한국요리를 해본 사람은 당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양 최초의 한국인 독자기업

선양 최초로 한국인 독자기업으로 백제원이란 한국식당이 오픈했다. 당시에는 중국정부 규정에 외국인에게 서비스업 즉 식당 등이 외자독자기업으로 등록할 수 없었다. 차후 성공한 모습의 백제원이 중국인의 손에 경영되는 것을 걱정해, 당시 선양시정부에서 외자기업을 관할하는 부시장에게 편지를 썼다.

“존경하는 시정부 영도이신 부시장님. 한국인이 현재 전기불도 없는 이 허허벌판에 식당을 오픈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흔히 만주봉천 개장자골목이 있는데, 여기에 우리식당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아침새벽마다 길거리에서 개를 도살하여 고기를 파는 시장의 역사가 이미 50~60년이 된 것 같은데, 이제 국제화시대에서 이러한 야만적인 모습이 없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식당이 단순히 식사를 파는 곳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의 친구들끼리 식사하면서 교류하고 경제상담을 하는 문화공간이 될터인데 좋은 인상을 이 거리에 남겨야겠습니다. 그래서 개장사 골목을 없애주시고 또한 차후 외국인투자 특히 한국인의 투자유치정책의 안전성을 위하여 저희 식당부터 독자기업허가를 내 주실 수 없으신지?...."

이와 같은 다소 장문의 편지를 통하여 하소연했는데 뜻밖에 바로 답장이 왔었다. 그 후 특별경찰부대가 동원되어 개장사골목이 철거되었고 우리는 독자기업 등록을 마쳤다. 이것이 전 중국 최초의 한국식당외자독자기업 1호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반드시 중국인 또는 중국기업과의 합작만 허용되었다.


한국문화 특성 살리며 중국 현지화 해

만주 봉천 개장사 골목! 역사 깊은 곳이었다. 일제시대에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조선인들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생계유지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만주 봉천시대에 소설의 중심 무대이기도 했다. 김두한과 시라소니도 여기에서 등장한다. 지금은 여기가 코리안타운이다. 나도 처음에 이곳이 코리아타운이 될 것을 예상못했다. 운이 좋았다. 지금 이 동네에 한국인이 5천여명이고 조선족이 2만여명 살고 있다. 대부분이 나의 고객이고 나의 친구이다.

처음 만든 한식당은 중국인의 입에 맞는지 아닌지 솔직히 과거의 자료가 없었다. 모든 게 처음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식보다 서비스와 환경관리에 중점을 두었고 선양을 방문하는 한국고객을 위한 불편해소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백제원이 식당과 사우나, 호텔을 함께 운영하게 되었고 한식음식이든 환경장식이든 서비스이든 한국의 문화특성을 담으려 했다. 즉 한국 문화를 상품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약 500가지의 메뉴를 다양하게 개발했다. 왜냐하면 중국인은 식사의 개념, 즉 주식의 개념보다 요리의 개념이 강하기때문에 한국사람처럼 국과 밥, 반찬이라는 음식은 맞지않았다. 중국인은 먹는 자체가 다양하고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인다.

지금도 메뉴판에 항상 100여 가지 이상의 메뉴가 올라와 있다. 한국고객이 주로 선택하는 약 40%는 철저하고 한국요리의 전통성을 지켰고 나머지는 영업을 고려하여 중국인의 입에 맞게 고쳐나갔다. 그래서 지금 백제원의 중국인 고객은 한국을 방문해서 먹는 음식보다 현지 백제원에서 먹는게 더 맛있다고 한다.

백제원을 방문한 한국의 어느 노정치인이 나에게 “ 여사장, 꼭 이 땅에서 사업 성공하세요! 당신이 성공해야만 맞든 틀리든 우리가 도와줄 수 있지! 실패하고 아무 것도 없으면 맞고 틀리고 따질 대상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믿었다. 정말이다.

우리가 만든 한식 메뉴가 중국인이 좋아하고 많이 팔 수 있어야 한식요리가 세계화된다. 너무 지나친 명분과 전통의 맛과 역사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요리를 만든 목적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입맛은 모두가 다르다. 고객이 좋아하는 쪽으로 개방적으로 맛을 바꾸어라! 그것이 이땅에서 이룰 수 있는 한식요리의 세계화라고 생각한다.

한식요리 세계화를 꼭 성공시키고 싶다.


백제원, 한식당 대표로 브랜드화 역점

호텔과 사우나는 백제원의 식당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한 보조 공간이다. 본점의 6,000평방미터 중에 식당은 1,800평방미터이다. 나머지는 호텔과 사우나이다. 중국 고객은 브랜드를 선호하고 대형화를 찾는다. 백제원은 브랜드로써 성공했다.

시내 택시와 공항 택시의 거의 다 서탑 백제원을 알고 있다. 초창기에 백제원을 알리기 위하여 식당 앞에서 고객이 타고온 택시 기사에게 물수건 또는 볼펜을 선물했다. 우리 식당에 말 통하지 않는 한국고객을 모셔다줘서 감사하다는 뜻이었다.

백제원의 브랜드는 점차 알려졌고 동북3성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의 선양경제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식당인데도 고객이 많았다. 지금도 한식당에서는 제일 값 비싼 곳임을 인정한다.

시정부에서는 한국과 공식, 비공식행사가 있을 때는 항상 백제원을 이용해주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 고객중에서도 전직 대통령 한 분과 일곱 분의 국무총리가 다녀갔다. 유명한 연예인들도... 그러나 이것을 너무 강조하진 않았다. 백제원이 모든 고객에게 동등하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이였다. 모든 고객이 백제원에게 중요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발전했다

사업은 점차 번창했다. 처음에 500평방미터 규모의 식당에서 지금은 복합적으로 분점까지 운영돼 9,000평방미터 규모가 됐다. 과도한 욕심으로 무리한 투자도 했고 실패도 했다. 개업 후 3년 뒤인 97년도에 베이징에서 1,400평방미터의 한식당을 오픈하고 6개월만에 문을 닫기도 했다.

아까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말자고 생각했다. 오히려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잘 생각해서 다음에는 절대 실패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업은 항상 성공과 실패가 뒤따랐다.

중국에서 외롭게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다 보니 성공과 실패를 너무 많이 반복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현재를 보면 과거에 비해서 항상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5개의 영업장에 3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나는 가족과 떨어져서 이 직원들과 거의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개인적으로 부인은 한국 부산에서 스포츠센터를 경영하고 있고 아들은 중국에서 공부한 뒤 미국 UCLA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딸은 뉴질랜드에서 공부하여 지금 스위스의 호텔 경영대학에 다닌다. 우리는 4개국에 네 가족이 있고 지금은 방학이라서 다음주에 다 함께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의 유학 역시 아버지와 외국사업 진출과 비슷한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지금의 결과에 나는 만족하고 있다. 


백제원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나는 중국 사업을 할 때 크게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시장조사를 해봤자 중국시장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떤 것은 정말 분석해도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먼저 만들고 천천히 출발한다. 그리고 경험하고 분석하면서 빨리 고친다.

황토숯불갈비, 불고기집은 개업한 지 10개월동안 벌써 메뉴판을 네번을 바꿨었다. 왜냐하면 지금 하고있는 한국 불고기집이 선양에서 처음 생긴 것과 같다. 백제원 본부처럼 코리아타운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인의 선호도를 아직도 잘 몰라서 매일 체크한다. 피곤하지만 당연하다. 그래서 중국사업은 장기적으로 해야 결과가 나온다. 나는 결국 중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한식 숯불구이집을 꼭 만들겠다.

어차피 한국에서 성공한 음식점과 그 메뉴가 중국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지역따라 음식의 선호도가 많이 다르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맛이 다르다. 한국도 부산과 대구가 1시간 차이지만 그 결과가 많이 다른 것과 같다. 그래서 중국에서 식당을 할 때 한국에서의 경험을 지나치게 고집하면 안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중국에서 백제원의 가맹사업을 준비고자 한다. 올해는 시스템을 갖추고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그 동안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베트남 진출을 계획할 것이다. 중국에서 철수하는 제조업들이 베트남으로 이전하는 것도 알고 있고 베트남의 사회, 정치, 경제 구조가 중국과 비슷하며 그 동안의 해외사업을 경험 삼아 선양 백제원이 베트남에 직접 진출할 계획이다